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디지털노마드 사업가가 되다
중국에서 돌아오니 슬픔이 밀려왔다. 기대에 부풀었던 마음이 가라앉고 현실을 직시하려니 답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갓난아기를 키우는 엄마이고 열심히 직장생활을 하는 남자의 아내일 뿐이라는 생각이 머리에 맴돌았다. 창업가로서 품었던 큰 꿈은 현실의 벽을 뛰어넘지 못하는 동안 자신감과 함께 사라져 가고 있었다.
나는 다시금 나 자신을 재정비해야 했다. 과연 내가 무엇을 해낼 수 있을지, 당당하게 제공할 수 있는 나만의 서비스나 제품이 있을지를 찾아내야 했다. 함께 창업했던 대표님에게서 의뢰를 소개받기 전까지는 내가 하던 일조차 까맣게 잊고 새로운 사업만 고민하고 있었다.
“대표님, 제 지인이 홈페이지를 만들어야 하는데 좀 해주실 수 있을까요?”
“아, 네! 그럼요!”
나는 기획자다. 프로젝트 매니저다. 그리고 이 직업을 통해 많은 일을 해내 온 것이 생각났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금까지 내가 해온 일인 것인데 이 단순한 생각을 왜 지금까지 하지 못했던 것인지 이해가 안 간다. 창업지원사업을 통해 창업을 하면서 유니콘 기업들을 우러러보면서 나도 그렇게 해낼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포기하지 않고 지속하면 이루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나의 긍정마인드가 허황된 꿈으로 나를 끌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원하는 삶은 대기업을 거느리는 총수가 아닌 것이 분명한데 내가 원하는 삶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지 못하는 과정을 불안해했다. 지금은 내가 할 수 있을 해서 기반을 잡는 것이 최우선임을 다시금 확인했다.
“미팅을 집에서 할 수 있을까요? 아기가 아직 많이 어려서요… 죄송합니다.”
“네네. 그럼요.”
아직까지 사회에서는 가정의 일을 업무와 연결시키면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인식이 분명하기에 조심스럽게 의뢰하신 대표님께 부탁해 보았다. 다행히도 보수적인 성향의 분이 아니어서 나의 부탁을 흔쾌히 받아주셨다.
아, 잠시만요. 아기가 배가 고픈가 봐요. 모유수유 좀 하고 나올게요.
아, 잠시만요. 똥을 싸서 기저귀 좀 갈게요.
아, 잠시만요. 졸려하니 재우고 다시 얘기해요.
미팅이 길어지면서 나는 아기를 돌봐야 하는 순간이 지속적으로 발생했고, 다행히 그분은 미팅하는 동안에서 마음을 편하게 해 주셨다. 내가 일을 잘해주면 된다고 생각하는 듯하였고, 그런 취지의 언급을 여러 차례 해주니 나는 위축되지 않고 미팅을 지속할 수 있었다. 첫 고객인 이 분이 아기와 함께인 나를 이렇게 대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또다시 자신감을 잃고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잘 해낼 수 있는 일이 나의 상황과 상관없이 그대로 인정받는다는 사실은 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자신감을 심어준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아직까지도 그분께 감사한다.
웹에이전시를 잠시 다닐 때 나는 [워드프레스]라는 솔루션을 처음 알게 되었다. 나처럼 개발을 조금만 알고 있는 기획자도 홈페이지를 퀄리티 있게 만들 수 있는 솔루션으로 해외시장에서는 인정받고 있는 솔루션이었다. 당시에 대표님께 워드프레스 전문으로 초기 시장을 선점하자고 여러 차례 제안했었는데 고급 개발기술이 필요 없는 시장으로 가치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시작하지 못했었다. 그로부터 2-3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시장이 크게 활성화되고 있지는 않았었다.
‘그래, 이거야!’
나의 자신감을 한껏 끌어올려준 고마운 대표님의 홈페이지를 시작으로 [워드프레스 전문기업]으로 발돋움하겠노라 다짐했다. 솔루션에 대한 노하우를 쌓아가야 하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개발하기 수월한 솔루션이니 기획과 디자인을 잘하면 충분히 잘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프로젝트 매니징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외주인력을 활용하여 퀄리티 높은 서비스를 저가로 제공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첫 번째 고객을 시작으로 영업을 하지 않아도 의뢰가 지속적으로 들어왔다. 내 급여를 많이 가져올 수는 없었지만, 부족한 생활비를 내가 충당할 수는 있었다. 생활비에 허덕이지 않기를 바라던 나의 소소한 꿈은 조금씩 이루어져 가고 있었고, 이대로 열심히 해나가면 될 거라는 희망이 새록새록 올라오고 있었다.
워드프레스 전문인 웹에이전시로 사업방향을 바꾸면서 나의 매출은 내가 일하는 시간과 비례하기 시작했다. 대행업이라는 것이 시간을 파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선택한 이상 잘 해내서 성장시키고 싶었다. 그러나, 아이를 키우는 엄마에게 일할 수 있는 시간은 끝까지 쥐어짜 내도 넉넉히 얻을 수 없는 희소성 높은 것이었다. 마감이 있는 날이나 고객의 요구가 있는 날에는 5분, 10분씩 늦어지더라도 꼭 해내고 퇴근해야 했고, 그런 날은 어김없이 어린이집 끝나는 시간을 맞추지 못했다.
우리 아이만 홀로 남아있는 날이 늘면서 어린이집 원장님은 하루가 멀다 하고 아이가 불쌍하다는 말을 끊임없이 했다. 내가 일찍 데리러 가는 날이면 아이는 버선발로 뛰어나오며 와락 안겼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서 아이가 불쌍하다는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육아를 포함해서 이런 모든 고민과 마음의 괴로움을 나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이 억울하기도 했다. 직장인인 남편은 회사 위치도 먼 관계로 함께 하고 싶어도 불가능했다. 남편을 이해하고 있었지만 나는 왜 이렇게 힘들어야 하는 건지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아니! 운전을 어떻게 하는 거야? 신호 바뀐 거 안 보여?”
반말부터 시작하는 이 X의 엉덩이에 발길질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내가 백번은 잘못한 거니 그저 사과하며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이를 데리러 가느라 마음이 급했어요.”
“누구는 아이 안 키웠어? 운전은 똑바로 해야 할 거 아냐?”
그 X은 분명 아이를 키우지 않고 아내에게 모두 떠넘겼을 거라는 억측이 들었지만, 그저 사과하며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 내가 3차선 도로의 2차선에서 우회전을 하는 순간, 신호가 바뀌면서 3차선에 있던 차가 직진하며 내 차의 옆구리를 찍었다. 내가 지나가는 걸 어떻게 못 볼 수가 있었는지 너무나 궁금했지만, 이것도 물어보면 안 되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충기씨, 나 교통사고 나서..”
“뭐? 또? 운전 좀 똑바로 해.”
“뭐!!? 뭐???? 내가 왜 똑바로 못했다고 생각하는 건데? 내 상황을 알기나 해?”
1년 반 동안 교통사고를 4번째 냈다. 모든 사고는 비슷한 시간대에 동일한 상황에서 일어났다. 어린이집이 끝나는 시간에 늦어서 달려가는 상황에서 말이다. 한 평생 살면서 나를 가장 긴장시키고 심장이 떨리는 일이 나의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혼자 나를 기다리는 일이었다니. 상상도 해본 적 없던 나의 일상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억울했다. 가끔씩 한적한 주차장 귀퉁이를 찾아들어가서 운전대를 잡고 오열하고 나서야 다시 아이에게 웃어줄 수 있었다.
그래도 나는 나아갈 거야. 지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