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게 부끄러웠다. 그래서 모르는 상태를 들키지 않으려 애썼다. 모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내 분야에 대해서는. 예를 들어, 패션에 대한 글을 쓰는데 패션에 대한 무언가를 모른다면 그게 바로 나의 무능이고 부족이고 약점이라 생각했다. 오래 전에 덮어둔 이야길 꺼내자면, 몇 년 전 히토 슈타이얼의 전시에 발렌시아가가 언급되었다는 사실을 전시가 끝나고 알아차렸다. 그 사실이 무지하게도 부끄러워서,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길 바라며 속으로 조용히 묻었다. 이런 식이다. 모름은 내게 창피한 일이었다. 내가 겉만 시끄럽고 속이 빈 깡통이라는 걸 들통나버릴까봐…
모르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때는 아무렇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애썼다. 속으로는 모르는 나를 열심히 원망하고 타박하면서, 구태의연한 모습을 꾸몄다. 모른다는 건 이중적인 잣대였다. 모르면 부끄러운 일이었으나, 모름을 잘 수용하는 것이야말로 미덕이었으니까. 그러니 부끄러워도 숨기느라 급급하다. 타인의 지성을 부러워하고 나의 무지를 탓하는 일이 자연스러운 건 유식한 사람만 잘난 세상이어서 그런 걸까?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려고 안달내기도 한다. '나도 그거 알아.' '혹시 이거 알아?' 유식을 자랑하고자 하는 허영이 얼마나 나를 부풀리는지. 그렇게 박박 애쓰다가 피로를 마주한다. 세상 모든 걸 다 알 수도 없으니 모르는 상황은 수도 없이 마주치는데, 일일이 부끄럽다 여기면 여간 피곤한 것이 아니다. 모르지 않음을 표내기 위해 애쓰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모른다고 부끄러워 하지도, 애써 겸허한 척하지도 말아볼까. 적어도 알고 모름을 능력과 연결시키지 않는 것부터. 오히려 모른다는 걸 알아차렸다는 건 새로운 걸 알았다는 뜻이다. 몰랐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부끄러움을 느끼기보다, 새로 알았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감사하고 싶다. 게다가 지금 나의 업은 배움인데, 모르는 거이 수두룩 뺵빽한데… 알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의미를 두어야지.
생각해보니 모름은 꽤나 복잡한 일이다. 방관이자 무책임이 될 수 있는 권력적인 말이기도 하고, 무능과 무지에서 나아가 무식까지도 닿을 수 있는 계급적인 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모른다는 사실에서 중요한 건 사후 처리다. 모르니 알아갈 것인지, 계속 모를 것인지. 그런 의미에서 히토 슈타이얼의 전시를 모른 채 지나간 나를 반성한다. 그래도 조금씩 앎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으니 몰라도 당당해보겠다. 치밀하지 못해도 성장하는 나는 정말 대단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