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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량 Dec 21. 2023

도전

출판의 생리를 조금씩 이해해가는 중이다. 조금 더 넓게 말하자면 글의 시장이 돌아가는 논리다. 다른 창작 분야와 그리 다르지도 않다. 최근에 특히 실감해가는 사실은, 생각보다 물물교환의 형태로 글의 생산과 소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쟁은 여자의 목소리를 하지 않는다>를 읽으면서 작가의 생계를 엿보았다. 작가는 참전 군인의 목소리를 기록하는 프로젝트를 자발적으로 진행하고 있었다. 이야기를 들여다보니 그 기록이 책으로 출판된다는 약속도 보장도 없는 듯했다. 먼저 만들어보고 판매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직장인의 방식처럼 노동의 대가를 가시적으로 받는 구조가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창작의 분야 또는 창업의 세계가 그렇다. 그림을 그려서 팔기까지, 화가는 (인지도가 없는 한) 아무것도 보장 받지 못한다. 팔아보기 전에는 직접 개발한 제품의 시장 가치를 정확히 알기 어렵다. 내가 두려운 건 아무것도 모르는 채 제작하는 그 상태였다. 앞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는 채 달려나가는 것은 본능적인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나는 예상하고 싶어한다. 짧은 글을 쓰게 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길고 긴 글을 써내려가도 나만 알고 끝나게 될까봐. 죽고 나서 빛을 받는 비운의 창작가만큼은 절대로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내가 쓴 모든 글이 아까웠다. 다시는 같은 글을 쓸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오늘 쓰고 나면 날아갈 영감과 실력이라 느꼈다. 그래서 죄다 활용하고 싶었다. 이때 활용이라는 것은 경제적 활용이다. 금전의 창출이든, 인지도 확보든 자본과의 확실한 연결점을 볼 수 있길 바랐다. 지금 생각하면 웃긴 일이다. 예전에 써둔 글을 다시 읽으면 그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점차 부족해질 글인데 무엇이 그리 아까워서 아등바등 쳐다보았나. 아직 내 글은 습작이었고, 습작이어도 괜찮았다.


사실 브런치북 공모전에 떨어졌다. 이전에도 도전해보았지만 그때는 시도에 가까웠고, 이번에는 진심을 담았다. 지난 번엔 패스였다면 이번엔 슛이었달까. 그래서 결과를 기다리는 오랜 시간 동안 마음을 다잡았다. “내 글, 꽤 괜찮은데”라는 기대와 “안 되면 말고”라는 위안 사이를 끝없이 넘나들며 너무 기대하지도 너무 실망하지도 않으려 애썼다. 떨어져도 “그럼 그렇지"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체념하지도 실망하지도 않는 그 틈새를 찾는 일은 어려웠다.


하지만 해냈다. 난 무던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내가 나아가는 뭉근한 속도를 생각했다. 글에 대한 내 열정은 그리 뜨겁지 않아서 나는 팔팔 끓지 못한다. 약불도 무언가를 덥히고 익히는 것처럼 언젠가는 어떤 결과물을 볼 수 있으리라 믿을 뿐이다. 내 노력의 대가를 즉각적으로 받지 못하더라도 괜찮다고, 비로소 생각하게 되었다. 의미 있는 실패의 경험이었다. 겸허해지는 과정에 발을 디뎠다.


최근 학교 연구실에서 박사 선생님들이 책을 출판하는 일을 도와드리고 있다. 덕분에 출판사와 연락하는 방법을 배웠는데, 이분들의 대단한 글도 여러 출판사를 두드리는 과정이 필요했다.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아도 홀로 조용히 빚고 다지는 시간의 필요를 깨달았다. 다들 그렇게 도전하고 있었다. 아니, 이것이 도전의 참뜻이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 무모함과 두려움과 작은 기대를 안고 달려가는 것. 아마 달리는 과정을 즐겼기에, 혹은 견뎠기에 가능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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