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디지털노마드 사업가가 되다
“태동 소리 싫어하는 엄마는 처음 보네요.”
여간호사가 간드러진 목소리에 비꼬는 듯한 말투로 내뱉고는 나가버렸다. 온몸이 축 늘어져 침대에 겨우 누워있었다. 병실 내 내 자리는 창가 바로 옆이었지만, 새벽 1시간 훌쩍 넘은 시간이어서 어두컴컴했다. 머리맡에 있는 조그만 LED 전등 2개가 빛을 밝히는 전부였다. 침대 옆에서 나를 측은하게 바라보며 간호사에게 이것저것 질문 보던 남편이 간호사 말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봐요, 지금 뭐라고 했어요? 그게 할 말이에요?”
“아니, 왜요? 태동 소리 듣기 싫다고 하시니 그냥 한말인데요.”
“제 아내가 언제 듣기 싫다고 했어요? 줄여달라고 했지! 사과하세요.”
조산 위험이 있어 대학병원에 입원하게 된 날부터 3일째였다. 나는 의사든 간호사든 나의 아랫도리를 헤집기 일쑤였고, 따뜻한 말 한마디 없이 대하는 상황에 지쳐갔다. 아침부터 밤까지, 다음 날 아침까지 병실은 내내 시끄러웠고 시도 때도 없이 내 몸에 손을 댔다. 새벽 1시가 넘은 시각, 잠 한숨 제대로 취할 수 없는 내게 대형트럭이 지나가는 것처럼 큰 소리로 태동 소리를 들려주는 간호사에게 겨우 한마디 했다.
“아.. 좀 줄여주세요.”
나는 이 한마디를 한 후 사랑하는 아이의 태동 소리조차 싫어하는 엄마로 낙인찍힌 것이다. 남편이 끝까지 사과를 받아줬으니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내 분노에 내가 이기지 못해 다음 날 바로 병원을 뛰쳐나갔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나는 조산을 하지 않았고 이런 곳에서 아이를 낳는 안타까운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다. 몇 년 후 이 병원의 신생아실에서 아이가 죽어나갔는데 병원의 관리 소홀이 원인이라며 온갖 뉴스에서 떠들어댔다. 자칫하다가 나도 사고의 당사자가 될 뻔했다.
국가지원금을 받으면서 창업활동을 하는 것은 창업가에게 딱히 긴장감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겪어보니 알겠다. 사무실도 무상으로 쓰고 사업비용도 조금씩 받으니 목숨 걸고 죽을 만큼 힘들게 하지 않았다. 고정비가 크지 않으니 지속적으로 성장만 시키면 될 것처럼 보였다. 나라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은 여러 종류의 국가지원사업에 합격하고 지원을 받으면서 더욱더 충만해져 갔다.
창업 초기의 긴장감은 없이 이대로 지속하기만 하면 성공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라며 안이하게 생각했고, 이 정도의 노동의 강도와 시간 할애라면 임신도 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계획임신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 창업자이기에 이 시기에 임신을 하면 1석 2조라며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임산부가 된 나는 임신이라는 것이 조금의 여유를 쪼개으면 되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한 창업활동도 여유롭고 자유분방하게 해서는 어떤 성과도 낼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임산부인 나는 창업활동에 집중하지 못하고 1년이 되어가는 시점까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고, 계속 돈을 까먹고 있었다. 창업 초기보다 더 심도 있는 긴장감을 느끼게 되고 태아에게 미칠 영향을 걱정할 겨를이 없을 정도로 마음이 조급하고 불안했다. 더 이상 경제적으로 가정에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자금난 해결을 위해 만삭의 배를 이끌고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녔다. 무엇이든 해보려고 발버둥 치던 나는 결국 [조산 위험]이라는 벽 앞에서 무너졌다.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조산 위험에 처한 이유를 창업활동이라고 단정 지었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었고, 더 큰 불행을 막기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놔야 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걸 인정해서일까. 침대에 누워만 있으라는 의사의 말을 고스란히 지키면서 휴식기간을 가졌다. 나의 임신과 출산은 창업 초기 나의 꿈을 무너뜨렸다. 사업이 안정화되기도 전에 나는 임신했고, 결국 사업을 안정화시키는데 실패했다. 어떻게든 해낼 수 있다고 막무가내로 믿던, 하늘을 찌르던 자신감은 안개처럼 사라져 버렸다.
내가 사업에 실패한 이유는 임신과 출산 때문이기도 했지만, 내가 잘하지 못하는 사업을 해서이기도 했다. 1년 정도 준비했던 사업을 뒤로하고 갑자기 디자이너 의류 브랜드에 손을 대면서 우왕좌왕했었다. 이제와 생각하면 패션에 대해 뭘 안다고, 재고 사업에 대해 뭘 안다고 손을 댔는지 한심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그때는 잘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들과 함께라면.
당시 2-3시간 간격으로 24시간 동안 아이에게 모유를 먹이고 있었다. 이와 같은 하루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도저히 짐작할 수가 없었다.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었고, 유지할 돈도 더는 없었다. 이별밖에 방법이 없었다.
“미안해요. 지금 하던 일을 정리해야 할 것 같아요.”
투자자에게는 사업을 똑바로 운영하지 않고 개인적인 일(?)로 성과를 내지 못한 대표가 되어 얼굴을 들 수 없었다. 전세금을 빼서 투자금을 돌려줘야겠다고 생각하니 남편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남편은 한 달 내내 일해서 몇 백 벌어오기 힘들어하는데 몇 천… 을 날렸다고 어떻게 말해야 할지 막막했다. 남편은 분명 짐작하고 있었다. 임신기간 동안 일상적인 일로 다툼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남편은 내가 스트레스 때문에 더 예민하다고 말하곤 했다. 내 상황을 일일이 묻지는 않았지만 지나가는 듯이 힘들지 않냐고 묻곤 했었다. 남편도 욱하는 성격 때문에 내게 다정다감하게만 대해주지는 못했지만 평소에는 분명 나를 살피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쩡아, 돈 때문에 걱정하지 마요.”
나의 양손을 꼭 잡은 그는 나를 지긋하게 쳐다보며 저음으로 말을 걸었다. 내가 상황을 얘기할 필요도 없이 그는 모든 걸 알고 있다는 표정처럼 보였다. 그의 손에 잡힌 내 손은 미세하게 떨고 있었는데 나는 그가 눈치를 챌까 심장이 두근거렸다. 다행히 나의 떨림을 인지하지는 못한 것 같았다. 내 마음 편하라고 걱정 말라고 말해준 걸 알지만 도저히 전세금에서 몇 천을 빼야 한다는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 남편…….. 음…... …….. 있잖아…... 흐엉…”
나는 이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끝내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남편의 마음이 이렇게 따뜻하다는 것을 알고 나서 덜 힘든 나날이었던 것 같다. 결국 전세금을 빼서 이사를 가야 한다는 말은 이사를 가기 직전에나 할 수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고 남편에 대한 믿음이 생기고 나니 말하기 훨씬 수월했다. 남편에 대한 믿음은.. 뭐랄까. 내가 돈을 왕창 날렸어도 나를 내치지 않고 사랑해줄 거란 믿음(?)이었던 것 같다.
남편이 아무리 힘이 되어주어도 내게는 너무나 힘든 시간들이었다. 자신감을 넘어 자만을 가득했던 나 자신에 대한 자책과 함께 괴로움이 지속되었다.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내가 원하지 않았지만, 여러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있으면 당연하게 눈물이 흘렀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어떤 상상도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