민지는 그 남자를 정말 좋아했다. 좋아한다는 말이 부족할 만큼 그에게 푹 빠진 것 같았다. 매일 그 남자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가 어제는 어떤 말을 해줬는지, 뭘 했고, 뭘 먹었는지 시시콜콜 얘기할 정도로 그에게 빠져있었다.
나는 그런 민지가 마냥 행복해 보여서 좋았다. 그가 전화를 걸어와 민지가 설렘 가득한 목소리로 통화할 때면 그 옆에서 “아, 드디어 민지에게도 이런 사람이 생겼구나” 하고 괜히 나까지 마음이 따뜻해졌다.
하지만 어느 날, 민지는 내게 고민 상담을 해왔다.
“나… 이상한 것 같아. 그 사람이 정말 좋은데… 너무 무서워.”
나는 이해되지 않았다. 뭐가 무섭다는 거지? 연애를 하면서 무서울 게 있나? 그가 때리기라도 한다는 건가? 나는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설마… 데이트 폭력?
다행히 내가 생각했던 데이트 폭력 같은 것은 아니었다. 그저 민지의 마음이 힘들 뿐이었다. 민지는 그를 생각하면 행복해지는데, 그가 다정해지면 도리어 숨이 막히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분명히 보고 싶어서 약속을 잡아놓고, 예쁜 옷을 찾아놓고, 화장까지 하며 설레다가도 막상 그를 만나려는 순간 심장이 조여 오는 것처럼 답답해진다고 했다.
“좋아서 떨리는 게 아니고… 이상하게 겁이 나는 느낌이야. 불안하기도 하고. 왜 이러지?”
하루는 그가 퇴근길에 잠깐 들러 “보고 싶어서 왔어.”라고 말하자 감동보다 먼저 ‘왜 이렇게 불안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따뜻한 순간에 찬물이 확 끼얹어지는 것 같은 감정. 민지는 자신도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어.”
“가까워지고 싶은데, 가까워지면 불편해.”
“멀어지는 것도 싫은데, 너무 가까워지는 건 더 무서워.”
그녀의 말은 계속 앞뒤가 달라졌다. 끌림과 두려움이 맞부딪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말을 듣는 나도 혼란스러워졌다. 민지는 말끝마다 “나 왜 이러지…?”라고 자책했다.
“걔를 만나면 너무 좋거든? 헤어지면 허전하고. 기다릴 때는 설레고. 근데 이 마음이 커지는 것 같을 때 이 이상은 위험해! 하고 내가 나한테 말하고 있어.”
그녀는 그를 잡고 싶으면서도 잡는 순간 도망가고 싶어졌다. 가까워지고 싶었고, 또 동시에 거리를 두고 싶었다. 사랑이 정말 좋았지만 그만큼 두려움도 느끼고 있었다. 그날 민지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나는… 사랑이 좋은데, 사랑이 너무 무서워.”
나는 그 말을 들으며 깨달았다. 민지는 사랑을 어려워하는 게 아니라, 감정이 너무 크면 마음이 흔들려버리는 사람이라는 걸. 그리고 그게 바로, 혼란형 애착을 가진 사람들이 겪는 가장 솔직한 진심이라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