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최악의 잠수이별_회피형 (2)

by 이레 Ireh

그날 밤 원호는 고민했다.

헤어지자고 해야 하나?


근데 말하면 또 싸울 텐데…

상황을 설명하려고 해도 내가 감당 못 할 것 같아…

난 나희랑 맞지 않는 걸까? 나희가 좋긴 해.

그러나 이런 상황이 자꾸 오는 것도 너무 스트레스야.


몇 번이나 메시지를 쓰다 지웠다.

-나희야, 미안해…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가지고 싶어…

-나 요즘 너무 힘들어…

-헤어지자는 게 아닌데…

결국 그는 어떤 메시지도 보내지 못했다. 어떤 말을 해도 상황이 더 복잡해질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리고 결국 가장 잘못된 선택을 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


그다음 날 원호는 연락하지 않았다. 나희의 메시지는 계속 쌓였지만 읽지 않았다. 전화도 오지 않게 차단 버튼에 손가락을 올렸다가 한참을 떨다가 결국 눌렀다. SNS는 비공개로 돌렸고 상대 목록에서 나희를 지웠다.

그에게는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됐다.

“나까지 감정적으로 되면… 둘 다 힘들어질 거야. 그러니 그냥 조용히 끝내는 게 낫겠지…”

원호는 도망쳤다. 나희에게는 최악의 상처를 남기고, 원호 자신에게는 가장 비겁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원호는 그 어떤 것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이게 원호가 잠수 이별을 선택한 이유였다. 그에게 사랑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가 감정을 설명할 용기가 없어서, 대면하면 무너질까 두려워서, 감정적 대화를 할 수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많은 회피형 애착을 가진 사람들은 감정이 깊어지는 순간 강력한 불안 신호를 느낀다. 그래서 그들은 마음이 상대에게 무게 중심이 쏠리기 전에 스스로 감정을 차단하고, 뒤로 물러나고, 심지어 사라져서 관계를 통제하려 한다.


회피형들은 갈등이 생기면 그것을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고 폭발 직전의 위험으로 느끼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해결하기보다 감정을 끄고 도망치고 싶어 한다. 그들에게 사랑은 두렵고, 갈등은 무섭고, 책임은 버겁다. 그러니 가장 쉬운 방법으로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사라져 버리는 것을 선택한다. 잠수 이별은 미성숙한 선택이지만, 회피형은 이게 그나마 나은 선택이라고 왜곡된 생각을 한다.

잠수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처럼 보이지만, 회피형의 입장에서는 잠수가 감정적 탈진을 막기 위한 마지막 탈출구다. 여기에는 몇 가지 심층 심리가 숨어 있다.


먼저, 회피형의 경우, 감정을 설명하려고 하면 머리가 하얘진다. 회피형에게 말로 무언가 설명하기에 앞서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뇌를 압도한다. 나희가 화를 내거나, 관계에 대해 대화를 요구할 때 원호는 해야 하는 말을 떠올리기도 전에 몸이 먼저 굳어버렸다. 설명하고 싶어도,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 회피형들은 감정이 복잡해지면 뇌가 셧다운 상태에 가까워진다.


뭔가 말을 해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아!


이게 회피형의 실제 내적 경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