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다치게 하는 관계_데이트폭력 (3)

by 이레 Ireh

이런 폭력 상황에서 피해자들은 여러 심리 문제를 겪는다. 반복적인 폭력 상황에서 자신이 상황을 바꿀 수 없다는 생각하는 학습된 무기력을 겪는다. 또는 극심한 트라우마로 인해 나타나는 우울증, 불면증 등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을 겪을 수 있다. 이런 고통을 겪는 피해자들은 낮아진 자존감과 사회적인 고립으로 가해자에게서 벗어나는 것이 더 힘들어진다. 특히 폭력과 다정함이 번갈아 나타나는 관계는 사람을 더 강하게 묶는다.


진우는 때로는 세연을 밀치고 욕하고 물건을 던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 너무나도 다정하게 변했다. 울면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세연이 없으면 못 산다고 말하고, 꽃을 사 오고, 선물을 챙기고, 세연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로 대했다.


폭력, 후회, 과도한 애정 그리고 다시 폭력. 이 반복은 중독이다.


세연은 ‘이번에는 괜찮아질까? 다시 그 다정함이 올까?’라는 불규칙한 보상을 기다리며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건 사랑이 아니라 일종의 중독인데 세연이도, 우리도 그걸 몰랐다.


게다가 세연의 마음에도 깊은 문제가 있었다. 세연은 늘 말했다.

“내가 잘하면… 얘도 변할 거야.”

“진우도 나를 너무 사랑하는데… 그 마음을 내가 버리면 안 될 것 같아.”

폭력을 당하고도 자신을 낮추며 “이 정도도 내가 감당 못 하는 걸까?” 하고 자책했다.

세연은 낮은 자존감을 가지고 있었다. 전부터 그랬는지, 아니면 연애하면서 더 그렇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자존감이 낮아지면 사람은 나쁜 관계보다 혼자가 되는 것을 더 두려워한다. 상처받는 자신보다 그래도 나를 붙잡는 사람 하나 있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게 된다. 진우에게 맞추면 맞출수록 자신이 더 작아지고 초라해지는 것도 알지 못했다.


세연이 그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유에는 사랑에 대한 깊은 오해도 있었다. 진우가 폭력을 휘두른 뒤 울며 매달릴 때, 세연은 그 감정이 진심이라고 믿었다. ‘너 없이는 못 산다’라는 말이 위협이 아니라 사랑이라고 착각했다. 진우가 분노하는 순간조차 ‘나를 정말 좋아하니까 이렇게 집착하는 거겠지’라고 해석했다. 폭력은 두려웠지만 그 뒤에 오는 극단적인 애정 표현 때문에 세연은 혼란스러웠다.


사랑은 누군가의 분노를 감당하는 일이 아니고, 누군가의 상처를 대신 책임지는 일도 아니고, 폭력 사이에 간신히 끼어 있는 짧은 다정함에 의지해 버티는 것도 아니다. 폭력이 껴있는 연애 관계의 진짜 비극은 피해자가 ‘이게 사랑일지도 몰라’라고 믿게 되는 무서운 착각이다.

데이트 폭력은 사랑이 아니라 그저 범죄일 뿐임을, 피해자도, 주변인들도 확실히 인지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꼭 알고 있어야 한다.


폭력은 사랑이 아니다.

불안은 애정이 아니다.

집착은 관심이 아니다.


그리고 이 모든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해결 방법이 단 하나 있다.

바로 우리는 상대의 행동을 봐야 한다.

폭력 관계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가해자의 말, 후회, 눈물, 약속을 믿는 순간이다.

그 어떤 말보다 중요한 건 반복되는 행동의 패턴이다.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하는 말을 믿지 말고 그 후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봐야 한다. 미안하다는 말을 믿지 말고 이후 감정 조절이 달라졌는지를 봐야 한다. 사랑한다는 말을 믿지 말고 나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는지를 봐야 한다.


사람은 말로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지만 행동은 절대 거짓을 못 만든다. 그래서 해결의 시작은 오직 하나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을 믿지 말고, 그 사람이 반복적으로 하는 행동을 보라. 행동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그 관계는 절대 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에 자신을 지킬 힘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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