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과 수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르는 서정시였다. 교수님은 ‘서정'이 ‘정서를 펼친다'는 뜻이기 때문에, 분노하고 욕하는 시야말로 가장 서정시다운 서정시라고 말씀하셨다. 난 환호했다. 이렇게 고정관념을 뒤집고 정의를 새로 쓰는 일이 너무나 짜릿했다. 나의 전공이 고마운 이유는 시각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정적인 글을 써보겠다. 이유는 글을 쓰려고 키보드를 붙잡은 지 세 시간이 지나도록 어엿한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즘엔 유독 내 글에 화가 난다. 방금도 ‘어엿한' 말고 다른 단어를 쓰고 싶었다. ‘이렇다 할', ‘보기 좋은'처럼 상투적인 단어들만 떠올라서 답답함이 치밀었다. 예쁘고 특별한 문장을 만들어내고 싶은데, 번번이 실패한다. 내 문장은 투박하고 밋밋하다. 늘 성급하게 문장을 구성한다. 문체를 다듬는 법도 모른다. 왜 글을 쓰기 시작했지?
생각해보면, 글쓰기 자체를 즐거워했던 적이 있었나 싶다. 그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겨서 적었을 뿐이고, 즐거움은 내 글을 누군가 칭찬해줄 때나 찾아왔다. 또는 타인의 시선을 내면화한 내가 스스로를 칭찬하게 될 때에. 가끔씩 문장이 탁월해보일 때나, 훌륭해 마지 않는 글을 쓴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지 않은가. 그러나 쓰는 과정을 얼마나 즐겼냐 물어보면, 머리를 쥐어뜯느라 그런 감정을 느낄 겨를도 없다고 답하겠다. 한 문장씩 완성해나가는 성취? 속을 꺼내는 희열? 잘 모르겠다. 물리적인 언어로는 추상적인 내 생각을 온전히 담아낼 수도 없는데.
오히려 글쓰기는 짜증 나는 일이다. 내 글은 아무리 써도 거지 같고, 다른 사람이 쓴 글은 얼마나 찬란한지, 한없이 자존감을 낮춘다. 자꾸 돌이켜보고 검열하고 퇴고해야 하니 자존감을 깎는 일은 글쓰기에 필연적이다. 내가 나를 부정하는 일이 아닌가. 내뱉고도 곱씹느라 피로하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계속 쓰는 이유는 해소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로움을 추구하는 것보단 해로움을 풀어가는 쪽에 가까운 듯하다. 뒤엉킨 감정, 어질러진 생각을 눈 앞에 가져다 놓고 들여다보면서 정돈해나가는 일이다. 무형을 유형으로 바꾸기에 어렵고 유의미하다. 그래서 꾸역꾸역 이어가본다. 서툰 표현이 전하는 감동을 희망하면서. 말하는 법을 배워서 감사할 때가 있다. 나의 전공이 고마운 이유는 발화를 가르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