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의 힘
서기 10,191년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듄’. 아라키스의 프레멘인들은 주인공에게 연거푸 ‘라신 알 가입’을 외친다. 몇 천년 동안 그들은 베네 게세리트의 잠입과 믿음 전파에 따라 메시아만을 기다려왔다.
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보는 나로서는 처음에 영화 도중 등장한 ‘종교 전쟁’이라는 단어를 들으며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과학 문명이 저 정도로 발전했음에도 절대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과 그에 따른 구원을 기다리는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고 느껴져 신기한 마음이었다.
스토리텔링의 힘이란 이렇다. 한국식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로 이어지던 기-승-전-결이든, 디즈니식 고난 끝의 해피엔딩이든, 탄탄한 구조와 설득력 있는 메시지는 우리의 감각을 깨우고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기술의 급속도 발전으로 점점 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만 할 것 같아도 그와 동시에 스토리에 매료되어 구원자를 기다리고 숭배하는 마음은 인간이 살아있는 한 계속 존재한다. 비즈니스가 아무리 데이터 기반의 끝없는 숫자와 수치를 바탕으로 결정을 내리더라도 그 숫자 사이사이에 숨어 뼈가 되고 살이 되는 건 스토리다.
며칠 전 참여했던 스토리텔링 워크샵은, 그 자체로 해결책이었다기보다는 좋은 스토리란 뭘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였다. 좋은 스토리를 위한 재료는 뭘까? 스토리를 통해 내가 원하는 바가 뭘까? 내가 나의 스토리를 올바른 대상에게 맞게 전달하고 있을까? 그러기 위한 연습을 제대로 하고 있을까?
강연자가 질문을 했다. “스토리텔링을 잘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누가 바로 손을 들고 대답했다. “Practice makes perfect”라고. 그러자 강연자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는 매일 수많은 택시기사가 운전을 하는데, 정말 horrible 하다. (강연자는 외국사람이다) 그들은 분명 매일 운전을 몇십 시간씩 하는데도 그렇게 못하는 이유가 뭘까?”
올바른 방향의 연습이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스토리텔링 워크샵이라 그런지 똑같은 질문을 직관적이고 재치 있게 표현한 것이 또 재미있었고, 그래서 ‘올바른 방향이 뭔데’라는 궁금증도 생겨났다.
반기마다 진행되는 Perf에서도, 일주일마다 스토리를 공유할 수 있는 시간에서도 항상 강조하는 건 “What”이 아니라 “Why”와 “How”다. 큰 숫자 나열만 하면 장땡이겠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집요하게 그 숫자가 있기까지의 Why와 How가 스토리로 전달될 때 비로소 의미가 생긴다. 일할 때뿐만 아니라 친구에게 내 생각을 말할 때도 더 좋은 스토리로 다가갔으면 하는데, 하는 생각이다. 욕심은 계속 나서, 자기만의 스토리를 담은 책을 써보고 싶다던 친구들의 마음이 얼핏 이해도 된다.
넷플릭스 CEO가 오징어 게임의 초록색 체육복을 입고 3분기 실적 발표를 했다. 10년 전 한류가 열풍이라는 뉴스를 봤을 때는 다들 반신반의하며 K- 붙은 단어는 입에 꺼내기도 민망해하더니, 이제는 우리 입으로 말하기도 전에 한류와 K-콘텐츠 열풍을 체감할 수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좋은 스토리가 각광을 받고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시대다. 바쁠수록 웹툰, 유튜브, 넷플릭스로 스토리들을 찾아가며 인간다움을 느끼는 나 자신을 보며, 먼 훗날 나만의 스토리는 무엇일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