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회피형에게 갈등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피해야 하는 위험이다. 나희에게는 단순한 서운함의 표출이었던 말도 원호에게는 심리적 위기 같았다.
‘지금 여기서 잘못 말하면 관계가 바로 끝날 것 같아.’
그래서 더 도망치고 싶어진다. 그에게는 갈등 자체가 감정적으로 너무 큰 부담이라 도전할 수 없다.
또한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라는 이상한 죄책감이 잠수를 유발한다. 우리가 회피형들을 살면서 만나다 보면 알게 되는 것이 있는데, 그들 중 다수가 죄책감을 잘 느낀다는 거다. 그들은 마음은 있는데 표현을 잘하지 못해서, 상대가 기대하는 만큼 주지 못한다고 느낀다.
그런 그들이 만약 헤어져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어떻겠는가. 말로 헤어지자고 하면 상대가 울고 무너지는 모습을 봐야 한다. 그걸 감당하는 자신을 상상하면 숨이 막힌다. 그래서 그들은 생각한다.
‘말로 상처 주느니… 그냥 느리게 멀어지는 게 낫지 않을까.’
그들이 생각하는 느리게 멀어진다는 것이 어떤 경우에는 갑작스러운 잠수가 되어버려 상대를 더 미치게 한다.
회피형들이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상대를 고통스럽게 하는 잠수이별을 선택하는 이유는 이들의 죄책감은 정서적 연결이 만들어낸 죄책감이 아니라 의무에서 온 죄책감인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회피형의 죄책감은 감정의 깊이 때문에 생긴다기 보다는 부담감, 의무감, 압박감 때문에 생기는 경우가 많아서 이들은 감정을 해결하거나 나누기보다 상황 자체를 피하는 것을 가장 빠른 해결책으로 여긴다.
감정을 다루는 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에 갈등이 커지기 전에 거리를 두고, ‘말하면 더 복잡해진다.’라는 두려움으로 설명없이 사라져버린다. 이 선택은 상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결국은 자신의 감정적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어적 생존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