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최악의 잠수이별_회피형 (4)

by 이레 Ireh

잠수이별은 최악이다. 잠수이별은 어떤 애착 유형이든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가장 잔인하고 부정확한 방식의 이별이다. 사람은 누구나 이별의 서사를 가져야 관계를 끝낼 수 있다. 하지만 잠수이별은 그 최소한의 권리조차 앗아간다.


잠수는 상대를 버린 것과 다르지 않다. 말없이 사라지는 것은 상대의 감정, 시간, 인간적 존엄까지 모두 무시하는 행동이다. 그래서 남겨진 사람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난 너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니?’

‘말 한 마디 섞기도 싫을만큼 내가 미워졌니?’


사람은 누구나 관계에서 최소한의 마무리, 존중받는 종료를 원한다. 그 권리를 빼앗기면 마음은 바닥까지 추락한다.

이별에도 과정이 필요하다. 왜 멀어졌는지, 무엇이 문제였는지, 어떤 감정이었는지, 상대는 어떤 생각이었는지. 이런 정리 과정은 떠나보내기 위해 꼭 필요한 절차다. 그런데 잠수는 그 모든 판단의 근거를 지워버린다. 정보가 없으니 정리가 불가능하고, 정리가 안 되니 치유도 시작되지 않는다. 잠수이별은 상대에게서 정리할 기회를 박탈해버리는 것이다.


잠수이별을 당한 사람이 괴로운 이유는 존중받지 못했다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말없이 사라진다는 행동은 ‘너랑은 말할 가치가 없어.’라는 메시지를 준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타인의 행동을 자기 문제로 해석하는데, 잠수이별 당한 사람은 끝내 자책하기도 한다.


‘내가 잘못했던 것 같아.’

‘내가 그 사람을 힘들게 해서 이렇게 떠난 거겠지.’

‘난 존중받지 못하는 사람이야.’


또는 다시 연애하며 있었던 사건들을 곱씹기도 한다. 잠수이별은 갑작스럽고, 명확한 원인이 없고, 설명이 없기 때문에 상대방의 뇌는 계속해서 사건을 재구성하려 한다.


‘저번에 부모님 얘기해서 그런가?’

‘우리 놀러 갔을 때부터 좀 안 좋았나?’

‘내가 그날 괜히 서운하다고 해서 그런가?’


계속 이유를 찾아 헤매지만 답이 없기 때문에 멈추지 못한다. 그래서 잠수이별을 당한 사람은 훨씬 더 오래 괴롭다. 정리할 단서가 없으니 심리적 미해결감이 남아 일반적인 이별보다 치유가 몇 배 늦어진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잠수이별은 최악이다.


상대의 감정을 상처내는 것을 넘어 상대의 존재 전체를 지우는 방식이다. 말 한 마디 없이 끝낸다는 건 상대와의 관계뿐 아니라 상대의 인간적 가치를 무시한 것이 된다. 그래서 불안형이 아니어도, 애착 이론을 몰라도, 모든 사람이 본능적으로 느낀다.

“이건 최악이다.”

잠수이별을 막는 핵심은 하지 않는 것이다. 잠수이별을 하려는 사람은 상대방을 위해서라도 도망치지 않고, 말해야 한다. 그거 단 하나다. 관계를 지키는 기술은 사실 아주 단순하다. 상대를 배려하면 된다. 갑자기 관계에서 사라지는 행동은 배려심이라고는 개미 눈곱만큼도 찾아 볼 수 없는 행동이다. 이는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동시에 자신의 내면도 더 복잡하게 만든다. 그래서 관계 안에서 배워야 하는 것은 소통하는 방법이다.

“나 지금 좀 벅차.”

“조금 쉬고 싶어.”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


갈등은 관계를 부수는 사건이 아니라 다시 조정하고, 다시 안전하게 만드는 과정임을 익혀야 한다. 감정이 올라오면 일단 끊기보다 “잠깐 시간을 줄래? 30분 뒤에 다시 이야기하자.” 라고 말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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