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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량 Apr 08. 2019

누가 내 옷을 만들었을까?

요즘 우리는 매우 쉽게 트렌디한 옷을 사입습니다. 매월 쏟아져나오는 잡지에는 매월 '트렌드'라는 이름으로 서로 다른 스타일들이 가득합니다. 이렇게 트렌드는 빠르게 바뀌고 소비자는 그에 발맞춰 빠르게 옷을 사들입니다. 그리고 짧게 입고 버리죠. 이렇게 빠르게 순환하는 패션제품의 주기는 '패스트패션' 브랜드에서 시작됐습니다. '패스트패션'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SPA'라는 용어와 상통하는 개념이에요. (해외에서는 SPA브랜드보다 '패스트패션 브랜드'가 훨씬 자주 등장한다고 하네요.) 


SPA는 Specialty store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의 줄임말로, 기획, 생산, 유통까지 모든 과정을 스스로 처리하는 전문 소매점을 일컫습니다. (이 용어는 갭의 회장이 1987년 보고한 '새로운 사업체제' 선언에서 유래되었다고 해요!) SPA 브랜드에서는 상품이 매장에 진열되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하나로 통합되어 처리되기 때문에 매우 빠르고 효율적, 즉 낮은 가격으로 생산-판매가 이루어집니다. 말하자면 대량생산과 압축한 유통시스템을 기반으로 저렴한 의류를 빠르게 소비자에게 소개하는 방식입니다. 일주일에 40벌에서 60벌 정도의 신상품을 출고해낼 수 있죠. 빠른 속도에 발맞춰 트렌드를 반영하기도 쉽고, 저렴한 가격으로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트렌디한 옷을 저렴하게 사입고 유행이 지나면 버리고 새로운 제품을 구입하는 소비자들의 욕구에 대한 반응이죠.


하지만 이 옷들이 왜 싼지 생각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빠르게 트렌디한 옷을 가져다주는 이 SPA 브랜드들의 이면에 아주 문제가 많다는 건 워낙 오래전부터 논란이 되어왔습니다. 노동착취문제나 환경문제까지, 유명하죠! 이 부분에 대해서는 7년 전부터 꾸준히 대두되었던 문제라 기사도 많고 다큐멘터리 영상도 많아서 많이들 알고 계실 거 같아요. 아래 영상을 참고하면 간단하게 정리될 거 같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WRrheHG_A4


 이번 글에서는 노동착취 문제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봅시다. 옷이 싼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말할 수 있죠. SPA브랜드는 인건비 절감을 위해 외국에 생산 하청업체를 두고 있습니다. 글로벌 아웃소싱이죠. 그리고 생산단가를 낮추기 위해 생산량을 어마어마하게 늘리고 인건비를 낮추는 것뿐만 아니라 건물을 불법 증축하는 등, 최소한의 노동자가 받아야 하는 권리를 박탈함으로써 생산단가를 낮추는 겁니다. 


2013년 방글라데시의 라나 플라자라는 의류업체 공장 건물이 무너지는 참사가 있었습니다. 1,130여명이 죽고 2,500명 이상의 사람들이 다친 끔찍한 사고죠.  무너진 건물은 불법설치, 부실공사 등의 문제가 있었고, 벽에 금이 가는 등의 이상징후가 나타났음에도 건물주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들은 시급 단돈 260원으로 과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이 사고로 의류회사 하청업체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의 열악한 임금과 노동환경이 전세계에 알려졌습니다. 라나플라자의 의류 제조 공장에서 제품을 재조해왔던 브랜드는 H&M, 타미힐피거, 베네통, 망고, 프라이마크 등이라고 합니다. 이 사고를 기점으로 많은 의류기업들이 방글라데시 노동 조건 개선 기금을 30억 달러 정도 마련했고, 스프링클러, 방화벽, 화재경보기 등의 건물 안전 장치를 설치하기로 약속했습니다.


라나플라자 붕괴사고 2013년

하지만 패션 브랜드들은 재난 희생자와 그 가족들에게 지급하는 배상금 지불을 늦추고 늦췄죠. 그나마도 국제노동기구에서 보상금 펀드를 마련했다고 해요. 비영리단체 펨넷은 "매년 수익이 200억 달러에 달하는 기업들이 3천만 달러를 모금하는 데 2년이 걸렸다"고 말합니다(카트린 하르트만). 그렇게 겨우 3천만 달러가 모였지만 재난 희생자들과 가족들이 치료받기에는 충분치 않은 금액이었고, 너무 많은 기업들이 오랫동안 배상금 지불을 거절해왔기 때문에 그 사이 그들의 건강은 이미 상당수 악화된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이후, 패션계는 여전합니다. 2014년, 홍콩의 한 노동단체에 따르면 유니클로의 중국 하청공장의 노동자들은 매월 정해진 시간 외 노동시간이 100시간을 초과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2016년, H&M이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 약속을 지킬 것을 요구하는 단체, '에이치엠 브로큰 프로미스(HMbrokenpromise)'는 가동 중인 공장의 55%가 아직 화재 대비용 비상구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라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작년 10월말, 홍콩의 South China Morning Post는 인도네시아 유니클로 공장 노동자들이 퇴직금과 미납 임금 지불을 요구하는 투쟁을 4년째 계속해오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SPA브랜드 뿐일까요? 많은 패션 브랜드들이 노동착취 문제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Bobtist World Aid Australia 라는 비영리 단체가 2018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114개의 의류기업과 407개의 패션브랜드 중에서 고작 5%가 그들의 생산 근로자들이 임금을 제대로 받고 있다고 증명했고 70%가 아직 임금을 개선하기 위한 행동을 취하지도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라나플라자 사건 그 이후 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패션산업에는 노동착취 문제가 만연해 있습니다.  


H&M broken promises 운동과 관련된 인스타그램 게시글입니다


아동착취 문제도 심각합니다. 국제노동기구에 따르면 1억 7천명의 어린이들이 노동현장에 나가있고, 그 중 대부분이 패션산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합니다. 다국적 기업에 대한 노동문제를 전문적으로 조사하는 네덜란드 소재 비정부기구 SOMO(Center of Research on Multinational Corporations)에 따르면, 인도 남부에서 부모에게 고임금, 편리한 숙박시설과 영양 넘치는 식단, 교육과 트레이닝을 약속하며 딸들을 데려간다고 해요. 그리고 그 아이들이 마주하는 건 현대판 노예제도인 거죠.


출처: The guardian


 라나플라자 사건으로 사람들은 패션산업의 노동착취 문제를 인식하고 '누가 내 옷을 만들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패션산업의 투명성을 요구하기 시작한 거죠. 사람들은 패션상품의 생산, 유통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노동자의 임금과 근무환경과 관련된 정책까지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길 외쳤습니다. 이렇게 라나플라자 사건을 계기로 '패션혁명Fashion Revolution'이라는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사고 입는 옷이 누가 어떻게 만드는지에 대한 과정을 알고 밝히자는 움직임이죠. 라나플라자 사건이 발생한 4월 24일을 패션혁명의 날로 지정하고, 패션혁명 주간을 통해 패션기업의 투명성을 요구하고 패션산업의 실태에 대한 각종 포럼과 캠페인이 진행됩니다. 올해는 4월 22일부터 28일까지가 패션혁명주간이라고 하네요. https://www.fashionrevolution.org/


패션혁명 운동은 더 많은 브랜드들이 다음 질문에 대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whomademyclothes 

#누가내옷을만들었을까? 이미 완성된 제품과 그 속에 녹아든 노동자의 삶 사이의 단절이 현대판 '노예제도'가 지속되는 큰 이유이기 때문에 누가 내 옷을 만들었는지 묻고 답하는 것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어느 누군가가 내 옷을 만들었다는 사실에 대한 관심이 그 누군가가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일을 하는지를 개선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 수 있는 거죠.


소비자들이 누가 옷을 만들었는지, 그들이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근무하고 있는지에 대해 한 조각의 관심이라도 갖게 되는 것이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윤리적 소비가 늘어날수록 기업들이 스스로 윤리성을 검열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다는 거죠. 실제로 소비자들이 윤리적 소비를 할 수 있도록 많은 정보와 지표를 제공하고 있는 사이트들이 많습니다. 딱 네 가지 사이트를 소개해드리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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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살펴봤던 패션혁명에서도 매년 패션 투명지수에 대해 발표합니다. 브랜드, 기업의 생산-유통 과정에 대한 투명지수죠. 브랜드의 사회, 환경과 관련된 정책을 검토하고, 그 정책을 현실적으로 반영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브랜드가 가지는 사회적, 환경적 책임을 어떻게 지는지, 그들의 생산-유통과정을 공개하는지, 공급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등의 많은 정보를 취합하고 점수를 매긴다고 합니다. 어떤 브랜드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했는지, 그 방법론과 점수를 내는 방식과 기준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투명지수에 대한 최종 결과를 퍼센트로 보여줍니다. 브랜드 이름과 점수를 아주 투명하게 공개합니다! 자라, 갭, 버버리, 샤넬, 아디다스 등등 럭셔리 브랜드에서부터 SPA, 스포츠웨어까지 장르를 넘나들어요. 웬만한 브랜드는 다 공개되는 것 같네요. 다음링크에서 2018년 패션 투명지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떤가요, 다음 쇼핑에 영향을 미칠 것 같나요?

https://issuu.com/fashionrevolution/docs/fr_fashiontransparencyindex2018?e=25766662/60458846

이렇게 점수에 따라 투명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설명해주고,
이런 방식으로 브랜드 투명도 지수를 발표합니다! 61% 이상의 투명도 지수를 가지는 브랜드가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네요.
이건 2017년도 투명도 지수 결과입니다. 2018년 점수 판정 기준이 좀 더 깐깐해진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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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도 잠깐 언급했던 Bobtist World Aid Australia입니다. 이 비영리단체도 매년 패션브랜드의 윤리성을 평가하고 소비자들에게 공개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공급 과정의 노동자 착취여부와 노동자 권리의 정도에 대해 A부터 F까지 등급을 매깁니다.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해볼 수 있는데, 아래 사진과 같이 기업정책과 투명성, 공급자와 감사자 사이의 관계, 근로자 권한 여부에 따라 기업윤리 등급을 나눕니다. 굉장히 점잖은 팩트폭력 같네요.

https://baptistworldaid.org.au/resources/2018-ethical-fashion-guide/

호주의 비영리단체여서 그런지 호주 브랜드들이 많지만 유명브랜드들도 드물지 않게 찾아볼 수 있네요. 라코스테와 랄프로렌, 유니클로가 D+라니 무슨 일일까요.... 이 단체는 올해 500개가 넘는 의류기업과 패션 브랜드를 상대로 조사를 진행했다고 하니 이외에도 많은 브랜드를 확인해볼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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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on you 라는 사이트도 소비자의 윤리적 소비를 돕기 위해 브랜드의 윤리성을 평가하고 있습니다. 어플리케이션도 있어요. Good on you는 크게 세 가지 가치를 바탕으로 브랜드를 평가합니다: 사람, 지구, 동물. 생산-유통과정의 정책, 노동자들의 권리, 작업안전 등을 확인하고, 자원낭비나 탄소배출, 폐기물 등을 확인하며, 동물의 털과 가죽의 사용 여부나 그 과정 등을 확인합니다. 그렇게 평가된 점수는 아래의 다섯 가지 표정으로 나타냅니다. 이것은 귀여운 팩트폭력... https://directory.goodonyou.eco/


그 외에도 공정무역(Fair Trade), 오코텍스(Oeko-tex: 섬유제품의 친환경 안정성 평가), GOTS (Global Organic textile Standard: 국제유기농섬유규격, 오가닉 섬유의 생산, 가공, 유통의 통합된 기준) 등의 마크를 참고해서 검사한다고 합니다. 이 세 가지 마크는 품질 판단에도 유용한 정보라서 첨부합니다.

왼쪽부터 차례로 공정무역, 오코텍스, 국제유기농섬유규격의 인증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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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ir Wear Foundation (FWF) 라는 공정 의류 재단은 재단에 가입한 브랜드를 상대로 매년 브랜드 성과감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120여 개의 패션 브랜드가 가입했다고 하는데, 이들은 정기적인 감사를 통해 재단, 봉제, 부자재 등의 모든 생산과정에서 정해진 기준과 부합하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합니다. 아동 노동을 금지하는 것은 물론이고요. UN의 인권선언문과 국제노동기구 협약을 참조해 만든 엄격한 기준이라고 합니다. 아래 링크에서 FWF에 가입한 브랜드들을 확인할 수 있어요. https://www.fairwear.org/brands/



 사실 기업들도 생산-유통과정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상세히 알지 못한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해요. 유통자 이전에 또 다른 유통자가 있고, 생산자 이전에 또 다른 생산자가 있는 이 복잡한 구조를 기업이 모두 감사하기는 힘들다고요. 하지만 그만큼 패션 기업들이 하청업체에 대한 통제력을 좀 더 가지고, 생산과정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파악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은 필요하겠죠. 그 노력이 가능하도록 돕는 게 Fair Wear Foundation과 같은 재단이고요. 이런 비영리기구와 재단들이 참 많더라구요. 그리고 공정무역을 실천하고 있는 아주 건강한 브랜드들도 많아요. 다들 어렵다 어렵다 하는 걸 실천하고 있는 브랜드들입니다. 관심의 차이죠.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생산공정의 비윤리성이 드러난 브랜드의 제품을 '무조건적으로' 보이콧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 제품을 구입하는 것을 아예 거부하기에는 노동자들의 밥줄 또한 관련되어 있는 걸요. 그저 소비자들이 '아는 것'에서부터 변화는 시작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소비자 스스로 브랜드의 윤리성을 검토하고 생산공정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패션 기업에 윤리적 책임을 요구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죠. 그리고 그것은 이 질문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누가 내 옷을 만들었을까?




참고

* Luke Michael, "Ethical Fashion Report Finds Workers Exploitation Still Rampant" PRObono. 2018. 4.18. https://probonoaustralia.com.au/news/2018/04/ethical-fashion-report-finds-worker-exploitation-still-rampant/

* Jody McCutcheon, "How to know the best and worst brands for sweatshop labour" ELUXE magazine. https://eluxemagazine.com/fashion/worst-brands-for-sweatshop-labour/

* Josephine Moulds, "Child labour in the fashion supply chain- where, why and what can be done" The guardian. https://labs.theguardian.com/unicef-child-labour/

* Rhonda LaBatt, "Why does it matter who made my clothes?" Trusted Clothes. 2016.4.25

* https://www.heftykr.com/spa_again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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