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디지털노마드 사업가가 되다
공항을 나서니 리무진과 운전기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를 태운 리무진은 20분가량을 달려 어느 호텔 앞에 도착했다. 선우는 이곳이 비즈니스를 기획하고 있는 장소라며 현재의 상황과 여러 구체적인 이야기들을 시작했다. 나는 쓰러지기 직전인데 일 얘기하느라 차 안에서도 쉬지도 못하게 하더니 일터에 데리고 온건가? 인상을 빡 쓰며 한마디 했다.
“나 너무 피곤한데 일은 내일 좀 하자!”
“아, 응응. 일하자는 건 아니고 밥 먹으러 온 거야. 너 마사지도 좀 받고.”
아.. 내가 피곤하긴 했다. 선우는 예전부터 배려심이 참 많은 친구였는데 괜한 오해로 한소리 쏴 붙여 버렸다. 마사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이지만, 지금은 꼭 받아둬야 내일 움직일 수 있을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100평은 넘어 보이는 호텔 내 마사지샵에는 대형 의자가 30~40개는 되는 것 같았다. 의자는 딱 봐도 너무나 편해 보이는 형태의 가죽의자이고 그 옆에는 고급스러운 디자인의 티테이블이 놓여있다. 꽤나 넓은 곳인데 손님은 한 명도 없고 일하는 사람이 7명 정도가 곳곳에 앉아서 쉬고 있었다. 선우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 젊은 여성 두 명이 내게 다가왔다. 한 여성이 내가 차고 있던 아기띠를 풀고 아기를 조심히 안았다. 10대 중후반 정도로 귀엽고 앳된 얼굴인데 나와 눈이 마주치니 멋쩍게 웃었다. 이 소녀가 내가 머무는 동안 계속 따라다니며 아기를 봐줄 거라고 했다. 아기랑 다니면서 힘들까 봐 오기 한참 전부터 걱정했는데 괜한 시간만 썼다. 선우는 이렇게 중요하고 기쁜 이야기를 왜 사전에 안 해준 건지 야속했다.
찰떡처럼 붙어있던 아기가 떨어지고 자유의 몸이 되니 마사지를 받지 않아도 몸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곁에 다가온 다른 한 여성분이 나를 의자로 인도하고 따뜻한 차 한잔을 가져다주었다. 누운 듯 앉은 채로 따뜻한 차를 한잔 하니 몸이 스르륵 녹아내렸다. 차가 입에 착 붙는 느낌에 무슨 차인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중국말을 한마디도 못하니 답답할 따름이다. 잠시 나간 선우가 돌아와야 차 이름을 알 수 있겠다.
“선우야, 나 발마사지만 받을래. 사실 나는 아파서 마사지를 안 좋아해.”
내가 마신 차 이름을 묻는 건 그새 까먹어버렸다.
아기가 해죽해죽 잘도 웃는다. 우리의 베이비시터라는 그 소녀가 잘도 놀아준다. 내 눈에는 어린아이인데도 아기 안는 걸 보면 자식 두세명 정도 키워본 아줌마 같다. 아기를 왜 이렇게 잘 보냐고 선우에게 물으니, 계속 아기 보는 일을 하는 소녀라고 한다. 학교는 안 다니는지, 부모는 뭐하시는지, 언제부터 일을 했는지 시시콜콜한 것들이 궁금했지만, 대답을 들으면 조금 슬플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궁금한 걸 참기로 했다.
마사지를 끝내고 선우네 가족과 함께 한층 위 레스토랑으로 이동했다. 식당에는 대형 원 테이블이 넓은 간격으로 놓여있었는데 우리는 공간이 조금 분리되어 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이곳에도 손님이 하나도 없다.
“왜 손님이 하나도 없는 거야?”
“아직 정식 오픈 전이라 그래.”
모든 직원과 시설, 비품, 음식까지 준비되어 우리를 대응하고 있지만, 오픈하지 않은 호텔 레스토랑이라니.
우리가 앉은 테이블 주위에는 직원들이 다섯 명 정도 간격을 두고 서 있었다. 우리의 베이비시터 소녀도 아기를 내게 안겨주고 조금 간격을 두고 섰다. 함께 앉아서 밥을 먹으면 안 되냐고 선우에게 물으니 이따가 가서 가족이랑 먹을 거란다.
먼저 나온 것은 과일이었다. 한국에서 먹기 어려운 신선한 열대과일이 골고루 나왔다. 과일은 식전에 먹어야 과당과 소하 불량이 해결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과일 접시를 치운 후에는 온갖 요리가 중앙의 원판 위로 놓였다. 좌우로 돌리면서 하나씩 집어서 모두 맛봤다. 꽤나 맛이 있으면서도 건강한 맛이 났는데 재료들을 다 좋은 것만 쓴 요리 같았다. 메인 요리라고 가져다 둔 것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요리들이었는데 이름도 어려워서 기억에도 없다. 사실 나는 먹는 욕심이 없어서 맛없지 않은 음식을 적당하게 먹는 스타일이다.
선우에게 오늘 너무나 잘 먹었다고 감사인사를 했다.
“매일 대부분 여기서 먹어야 해. 맛있다니 다행이다.”
“뭐라고? 계속 이렇게 먹는다고?”
정말 그랬다. 맛집에 데려간다며 외식을 한 3번을 제외하고는 일주일 내내.
지금까지 받아보지 못했던 대접을 받으며 편안한 일상이 지나가고 있었다. 관광도 하고, 현지 시장과 쇼핑문화도 보며 비즈니스 이야기를 했다. 호텔 주위에 짓고 있는 백여 개가 넘는 펜션부지를 돌고 선우의 아내가 운영하는 호텔 내 피부숍에서 VVIP 고객 서비스를 경험했다. 우리가 다니는 곳에는 언제나 운전기사님과 우리의 베이비시터 소녀가 함께였다.
선우는 내 기대보다도 더 크게 성장해 있었고, 경제력을 갖추고 있는 것 같았다. 선우는 지내는 내내 내가 곁에서 함께 일하면 좋겠다는 표현 했다. 그리고 구체적인 조건도 제시했다.
네가 오면 정말 도움돼. 일하면서 어학도 하게 해 줄게.
집 걱정도, 생활비 걱정도, 어학 걱정도 말라는 선우의 말은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내게 온 기회가 맞다는 확신이 들었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 좀 더 면밀히 살펴봐야 했다. 나는 너무 좋은 것만 보이면 살짝 뒤로 물러나서 객관적으로 보려는 경향이 있다. 내게 전혀 보이지 않고 있는 단점과 현실의 벽을 찾아내 그것 또한 받아들여야 확신을 갖고 선택할 수 있다.
선우가 함께 하는 중국의 큰 손은 선우 아버지의 절친인 분으로 대단한 재력가였다. 현재는 몇 백채가 넘는 펜션들을 주위에 짓고, 그 중심에 큰 호텔을 세운 상태였다. 휴양지이기도 하면서 생활이 가능한 마을을 계획하고 있었기 때문에 헬스, 마사지샵, 베이커리 등의 편의시설을 하나하나 오픈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선우가 나와 함께하고 싶은 이유는 미용과 패션부문에 대한 사업을 전적으로 맡아서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잘되었든 안되었든 내가 남성 디자이너 브랜드를 운영한 경험이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내가 운영한 브랜드를 꾀나 서칭 해본 것 같았다.
하루하루 지나면서 선우에 대한 믿음은 확고해졌지만, 상황에 대한 불안요소가 보이기 시작했다. 모든 비즈니스의 자금은 선우를 통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었다. 선우는 여러 권한을 가지고 본인의 비즈니스를 하고 있지만, 자금 출처는 다른 곳으로 예산 사용 권한이 명확하지 않았고 나를 영입하는 인사권도 지극히 개인적인 권한으로 보였다. 내가 남편을 퇴사시키고 아이까지 데리고 이곳에 왔을 때 확실하게 믿을 구석은 선우라는 한 명의 사람뿐인 것이었다.
우리 가족의 거처와 생활비, 어학 비용 등을 어디까지 구체적으로 협의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지금 내가 선우와 함께 일하겠다고 뛰어들려면 나 또한 노동과 시간을 투자하는 마음으로 해야 하는 창업 초기단계이기에 무조건 내 욕심을 채울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는 사람보다 상황을 따라다니면서 일하려고 노력한다. 사람은 상황에 따라 움직이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능한 한 변하지 않을 상황을 확인해야 안심이 되는 편이다. 아쉽게도 내가 보는 선우의 제안은 내 인생을 내걸 정도로 안정적인 상황으로 보이지 않았다.
왠지 상해에서 그녀들을 뒤따라 걸어가던 골목길에서의 두려움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결국, 나는 확답을 주지 못한 채 돌아왔다.
내가 돌아가서 심도 있게 고민해보고 연락할게. 너무 고마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