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가 지나는 순간 앞으로 짧아질 낮이 아쉽다. 이른 저녁부터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하면 당겨진 일몰 시간을 체감한다. 그러나 동지는 짧은 낮을 아쉬워할 겨를이 없다. 코끝에 찬 공기가 닿기 시작할 때부터 캐롤을 틀었다. 집에는 반짝이 전구도 늘어뜨려 놓았다. 크리스마스는 종교를 초월한 지 오래다. 모두들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겨울을 지나는 모습을 보면 괜히 따뜻하다. 연말의 설렘은 어디에서 올까.
이르게 찾아오는 어둠엔 쓸쓸함이 있다. 해가 잠시 모습을 감추었을 뿐인데 밤과 어둠은 온갖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낮이 한순간에 사라지고 다신 나타나지 않을 것처럼 허무하고 싱숭생숭한 기분이 든다. 야간에 일하는 사람들은 특수한 건강검진을 받아야 한다지. 우리의 유전자는 빛을 향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연말에 대한 설렘이 아니라면 이른 저녁부터 어두운 나날을 버티기 어렵지 않을까. 물론, 극지방의 삶은 상상조차 못하는 편협한 온대지방 사람의 생각이다.
찬 공기 속에서 알알이 밝힌 전구를 보면 연말을 체감하고 기분이 들뜬다. 어쩌면 밤의 길이 때문에 겨울의 긴 어둠을 밝힐 여러 불빛들이 필요했던 게 아닐까? 알쓸인잡에서 크리스마스가 전 세계적인 이벤트가 된 이유에 대해 대화한 적이 있었다. 그때 인상 깊었던 말이 길고 지루한 겨울을 나기 위해 공통의 유희가 필요했던 게 아닐까 하는 의견이었다. 송년이란 바깥의 매서운 추위를 잊고 집 안의 아늑함을 함께 즐길 만한 유희다. 물론, 이 또한 남반구의 삶은 상상조차 못하는 북반구 사람의 생각이 맞다.
한 해의 끝자락일 뿐인데, 북적이고 반짝이는 거리는 연말을 특별하게 만든다. 보통 마무리라 하면 하강의 이미지를 나타냄에도 불구하고 연말은 활기차다. 어쩌면 연말의 설렘은 끝이라는 단어가 가진 미묘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끝내는 자는 아쉬움과 성취감을 동시에 느끼고, 새로운 시작을 기대한다. 한 해를 돌이켜보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지점에 서는 것 자체로 특별한 일이다.
인류는 연속적인 시간을 끊어 기념할 것들을 만들어왔다. 그래야 삶을 길게 누릴 수 있다. 하루하루를 놀라움으로 채우는 아이들의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처럼. 시간의 구획을 나눠놓았기에 일상을 새삼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일 테다. 날짜의 개념이 이토록 고마울 때가 있었나. 사랑스러운 연말 분위기로 인해 달력의 숫자가 유달리 유의미해졌다.
내 친구 또예는 올해의 마지막 영화, 올해의 마지막 책과 같은 소소한 이벤트로 연말을 기념한다고 한다. 순간 나의 지난 해들이 아쉬워졌다. 한 해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줄도 모르고 지나쳤던 수많은 영화와 책들이 있었겠지. 또예의 연말은 의미로 가득 차 있겠지. 이건 일상을 의식하는 일이다. 새로운 방식으로 삶을 인지하고 누리는 방법이다.
그러나 내 모든 연말이 애정하는 사람들과의 풍성한 시간이었음에 감사하다. 우리 모두가 같은 지점을 동시에, 함께 넘어서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연말의 온도는 접촉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공존을 의식하고, 행복을 목격하고, 웃음을 예상함으로써 연말이 아늑해진다.
올해도 울음과 웃음이 많았던 한 해였음이 기쁘고, 새로움과 익숙함이 적당히 공존해서 즐거웠다. 이런 나를 지켜보고 대화해준 사람들께 감사함을 전하며 2023년을 마무리한다. 모두 복 많은 새해가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