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쥐 상경기

삼십 년 동안 나고 자란 동네를 떠나, 서울로

by 수련

부산집을 떠날 때부터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비 오는 날 이사하면 잘 산다던데. 역시 그런 건 다 정신승리일 뿐이란 걸. 그냥 번거롭고 짜증 나기만 했다. 물건의 숲으로부터 벗어나겠다며 정말 최소한의 짐만 가지고 가려고 했는데 결국 당일 아침 눈에 밟히던 것들을 또 하나둘 챙겨 몸통 앞뒤로 배낭을 울러메고 기차에 올랐다. 누가 보면 산티아고 순례길 가는 사람으로 오해했을지도.


그렇게 3시간을 달려 도착한 서울도 잔뜩 찌푸린 얼굴로 나를 맞았다. 발을 딛는 곳마다 물웅덩이가 있어 바짓단이 축축해졌다. 이런 남루한 곳이 내가 10년을 걸려 당도한 도시가 맞는가. 이사의 설렘 따위 흐려진 지 오래고 어서 드러눕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내가 가야 할 곳은 아늑한 가정집도, 세련된 호텔도 아닌 쉐어하우스였다. 인생 첫 독립을 쉐어하우스에서 시작하게 된 이유는 차차 풀어보기로 하고.. 그렇게 빗길을 뚫고 도착한 쉐어하우스도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부산에서 미리 택배로 부쳐둔 짐이 내가 생각했던 방이 아닌 다른 호실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그것도 여러 개의 옵션 중 가장 피하고 싶었던 방으로. 관리자에게 몇 번이나 그 방만큼은 싫다고 누누이 말했는데도 불구하고. 이때 알았다. 세상 사람들은 생각보다 더 남의 말을 귀 기울여 듣질 않는구나. 내게 중요한 가치가 그들엔 조금도 쓸모없는 것들이구나. 내가 원했던 방엔 이미 다른 입주자가 들어와 있었고 차선책이었던 방이라도 들어가려고 보니 거긴 또 에어컨이 말썽이었다. 결국 마지막 선택지였던 방에서 나의 첫 독립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일찍이 부산에서 출발했는데도 서울 집에 도착해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밤이었다. 바닥이 짐으로 발 디딜 틈 없었지만 치울 여력조차 없었다. 녹초가 돼버린 몸을 침대에 누였는데 매트리스에서 팅~스프링 소리가 들렸다. 눈물이 핑 돌았다. 나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