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페트병으로 옷을 만드는 브랜드들이 너도나도 많아지고 있죠. '친환경 재생섬유', '플라스틱 재생섬유' 등등 '재생'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말로 불리고 있더라고요. 이 때 '재생'은 '재활용'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전 글에서도 짧게나마 언급한 적이 있는데, 사실 '재생섬유'는 따로 있습니다. 예전부터 재생섬유라고 불려온 섬유예요. 풀네임은 재생인조섬유. '인조섬유'인 만큼 재생과는 거리가 먼 섬유입니다.
안 그래도 재생섬유가 가지는 환경문제가 있어서 한번쯤 말씀드려보려고 했는데, 플라스틱을 재활용한 섬유가 점점 많이 등장하면서 재생섬유와 명칭이 혼용되는 것을 보고 지금이 타이밍인 것을 알았습니다. 재생섬유 자체는 친환경적인 이미지가 더해지면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재활용 섬유를 '재생섬유'라고 가리키는 것이 잘못 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오해가 발생할 가능성을 지적하고 싶었습니다.)
본래 재생섬유는 인조섬유의 일종입니다. 인조섬유는 말 그대로, 천연 섬유가 아니라 사람이 가공하여 만들었다는 뜻이죠. 인조섬유에는 합성섬유와 재생섬유가 있습니다. 합성섬유는 석탄과 석유를 섬유의 형태로 뽑아낸 고분자화합물이에요. 플라스틱이죠. 반면, 재생섬유는 목재나 펄프의 섬유소에 화햑약품 처리를 해서 만든 거예요. 재료는 천연이지만, 결과물은 그렇지 않습니다.
재생섬유의 그림자, 첫 번째
재생섬유가 지속가능한 섬유가 절대 아닌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화학 작용을 거치면서 인체와 환경에 유해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재생'과는 거리가 멀어요. 가장 대표적인 재생섬유, 레이온이 특히 심각합니다.
레이온은 비스코스, 모달, 리오셀 등 종류가 다양합니다. 인견이라고도 해요. 많이 들어보신 섬유 이름이죠. 각각 추출하는 나무도 다르고, 섬유 특성도 다르며, 제조공정도 달라집니다. 이 중에서 리오셀은 제조공정이 개선되어서 오염을 줄인 섬유고, 나머지 비스코스와 모달은 환경오염과 질병 발생률이 심각합니다. 비스코스는 면 린터*나 나무 펄프를 수산화나트륨 용액에 녹이고 실 모양으로 뽑아서 만드는 섬유예요. 모달은 너도밤나무에서 추출하고요.
*면 린터: 목화와 목화씨를 분리하는 공정을 거친 이후에 목화씨에 남아있는 짧은 섬유
대기오염과 수질오염도 심각합니다. 중국의 비스코스 제조업체 주변의 공기는 이황화탄소가 기준치보다 높게 검출되고, 우물도 오염되었습니다. 지역주민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암에 걸리고, 죽는 경우가 많았구요. 인도네시아의 한 비스코스 제조업체는 오랫동안 공장 폐수를 강에 방류해왔습니다. 그 결과, 많은 물고기들이 죽고, 강물에 황 잔재물들이 노랗게 둥둥 떠다닌대요.[3]
현재 국내 비스코스 제조사는 없고, 주로 중국, 인도, 남아시아에 공장들이 많다고 합니다. H&M, 자라와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이 공장들에서 원단을 공급받고 있습니다. 어디서든 같은 문제가 발생되고 있겠죠.
재생섬유의 그림자, 두 번째
photo: Greenpeace 재생섬유의 또 다른 문제는 산림파괴입니다. 나무에서 얻어지는 섬유인 만큼, 많은 나무를 베고 숲을 황폐화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어요.
캐나다의 비영리 환경 단체 Canopy에 따르면, 옷을 만들기 위해 베어지는 나무는 전세계적으로 연 1억 5천만 그루에 해당합니다.[3] 1억 5천만 그루면, 일렬로 세웠을 때 지구를 일곱바퀴는 두를 수 있는 숫자라고 하네요. 옷에 대한 우리의 요구가 얼마나 파괴적인지 보이시죠. 무게로 따지면, 매년 670만 톤의 나무가 옷을 만들기 위해 사라지고 있습니다.[4] 브라질, 인도네시아, 북미에서는 패션산업으로 인해 많은 나무와 숲을 잃었습니다.
점점 기후변화가 극심해지는 상황에서 숲을 보호하는 일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는 매년 7백만 헥타르, 즉 대한민국 면적의 70%에 해당하는 숲을 잃고 있거든요. 이거 하루로 나누면요, 19,178헥타르인데, 여의도 면적의 66배예요. 우리는 매일 여의도의 66배 면적에 해당하는 숲을 잃고 있어요. 옷과 종이를 만들기 위해 나무를 베고, 농장을 만들기 위해 숲을 불태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기후변화로 건조해진 숲에서 화재가 자주 나면서 많은 숲을 잃고 있어요. 이렇게 숲을 잃는 과정에서 나로는 탄소배출량은 전세계 20%를 차지할 정도입니다.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수많은 이유 중 산림파괴가 두번째를 차지해요. 숲은 공기를 정화하고 온실가스를 흡수해 기후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이런 숲들이 사라지면서 탄소를 내뿜는 건 상황을 두 배로 악화시키는 일이죠. 숲을 보호하는 일은 아주 시급한 문제예요.
숲을 파괴하는 건 생명체도 파괴하는 일입니다. 전세계 생명체 다섯 중 넷은 숲에서 삽니다. 특히, 인도네시아의 열대우림은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생물을 보유하고 있는 숲인데, 숲이 사라지면서 많은 동물들의 보금자리가 파괴되고 있어요. 오랑우탄, 호랑이, 코끼리 등 인도네시아의 숲에서 살아가는 많은 동물들이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전세계에서 16억 명의 사람들이 숲으로 먹고 사는데, 속수무책으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특히, 불법벌목이 많아지면서 그나마 살아남은 숲으로 이어가는 원주민들의 생계수단과 보금자리도 빼앗기고 있습니다. 기업들이 허가 받지 않고 실컷 나무를 베면서 원주민들을 몰아내거나 착취하거든요. 현재 전세계 산림파괴의 50% 이상이 불법벌목으로 이루어지고 있어요.[5] 아마존에서는 3개월 만에 서울의 1.4배에 해당하는 면적이 사라졌는데, 95%가 불법으로 이루어진 거라고 합니다.[6] 목재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면서 마구잡이로 나무를 베고 이익을 보는 사람들이 있는 거죠.
이렇게 옷을 만드는 과정에서 나무는 더 많이 베어지고, 온실가스는 더욱 많아지며, 많은 사람들과 동물들이 살 곳을 잃고 있습니다. 패션 브랜드가 책임 있게 나무를 생산하고, 숲을 관리해야 한다는 뜻이죠.
섬유의 지속가능성 확인
1. Made-by의 지속가능한 섬유 등급
지속가능한 패션 관련 비영리단체인 'made-by'는 섬유의 지속가능성을 평가하여 등급을 나눴습니다.[7] 자주 사용하는 섬유에 대해 온실가스 배출, 건강 유해성, 환경 유해성, 물 사용, 토양 오염 등을 기준으로 평가하였습니다. Class A로 갈수록 지속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자료가 불충분한 섬유는 'unclassified'로 분류하였습니다. 모달과 일반 비스코스, 레이온들은 모두 D나 E 등급으로, 인체와 환경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매우 큰 편에 속하죠.
2. Canopy의 재생섬유 기업 지속가능성 평가
Canopy Hot Buttom Report: 붉은 색 아이콘은 가장 점수가 낮은 등급을 나타냅니다.
3. 지속가능한 목재 인증
산림관리협의회(FSC, Forest Stewardship Council)
Image Credit: Sézane © FSC France FSC는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생산된 목재를 사용한 제품을 인증하는 국제인증시스템입니다. 당연히, 재생섬유를 활용한 의류제품에도 해당됩니다. 나무를 사용하니까요. 위 사진은 책임 있는 방식으로 생산된 목재로 만들어진 섬유 제품이라는 걸 증명하는 태그입니다. FSC는 목재 채집에서부터 소비자에 닿기까지 모든 공급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사회 및 환경적 영향을 확인합니다. (아래 환경산업기술원 블로그 참고)
법률 및 FSC 원칙 준수, 원주민의 권리, 지역사회와의 관계 및 노동자 권리, 모니터링과 평가, 보호가치가 높은 산림 보호, 산림의 소유권과 사용권 및 책임, 산림 개발의 환경적 영향, 산림경영 계획, 산림을 통한 편익, 산림 조림
from 'the value of FSC for textile', 2020.7
산림인증승인프로그램(PEFC, Programme for the Endorsement of Forest Certification)
pefc.org (좌), SGS Korea 블로그 (우) PEFC도 목재의 채집 및 유통이 합법적으로 이루어졌는지 확인합니다. 생산과정에서 숲 보호, 생물 다양성, 노동자 인권을 존중할 것을 요구합니다. 위 왼쪽 사진과 같이 PEFC 인증을 받은 섬유 제품은 목재가 합법적으로 생산되었다는 게 증명되는 거죠. (아래 한국SGS 블로그 설명 참고)
두 인증시스템을 간단히 비교해보자면, FSC는 열대우림 보호에서부터 시작해서, 유럽이나 북미의 숲에는 기준이 잘 맞지 않았다고 해요. 반면, PEFC는 유럽을 위한 산림관리 기준이었구요. 그리고 PEFC는 목재의 유통을 중시해서, 공급망 관리에 좀 더 초점을 맞춘다고 합니다. 2016년 기준, PEFC는 30개국에서 활용하고 2억 6400만 헥타르의 숲을 확인한 반면, FSC는 80여개국의 1억 8천만 헥타르의 숲을 확인했다고 하네요. (참고)
4. 렌징 Lenzing Group
lenzing.com 리오셀을 만든 섬유기업입니다. 리오셀은 텐셀이라고도 불려요. 두 이름 다 많이 쓰입니다. 유칼립투스 나무 펄프를 산화아민이라는 비독성 용제에 용해시켜서 얻는 섬유로, 가성소다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또, 한번 사용한 용제는 모아서 다시 사용하는 순환공정을 활용하고 있어서 다른 섬유처럼 대기나 수질오염을 유발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물 사용도 레이온보다 적다고 해요.
이외에도, 렌징은 지속가능한 재생섬유를 유통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Ecovero(에코베로)라는 섬유는 비스코스 섬유로, 일반 비스코스 섬유보다 탄소 배출량과 물 사용량을 반으로 줄였고,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생산 및 유통되는 목재를 사용합니다. 또한, 섬유의 '원료 추출-생산-유통-폐기'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서 환경적인 영향을 줄여 EU 에코라벨(EU Ecolabel)을 받았다고 해요. 이외에도 텐셀리오셀 섬유는 생산과정에서 자투리 면을 원료로 사용하고, 텐셀모달은 재생가능한 나무로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재생인조섬유, 이름의 '재생'이라는 단어 덕분에 언뜻 친환경적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과 다릅니다. 첫번째, 일반적인 재생섬유는 인체에도 유해하고, 환경에도 유해합니다. 두번째, 재생섬유를 만드는 과정에서 아주 많은 나무를 베어냅니다. 내가 옷 한번 사입을 때, 지구 반대편의 나무가 우수수 베어지고 있을 거라는 건 생각도 못했죠. 우리 옷은 나무이기도 하고, 플라스틱이기도 하답니다. 과학의 발전이 얼마나 대단한지, 정말 다양한 재료로 옷을 만들고 있어요. 재료의 원래 모습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요. 레이온, 비스코스, 모달이라고 적혀있는 옷은 자제해야겠어요. 그렇게 따지면 폴리에스터, 나일론, 아크릴, 면, 울 등등 셀 수도 없지만요. 그래서, 이번에도 이 말과 함께 마무리할게요.
Buy Less, Choose Well, Make It Last
- Vivienne Westwood
참고자료
남종영, "원진레이온의 자살행렬은 끝나지 않았다" 한겨레. 2013년 6월 28일
Nikki Brogan, "Material Guide: How Ethical is Modal?" Goodonyou, 2020.1.31
Emma Thomson, "Hidden deforestation in the fashion industry: how sustainable is "sustainablae" fabric?" Forest500, 2019.9.13
"Severe environmental pollution in the production of viscos", Facing Finanace, 2017.7.12
Forests for fashion, "Fashion's forest footprint: PEFC at Innovation Forum", PEFC, 2020.5.27
Gintare Matuzaite, "How wearing clothes contribute to deforestation and what you can do about it" Amberoot, 2018.10.11
"MapBiomas Alert points out that 95% of the deforestation detected in the coutry in 2019 was not authorized", Mapbiomas Alerta, 2019.6.7
Isobella Wolfe, "Mady-by Environmental Benchmark for Fibres", Goodonyou, 2018.12.16
"The Hot Button Report - 2020 Hot Button Ranking", Canopy
Rachel Cernansky, "How fashion is distancing itself from deforestation", Vogue, 2020.11.3
송화순 외 2명, 『텍스타일』, 교문사. 2012년
canopyplanet.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