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성공한 세미나 PT
내가 영어공부를 한 시기는 코로나 시기와 겹친다. 이곳 말레이시아는 2-3년 동안 락다운이 되어서 사람을 만나거나 오프라인 수업을 갈 수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스피킹이 내게 큰 걸림돌이었다. 게다가 다인종 다문화 국가인만큼 영어발음도 천차만별인데 문제는 한국 특유의 영어발음을 못 알아듣는 현지인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발음이 안 좋은 사람들을 만나도 그 사람들끼리는 잘 이해했고, 나의 발음은 소통에 지장을 주곤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학원에서는 모든 섹션에 프레젠테이션 과제가 있었다. 어영부영 대충대충 그 시간만 끝나기를 기도하며 반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어떤 나이가 지긋하신 교수님이 프린트물을 읽지 말고 큰 목소리로 정확히 하라며 여러 차례 지적하는 바람에 곤욕을 치렀던 적도 있다. 시력이 안 좋은 나는 난시도 있어서 렌즈만으로는 화면의 글들을 읽을 수 없었기에 더욱 당황스러운 상황이 되었었다. 오랜만에 모욕감을 느낄 정도로 그 교수님은 예의 없이 나를 대했고 그 시점으로 나는 제대로 해야겠다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기분은 나빴지만 모든 것이 사실이기에 시력이 안 좋다는 핑계로 넘기고 싶지 않았다. 이후 다른 섹션에서 클래스메이트들의 고발로 해당 교수님의 무례함이 수면 위로 올랐고 여러 사람들이 내 편에 서고 학교에 리포트를 작성하자고 종용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었던 건 그 교수님을 벌하고 싶은 것도, 복수도 아니었다.
나는 나 스스로를 성장시켜 이런 대접을 받지 않는 사람으로 거듭나고 싶었다.
이제 논문작성을 시작하기까지 두 섹션이 남았다.
슬프지만 기쁘게도 이번 세션에 그 교수님을 다시 만났다. 전례 없던 일이고 내게는 기회였다.
내가 지금까지 해온 노력의 결과를 보여주겠다는 각오를 하고 첫 세미나를 들었다. 나는 나의 시력에 잘 맞는 안경을 샀고, PT용 글자를 키웠으며, 발음연습을 해왔고, 리딩에 탁월하게 자료를 만들었다.
결론적으로는 성공적인 나의 영어 프레젠테이션은 나까지 감동시켰다.
내가 행한 것들을 공유해 본다.
첫째, 파닉스 공부를 했다.
영어공부를 아이가 처음에 한 것처럼 다시 시작했다. 아이들은 영어를 파닉스부터 배워서 발음을 이해하고 한국발음에 없는 것을 배우면서 시작한다. 하지만 어른들은 문법, 쓰기, 듣기 등의 시험항목을 공부하듯이 시작한다. 물론, 나는 IELTS 점수가 필요했기 때문에 시험공부로 영어를 시작했다.
파닉스에 대한 유튜브 영상들을 먼저 이해하고 말해보카 앱을 유료결제 했다. 이해 안 가는 발음은 반복 듣기 하거나 아이에게 여러 차례 확인했다. 그리고 매주 1회 발음에 집중하는 영어과외를 받았다. 아주 기초적인 것만으로 발음에 집중해 달라고 부탁했고, 항상 유치원생들처럼 공부를 지속했다. 이 과정에서 모르는 발음을 따라 하지 못하는 것과 단어 내에서나 문장 내에서 고저 악센트(pitch accent)와 강세 악센트(강약 악센트, stress accent)가 큰 문제라는 것도 깨달았다. 평생을 서울말을 사용한 나는 모든 악센트가 일정했고 이것은 영어로 말하기에 큰 단점이었다. 6개월 넘게 지속하고 드라마틱한 성과는 없었지만, 사람들이 내 말을 더 잘 이해하고 있다는 건 알겠다.
둘째, PT용 자료를 읽을 수 있게 만들었다.
한국에서 나는 PT 멘토링도 하고 강의도 하던 사람이다. 그런데 한국스타일로 하려니 영어실력 부족이 문제가 되었다. 원래 한국어로 발표할 때는 중요한 내용만 남기고 스피치 내용은 따로 외워서 했다. 다만, 발표자료에서 언급할 내용의 시작점을 알 수 있게 하는 방식을 썼다. 전 브런치 글 중에 프레젠테이션 파일 만드는 노하우가 담긴 글이 있는데 그 글을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이렇듯, 발표자료를 읽지 않는 방식의 나만의 노하우가 있었지만, 이 룰을 깨고 다른 방식을 택했다. 바로 발표자료를 마음 편하게 읽는 것.
항목을 크고 명확히 표시하거나 다이어그램을 충분히 활용하되 설명문들을 아래에 모두 적었다. 보는 사람은 읽지 않을 만한 크기와 디자인으로 중요하지 않게 표시하되 가독성은 높여서 내가 읽기 편하게 했다.
크게 공들이지 않고 아래 샘플정도로 만들었다.
셋째, 아는 단어만 사용했다.
영어 자료를 만들 때 보통 번역툴을 사용해서 얻은 결과물이나 다른 자료에서 가져오는 문장을 재정리한다. 이 과정에서 내가 모르는 단어들이 섞이기도 하는데 자료를 만든 후 연습을 할 생각을 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나는 발표자료를 만든 후 모르는 단어를 체크한 후 모든 내용을 내가 아는 단어로 대체했다. 연습해서 잘 발음하거나 읽을 수 있으면 좋지만, 발표하는 순간 하나라도 바로 떠오르지 않으면 당황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자료 작성을 완료 후 발표연습을 해보면서 바로바로 안 읽히는 단어를 표시했다. 그다음에 그 단어들을 유사어 중 아는 단어로 교체했고, 정 단어가 없으면 문장 자체를 바꿨다. 이 방법은 리딩을 잘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심리적인 안도감을 갖기 위함이기도 하다.
영어 프레젠테이션을 앞둔 분들에게 도움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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