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 마주한 세상

by 이레 Ireh

태어나 처음 마주한 세상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건 너무 당연한 일이다. 갓난아이에게 기억이 있을 리 없다. 그래서 나는 가장 오래된 기억을 떠올린다.


아마 여섯 살쯤이었을 것이다. 아니면 다섯 살. 동생은 한 살 어렸다. 정확한 나이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의 계절과 온도는 또렷하다.


겨울, 새벽이었다. 해가 뜨기 전. 세상이 아직 움직이지 않던 시간. 새벽의 시장은 활기를 잃은 채 잠잠했다. 시장의 가게들은 모두 문을 닫았고, 사람들은 없었다. 을씨년스러운 바람이 불 때마다 어딘가에서 쇠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새벽이라 더 멀리 울렸다. 바닥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낡은 운동화를 뚫고 발바닥으로 냉기가 바로 전해졌다. 숨을 쉬면 입 앞에서 하얀 김이 피어났고, 공기는 너무 차가워서 깊게 들이마시기 어려웠다.


동생은 말없이 내 옆에 붙어 있었다. 그때 우리는 서로 말을 주고 받지 않고 엄마의 표정만 살폈다. 엄마는 우리 손을 잡고 있었다. 지금은 엄마의 모습, 얼굴표정 등이 기억나지 않지만 엄마의 손이 사라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은 기억난다.


엄마는 특별한 말을 하진 않았다. 엄마가 평소와 다르다는 걸, 나는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한참 시장을 걷다가 어느 순간 엄마는 멈춰 섰다.

“여기 있어.”

짧은 말이었다.


엄마는 길 가장자리로 걸어가 택시를 잡았다. 새벽 도로 위로 차 불빛이 스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나는 우리가 곧 따라 탈거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먼저 타는 거라고, 그렇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우리를 부르지 않았다. 뒤돌아보지도 않았다. 택시 문이 닫혔고, 차는 그대로 출발했다. 엔진 소리가 멀어질수록 세상은 더 조용해졌다. 차 불빛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우리만 그 자리에 남아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아무도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도, 불 켜진 가게도 없었다.

우리를 발견할 어른도 없었다.

도움을 청할 대상 자체가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 이런 게 버려진다는 걸까?


나는 동생 손을 더 꽉 잡았다.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었다.

도망갈 수도 없었고, 따라갈 수도 없었다.

그저 서서 버티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세상은 내게 얼음장과도 같았다. 차갑고 냉정했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겨울 새벽의 공기처럼 당연하게 손을 뻗으면 느껴지는 차가움. 입김을 손에 불어넣어도 따뜻해지지 않는 그런 냉기. 가만히 있으면 발끝부터 얼어붙는 느낌. 내가 태어나서 처음 마주한 세상은 차가웠다. 아무도 봐주지 않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그런 세상.

나는 조금 늦게 알아도 될 것을 일찍 알게 되었다.


기대하면 더 추워진다는 것.

기다리면 더 오래 떨게 된다는 것.


그 날 이후 누군가 다가오면 잠시 따뜻해지는 것 같다가도, 그 온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를 찾아 스스로 데우는 방법을 찾기보다 차가움에 익숙해지는 쪽을 택했다. 추운 곳에서는 움직이지 않는 편이 덜 아프다는 것도 그 무렵 배웠다.


세상은 자주 등을 보였다. 돌아오는 사람보다 떠나는 사람이 많았다. 나는 붙잡는 법보다 놓는 법을 먼저 익혔다. 아이였지만 마음은 늘 대비하고 있었다. 언제든 다시 추워질 수 있으니까. 내게 세상은 그런 곳이었다. 차가워서 오래 머물 수 없는 곳.


그래서 나는 늘 준비하고 있었다.

언제든 혼자가 될 준비를.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