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기회가 찾아온 건가

2장. 디지털노마드 사업가가 되다

by 아이린

끝없는 고민이 시작되었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내가 무엇을 팔 수 있는지, 나의 가치는 무엇인지. 사춘기 때는 자아실현을 핑계 삼아 바깥으로 그렇게 나돌았었는데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인지 정신만 나돌았다. 하루빨리 나는 내가 해낼 수 있는 일을 찾아 다시 도전해야 했다. 그래야 내가 까먹은 돈도 다시 채우고 디지털노마드의 삶을 편안하게 구축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급하다고 되는 일은 하나 없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집중하면 되는 일이 많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선우야!! 오랜만이야. 잘 지내고 있어?”

“응. 나 계속 중국에 있어. 여기서 일을 좀 크게 벌리게 돼서.”

언제나 믿음직스럽고 듬직한 내 남사친 중 한 명인 선우에게 전화가 왔다. 어릴 때부터 사업하던 친구인데 최근에 신규사업을 시작한다며 내가 BI 디자인을 해주거나 기획문서를 내게 의뢰했었다. 원래 아버지도 사업가이기 때문에 언제나 여유로운 건 좀 알았지만, 가끔 허풍을 떠는 모습도 있어서 완전하게 신뢰하고 있는 친구는 아니다. 선우가 갑자기 나한테 중국에 와보라는 제안을 준 게 기쁘지만은 않은 이유였다.

선우는 중국 관광지역에 넓게 주택형 호텔을 짓는 사업에 참여했다고 했다. 메인 스테이지에서 스포츠센터와 마사지샵 등을 회원제로 운영할 계획인데 이 영역은 온전히 자신의 사업으로 추진한다고 했다. 선우는 청소년기 운동선수로 지냈던 터라 주위에 관련 일을 하거나 사업을 하는 친구도 많고, 아내도 전문 피부관리사이니 그런 그림을 그리는 것도 당연했다.

가족과 다 같이 와서 중국어 공부하면서 일하는 거 어떠냐는 선우의 제안은 디지털노마드를 꿈꾸는 내게 너무나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생후 70일인 아이를 두고 나는 중국행을 고민했다. 생전 처음 해보는 엄마 노릇이 아직 익숙하기도 전에 1주일 넘게 떨어져 있을 수 있을까? 만약 떨어진다 해도 누구에게 맡길 수 있지? 아무리 생각해도 방도가 없었다.

“남편, 우리 충기씨. 나 중국 좀 갔다 왔으면 하는데 휴가 좀 내서 아이를 보던지 같이 가던지 하는 건 어때?”

“...”

연차도 마음대로 못 내는 남편을 홀로 남겨두고 나는 고생길이 뻔한 선택을 했다. 해외살이의 기반이 될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무엇이든 감수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신속하게 중국 출장을 준비했다. 아기의 여권이 당장 필요했기에 아기를 안고 사진관으로 달려갔다. 생후 50일이 갓 넘은 아이의 여권사진을 찍는 일은 아무리 전문가라도 힘들어 보였다. 목을 똑바로 가누지 못하는 정면 사진을 찍는 일은 마법이라도 필요한 일이었다. 꺾여있는 고개를 다시 세우고, 다시 세우고, 또다시 세우고 순식간에 찍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겨우 성공한 아기 여권사진은 목덜미가 두툼하게 서너 번은 접힌 채로 얼굴과 몸이 붙은 모양새로 나왔다.

아기띠를 하고 중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갓난 아기라 가볍다고 우습게 봤는데 캐리어 끌고 가방 매고 아기까지 매고 있으니 체크인하면서 체력이 바닥났다. 사전 지식이 부족했던 나머지 첫 번째 통로 자리와 아기바구니는 얻지 못했다. 낑낑거리며 캐리어를 올리려는데 어느 누구 하나 도와주지 않는 것이 서글펐다.

아기랑 다니면서 알게 된 점이 알아서 해주는 배려의 대단함이다. 아기가 있다고 해서 할 수 없는 일이 많은 건 아니다. 그저 아무것도 아닌 모든 일들이 힘겹게 느껴지기 때문에 조금만 힘을 보태줘도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혼자 힘으로 캐리어를 올리고 체크인이 끝났다.

중국 대리가 목적지였는데 직항이 없어서 상해가 목적지인 비행기를 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상해까지 1번 경유를 해야 하고, 상해에 도착하면 다른 공항에서 또 비행기를 타야지 도착하는 곳이었다.

아기를 데리고 하루 안에 갈 수 없다고 판단한 나는 선우 도움으로 상해에서 본인의 중국인 친구의 집에서 하루 묶기로 했다. 한국말을 전혀 모르는 중국인이라 하니 불안하기도 했지만, 신세를 질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전혀 알지도 못하는 중국 현지인의 집에서 묶는다니 설레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했다. 중국의 인신매매 기사는 왜 자꾸 눈에 보이는지..


드디어 출국날, 캐리어 하나에 아기가방을 메고 집을 나섰다. 긴 여정을 앞두고 체크인을 하고 비행기 탑승까지 모든 체력을 소진했으니, 상해로 가는 동안 푹 쉬면서 체력을 보충해야 한다. 겨우 탑승했다.

“Ladies and gentlemen. This is Korean Airlines…..”

두근두근. 갓 태어난 우리 아기를 안고 한국을 떠나는 기분이 참 묘했다. 출산과 함께 뒤집어진 인생처럼 내 인생 앞에 새로운 일들이 쫙 펼쳐질 것만 같은 설렘이 가시지 않았다. 쌍으로 묶는 안전벨트를 아기와 나를 함께 묶어놓고 이제야 안심이 되었다. 아기와 함께라 힘들어도 혼자보다 행복하다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응애!!!!!!~~~~~~~!!!!!!!!!!!!!!!!!!!!!!!!!!!! 앙앙~~~ 응애애애앵앵~~~~~~!!!!!!!”

생후 80일 아기는 비행기가 상공을 향하면 향할수록 목이 터져라 울어댔다. 고막이 막히는 느낌이 무서운 걸까, 아니면 우리가 느끼는 것과 다르게 고막이 너무나 아픈 걸까? 어떻게든 진정시키지 않으면 이 비행기에서 쫓겨날 것만 같은 분위기가 엄습했다.

‘제발.. 잠시라도 쉬었다 울었으면..’

아기가 안쓰럽고, 사람들에게 미안하고, 나 스스로 죄책감이 들면서 견디기 힘든 시간이 지속됐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냥 눈을 질끈 감고, 우는 아이와 피해를 받고 있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이 시간은 경유한 비행기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났다. 상해에서 하룻밤 지내고 대리로 넘어가는 비행기에서도 고스란히 일어날 일이었다. 내가 잡아놓을 수 있는 정신줄은 다 끊어져 어디선가 하늘거리며 날아다녔다.

아기가 울다 지쳐 곯아떨어지면 나는 잠시 잘 수 있었다.

‘아가, 어서 지쳐 잠들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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