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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ene Jul 27. 2021

공부가 하기 싫은 모든 이에게

진로 특강이 내게 던진 질문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진로 특강을 할 기회가 생겼다. 특강 주제는 ‘why 공부를 해야 하나요?’라고 한다. 왜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하는지, 왜 좋은 회사에 들어가는 게 좋은지 학생들에게 전달해주면 좋겠다는 취지다. 자연스레 과거를 돌아보게 됐다.


공부를 왜 해야 할까?

 고등학생의 내가 내렸던 결론은 현실에 너무나 수긍해버린 모습이었다. 어쨌든 내가 입시를 치르지 않을 수 있는 방법도 없고, 그만큼 다른 특별한 재능이 있지도 않았다. 오히려 교과 과목들의 성적이 괜찮게 나오는 게 내 재능이기도 했다. 수학이 재미있었고 역사는 교과서를 암기해버릴 정도로 그 자체가 나름의 재미였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자’, ‘공부가 다도 아닌데 다도 아닌 공부 못해볼 거 뭐 있나’라는 마음으로 임했다.


좋은 대학에 가면 끝일 줄 알았건만, 끝이긴 커녕 그제야 시작이었다. 울타리 바깥으로 첫발을 내디딘 양 같았다. 더 이상 공부는 하기 싫은데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해야 하는지 몰랐고 아무도 더 이상 나에게 가이드를 주지 않았다. 나에게 제대로 된 ‘인생’을 가르쳐주지 않은 어른들이 원망스럽기도 했으나 내 삶을 책임져줄 사람은 없었다. 길을 잃고 헤매던 와중 경험한 교환학생이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였고 그 이후로 나만의 길을 만들어 나가면서 지금의 주관과 확신이 꽤 뚜렷한 사람으로 커왔다. ‘나 스스로 해냈고 해낼 수 있다는’ 마인드가 깊숙이 자리 잡았다.


이번 주 북클럽의 책은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이었다. 능력 있는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선천적으로 물려받은 배경보다 개개인만의 능력을 바탕으로 평가하고 그렇기에 누구나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준다. 하지만 패자(라고 칭하는 것도 오만일 수 있겠다)에 대해서는 어떠한 안전망도 없다. 능력이 있었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고, 따라서 성공하지 못한 자는 능력이 없어서 실패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중 대학은 능력주의의 가장 큰 표상이다. 치열한 경쟁을 통해 대입을 준비하고 그에 따른 사회적 승자와 패자가 나뉜다. 특강을 준비하던 와중 책을 읽으니 머릿속이 더욱 복잡해졌다.




그럼에도 공부는 여전히 중요하다.


 ‘아웃라이어’라는 책은 우리가 소위 말하는 ‘천재’들이 실제로는 비상한 두뇌와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만큼 어릴 때 특정 분야에 대해 충분히 노출되었던 환경이 있었기 때문에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다고 말한다. 빌 게이츠는 그 시대에 몇 달 동안 동네의 최고급 컴퓨터를 계속 붙잡고 만져볼 기회가 주어졌다. 모차르트의 곡들은 18년 동안 끊임없는 연습의 산물이었다. 공부 또한 마찬가지다. 어릴 때부터 나의 재능을 증폭시켜주거나 일깨워줄 수 있는 충분한 기회가 주어지는 환경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더 많은 기회를 가져다줄 수 있게 해주는 게 공부다. 더 풍부한 지식, 다양한 경험, 새로운 사람과의 관계 등. 주도적으로 끊임없이 나를 좋은 ‘환경’에 노출시켜야 하고 청소년 시기에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효율적인 방식이 공부인 것이다.


대입 이후에도 공부는 끊임없이 필요하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관련 분야 지식을 공부한다. 공부가 왜 필요한지라는 물음보단, 꼭 좋은 대학을 가야만 성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인식에 물음을 제기하고 싶다. 대입이라는 눈앞의 목표도 중요하지만 그 이면의 크고 긴 호흡을 놓치지 말라는 말을 전해주고 싶다. 꼭 좋은 대학에 가지 않아도 좋은 삶을 살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경험과 기회가 주어지고, 실패해도 용인되고 다시 격려되었으면 한다.


친구가 실리콘밸리의 교수에게 들었다던 말이 기억난다. 실리콘밸리가 언제까지 1등으로 남아있을까?라는 주제였다고 한다. 중국 션전은 정부 차원에서 AI 기술 발전에 힘을 쏟고 있고, 개인 data privacy가 별로 보장되지 않기에 이미 어떤 분야에서는 실리콘밸리를 뛰어넘었다고 한다. 한국도 판교 테크노밸리라는 명칭과 함께 열심히 달리고 있다. 교수의 대답이 인상 깊었다.


“그 어떤 나라도 신경 쓰지 않는다. 실리콘밸리는 단순히 똑똑한 사람들이 모인 것이 아니다. 여기서는 모두가 스타트업을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성공하여 부를 얻으면 너무나 당연하게 다른 스타트업에 투자를 하는 선순환의 구조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곳은 실리콘밸리밖에 없다고 자부한다”


이렇게 선순환 고리가 만들어져 지속적으로 새로운 도전과 실패가 자유롭게 나올 수 있는 환경이었다. 도전의 문화가 정착했다는 것과 그에 대한 자긍심이 느껴져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당장 어떻게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는 아마 사회의 큰 분들께서 잘하시리라 싶다. 하지만 어쩌면 몇몇의 고등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니 괜스레 사명감이 들기도 하고, 그간 받았던 무수한 도움과 소중한 조언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뭉클하며 나도 미래의 많은 이들에게 보답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큰 보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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