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희량 Jan 08. 2024

보이는 것이 전부다

‘말해보카’에서 조나단을 광고 모델로 썼다. 순간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의심했다. 방송에 나올 때마다 스스로를 한국 사람이라고 정의한 조나단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는 출생 국가인 케냐에 대해 잘 모르는 반면, 한국 문화는 나고 자란 사람만큼 익숙하다. 그는 귀화를 결심했는데, 한국인이라는 자아 정체성에 어긋나는 부분을 정리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말해보카에서 어떤 의도로 조나단을 모델로 기용했는지는 모르지만, 그의 ‘이국적인’ 외모가 외국어 교육 사업 광고와 어느 정도 관련성이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외국어 교육 사업을 진행하는 곳에서 ‘외국인 같이 생긴’ 조나단을 내세워도 괜찮을까? 적어도 그걸 자연스럽게 수용하는 것엔 문제가 있다. 이건 인종과 국적을 구분하는 구시대적 사고를 답습하는 것이다. 물론 자발적으로 광고에 참여한 조나단의 의사와는 별개다.


그는 다문화 시대에 가장 필요한 방송인이다. 아시안으로 규정된 한국인의 범주를 비로소 확장한 존재다. 그는 우리가 외모로 국적을 판단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늘 일깨워준다. 우리가 그의 농담을 보고 웃는 이유는 한국인의 색채가 짙은 입담과 ‘한국인이 아닌 것 같은’ 비주얼 사이에 모순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어를 기똥차게 잘 하는 외국인 영상을 재밌어 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는 스스로 한국인이라고 정의했는데, 우리는 그를 한국인이라고 보고 있는가?


특히 그는 흑인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한국으로 유입되는 백인은 이미 여러 번 조명되었다. 샘 해밍턴을 비롯해 알베르토 등등 우리는 한국에 거주하는 백인에 익숙하다. 그러나 흑인 또는 동남아시아, 중동 국가 사람은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이방인이다. 단일 민족이라는 환상은 여전히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것이 위험한 이유는 현실과 동떨어진 사고방식을 답습하게 되기 때문이다.


최근 문경시 중앙시장에서 어묵을 먹었는데, 메뉴판이 한국어와 베트남어, 태국어로 준비되어 있었다. 사장님은 외국인이 하도 많아서 마련했다고 하셨다. 이미 지방에서는 노동 또는 결혼을 이유로 입국한 여러 외국인이 자주 보인다. 한국인의 반이 수도권으로 몰려들면서 생긴 지방의 빈 공간을 외국인이 채우고 있는 것이다. 인종 또는 민족에 따라 국적을 정의하게 되면 이러한 현실을 고려하지 못한다. 즉, 우리가 한국인이라고 여기지 않는 사람들은 배제하게 된다는 뜻이다. 여기서 소외가 발생한다.


많은 인종이 뒤섞인 미국에서도 이러한 문제의식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에 보았던 한 영상에서는 백인 미국인이 아시안 미국인에게 어디 출신이냐고 물었다. 아시안이 샌디에고 출신이라고 답하니 백인은 다시 묻는다. 실제로 어디에서 왔냐고, 태어나기 전에, 너의 뿌리가 어디에 있냐고. 그래서 아시안이 백인에게 거꾸로 물으니 백인이 답한다. 난 그냥 미국인이야. 


우린 비주얼에 국한된 사고를 하고, 항상 시각적 요소에 매몰된다. 그래서 소수자는 생김새로 출신지를 정의 당한다. 우리는 아시안이 아닌 한국인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조나단이 던지는 중요한 물음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서정적인 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