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얘 또 잠수 탔어!”
친구 지아가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며 화를 쏟아냈다. 그녀는 욕설을 폰 화면을 향해 내던지듯 내뱉었다. 그녀의 눈에는 분노 반, 실망 반, 그리고 어느 정도는 ‘또 이럴 줄 알았다!’라는 체념이 깔려 있었다. 평소 지아와 그녀의 남자 친구는 겉보기에 아주 잘 맞는 커플이었다. 우리는 모두 그 커플을 보며 결혼하겠다며 놀리기도 했다. 그만큼 서로 잘 맞았다. 서로 함께 있을 때 분위기도 좋고, 둘은 취향도 비슷하고, 크게 싸우는 일도 없었다. 오히려 서로에게 다정해 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관계가 분명히 잘 흐르고 있다 싶으면, 꼭 그 타이밍에 그가 사라졌다.
연락이 뚝 끊기고, 전화도 받지 않고, SNS는 그대로 켜져 있는데 지아에게서만 잠적하곤 했다. SNS는 하고 있다는 사실에 지아는 속이 답답해 미치겠다면서도 자신에게서 잘못을 찾아내려고 하기도 하고, 과거를 꼼꼼히 되새김질하기도 했다.
“아니, 어제까지만 해도 좋았잖아. 왜 갑자기?”
지아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며칠이 지나 그는 슬그머니 나타났다. 그가 다시 연락해 오면 지아는 표독스럽게 쏘아붙였고, 그의 말은 늘 비슷했다.
“요즘 좀 바빴어.”
“그냥 생각할 게 많았어.”
“미안, 나도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어.”
지아는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점점 이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그가 여러 번 잠적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가 사라지는 시점은 한결같았다. 관계가 조금 더 깊어질 때. 지아가 감정을 표현하거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조금 더 솔직한 대화를 시도할 때 그는 자신만의 동굴로 사라졌다. 지아는 빨리 결혼하고 싶었고 그래서 그에게 가까워지려고 다가갔다. 그럴수록 그는 한 걸음이 아니라 열 걸음 뒤로 물러나는 것 같았다.
지아의 남자 친구를 애착 유형으로 보자면, 대표적인 회피형 애착 유형이었다. 회피형 애착 유형을 가진 사람들은 겉으로는 아주 침착하고, 차분하고, 스스로 모든 걸 잘 해내는 것처럼 보인다. 겉으로 보기엔 문제없어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는 더욱 혼란스럽다.
“평소엔 다정하고 괜찮은데… 왜 가까워질 때만 사라지는 거지?”
회피형 애착을 가진 사람들은 사랑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가까워지고 싶어 하는 마음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감정 표현에 서툴고 독립성을 과도하게 추구한다. 그들은 친밀감이 깊어지는 그 순간을 두려워한다. 그 순간이 되면 그들의 마음속에서 경보음이 울린다.
“뭐해, 너무 가깝잖아. 너무 가까워지면 위험해.”
“상대에게 감정을 맡기면 상처받을 거야.”
“누군가에게 의존하면 불안해.”
그들의 내면에서는 그들에게 위험 신호를 보낸다. 지아의 남자친구도 그랬다. 그녀를 좋아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평소에는 지아에게 누구보다 다정했다. 그의 관점에서 그녀와 함께 가볍게 노는 건 괜찮았다. 영화를 보고, 밥을 먹고, 가벼운 대화를 나누는 건 힘들지 않았다. 문제는 관계가 깊어지는 순간이었다.
회피형 애착을 가진 사람은 혼자서도 잘 지내는 편이고 감정 변동도 적어 보인다. 그래서 상대는 이 친구는 안정적인 친구구나 하고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 침착함은 감정을 잘 다루어서가 아니라, 감정을 깊게 느끼는 것을 피하는 식으로 살아왔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그들은 자신만의 공간을 확보하고 싶어 하며, 갈등을 회피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무엇보다 친밀한 관계를 두려워한다. 회피형 애착을 가진 사람은 사랑이 깊어지기 시작하는 순간이 어렵다고 느낀다.
처음에는 괜찮다. 편하게 만날 수 있고, 서로 알아가며 웃을 수 있다. 하지만 관계가 조금 더 깊어지고, 정서적 의지나 책임, 애착이 생기려고 할 때 그들은 긴장하기 시작한다. 그들에게 친밀함은 따뜻함만 있는 게 아니라 어딘가 답답하고 밀도 높은 기운이 함께 있는 것 같다. 다른 사람에게는 편안한 가까움으로 느껴지는 순간이 회피형에게는 갑자기 이렇게 변한다.
“난 상대에게 의존하면 안 돼. 상대도 마찬가지로 내게 의존하면 안 돼. 숨이 막혀.”
“이 관계에 과하게 에너지를 써야 할 것 같아서 힘들어.”
“이 사람이 나에게 너무 가까이 들어오고 있어.”
“내 공간이 좁아지는 느낌이야.”
회피형 애착을 가진 사람은 감정적 연결을 좋아하지만, 그 연결이 지속적이어야 한다고 느끼면 불편함이 스르르 올라온다.
‘사랑은 좋은데 너무 가까운 건 무서워.’
이게 회피형들의 기저에 깔린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