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디지털노마드 사업가가 되다
‘어서 오세요. 미정'
패셔니스타처럼 멋지게 차려입었지만 얼굴과 헤어스타일은 전혀 꾸밈없는 모습을 한 두 여성이 출국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사람은 키가 꽤 컸고, 한 사람은 크지는 않았지만 나보다는 큰 편이었다. 밝게 웃으면 인사하고 말을 거는데 나는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중국을 간다고 계획해놓고는 중국어 몇 개라도 외울 생각도 안 하고 니하오와 쎄쎄밖에 모르고 채 와버렸다. 한 사람이 영어를 꽤나 잘하는 것 같았지만, 내 영어 수준은 초급 이하이니 도움이 되지 않았다. 열심히 구글 번역기 앱을 쓰면서 알아보니 내가 아기 데리고 고생한 것을 걱정해주는 내용이었다. 마중 나와줘서 고맙다는 마음을 겨우 전달하고 그들을 따라나섰다.
나를 태운 차는 작았지만 승차감과 안전감은 좋았다. 운전석과 보조석에 앉아 가면서도 그녀들은 내게 계속 말을 걸었다. 아기를 데리고 비행기 경유까지 한 상태인 나는 구글 번역을 이용하는 것도 너무 귀찮게 느껴졌지만, 고마운 사람들이기에 예의 바르고 친절하게 대해야 했다. 통성명을 하고 친구 선우와의 관계에 대해 서로 공유하고 있는 사이에 차는 먼 길을 달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상해 공항에 도착한 이후로 나는 어디를 가게 되는지 알지 못했다. 내일 대리로 갈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 나는 다른 공항으로 가야 하는데 그 공항에도 이들이 데려다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완벽하게 누군가에게 의지하며 이동하게 된 경우가 없었던 것 같은데… 한적한 동네에 차가 들어서니 왠지 불안감이 엄습했다.
주차가 된 곳은 주택가였다. 지저분한 동네는 아니었지만 가로등이 거의 없어서 어둑어둑했다. 밤늦어서 그런 건지 원래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다니는 사람들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녀들은 내게 따라오라며 앞서 걸어갔다. 아기띠를 한채 따라가면서 나는 온갖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들이 선우 친구가 맞겠지? 만약 나를 이상한 곳에 데려가면 어떻게 도망가지? 혹시 선우가 나를 팔아먹은 건 아니겠지?
어두컴컴한 골목길은 정적이 흐르는 듯 조용하고 꽤나 길었다. 앞서 가는 그녀들을 따르다가 나도 모르게 주춤하며 걸음을 늦추기 시작했다. 다정다감하던 그녀들이 나의 걸음걸이를 배려하지 않고 조금은 빠르게 걷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20m 이상 떨어져서야 살금살금 뒤로 움직이는 나를 발견하고 손짓했다. 뒤돌아서 죽을힘을 다해 뛰어 도망가야 하는 건지 잠시 고민했지만, 내 짐을 가지고 있는 그녀들에게 갈 수밖에 없다. 머뭇거리며 한 발 한 발 걸어가는 내게 그녀들이 빠르게 다가와 이 말 저 말하며 말을 걸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내가 아기를 안고 있어서 힘들어하는 거라며 걱정하는 듯했다. 우리 아기는 그녀들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생글거리며 웃고 있었다.
골목의 끄트머리에 그녀들의 집이 있었다. 차가 들어올 수 없는 골목이라서 좀 멀리 세워놓고 걸어온 거였는데 나는 차를 놓고 멀리 가니 괜히 불안했던 것 같다. 집에 들어서는 입구의 발판에 아기자기한 그림이 그려져 있고, 집 안의 가구들은 고즈넉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녀들의 나이에 비해 집의 분위기는 차분하고 점잖은 느낌이었다. 그래도 부분 부분 생기 있고 귀여운 소품들이 놓여있어서 칙칙하지 않았다. 패션 스타일도 그렇고 인테리어도 그렇고 감각 있고 센스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차려준 저녁밥상 앞에 앉은 후에야 불안감이 해소되고 마음이 편안했다. 중국에 대한 나의 편견이 이렇게나 심각한 수준이라는 사실에 창피하고 그녀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아기와 함께여서 더 불안했는지도 모른다. 갓난아기를 지켜내야 하는 엄마라는 입장은 쓸데없는 두려움을 끌어올리는 것 같다. 흰쌀밥을 퍼서 내 앞에 내어놓으며 밝은 웃음을 짓는 그녀와 눈이 마주치니 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녀들은 나와 아기의 일거수일투족을 신경 쓰며 배려해주기 바빴다. 물 한잔도 내 손으로 따라먹지 않도록 일일이 챙겨줬고, 잠자리가 불편할까 봐 이불도 바꿔주며 세심하게 챙겨줬다. 우리 아기도 계속 안아주고 기저귀도 갈아주며 내게 휴식시간을 만들어주었다. 한밤중이 다되니 친언니처럼 포근하고 편안함까지 들었던 걸 보면 정말 따뜻한 사람들이 맞다. 다음 날 공항에 나를 데려다주는 미션까지 그녀들은 완벽하게 완수했다.
나와 아기가 무사하게 상해를 벗어나 대리행 비행기를 탄 것은 전적으로 그녀들의 도움 덕분인 것은 분명하다. 내게 보여준 배려심이 참으로 고맙고, 내가 느꼈던 두려움이 참으로 미안했다. 그럼에도 나는 다시는 이런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내가 대처할 수 있는 어떤 능력도 없이 무지한 상태에서 누군가를 의지하여 행하는 일이 이렇듯 두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주체가 되지 못하는 이상 안정감은 있을 수 없는 감정이다. 두 번 다시 그녀들을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대리 공항에 도착하니 선우가 나와 있었다. 여전하다. 후덕하고 귀여운 이미지의 선우 얼굴은 180cm가 넘는 키와 어울리지 않는다. 선우를 만나니 긴장과 함께 다리가 풀려 조금 휘청였다. 선우가 와줄 수 있냐고 제안할 때 미안하다는 말을 몇 번이고 되풀이했는데, 이렇게 힘든 여정인걸 알고 있어서 그랬나 보다. 나를 보자마자 또다시 사과를 한다.
괜찮아. 괜찮아. 근데 힘들긴 하다. 엄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