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이거야, 미니멀 라이프!

3장. 무계획 삶을 준비하다

by 아이린

“빨래 건조대는 살 거야!! 싫어!! 싫어! 나는 싫단 말이야!! 불행해!!”

남편이 갑자기 소리쳤다. 말레이시아에 와서 2달가량 참던 한이 터진 듯한다. 쇼핑중독이던 남편은 한국을 떠난 후 쇼핑하는데 애를 먹고 있다. 내가 아무것도 사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지금 우리 집의 빨래 건조대는 이 콘도 뒷베란다에 처박혀 있던 사다리와 긴 빗자루이다. 사다리 높이와 베란다 창살 높이가 거의 같아서 그 사이에 나무 막대기로 된 빗자루를 얹었더니 딱 옷걸이 걸기 좋다. 사실 이 상태는 남편이 고안한 것이지 내가 만든 건 아니다. 남편은 이 상태로 잠시 쓰다가 빨래 건조대를 살 생각이었지만, 나의 반대로 2달째 이렇게 지내고 있다. 빨래가 잘 널리기만 하면 되지 뭐가 그렇게 불행한지 이해할 수는 없지만, 남편이 참아주고 있는 것은 나도 안다.

그래도 나는 꼭 필요하지 않은 빨래 건조대를 살 수 없다.

한국의 짐을 정리한 이후로 나의 눈에는 모든 물건이 쓰레기로 보인다. 지금까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사 왔던 모든 물건들이 이렇듯 한순간에 쓰레기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3달 전 한국에서 지낸 1달은 나의 삶을 크게 뒤흔들었다.

게으름뱅이 남편에게 짐 정리를 맡긴 내가 바보다. 남편은 중고 판매를 떠나기 한 달 전이 되어도 시작을 안 했다. 언제 다 정리하냐고 실낱 하게 비판해도 꿈쩍도 안 하며 천하태평인 남편이 부럽기만 하다. 사실 나는 남편의 이런 한량 같고 여유만만한 모습을 좋아하기는 한다. 하지만, 이번엔 나의 불안감이 최고치를 찍어버렸다. 도저히 용납되지 않았다.

“도대체 언제 정리할 건데!!!!!!!!!!!!!!!!!!!!!!!!!”

나보고 왜 갑자기 소리를 지르냐고 묻는다. 지금 3개월째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반복해도 들어먹질 않으니 귀가 막힌 줄 알고 소리 지르고 있다고 대답했다. 지금까지 걱정 말라는 그의 말에 잠자코 기다렸던 이유는 나름 열심히 팔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나 띄엄띄엄 움직여서 진척이 없지만, 남편이 물건을 잘 팔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나 같으면 공짜로 주거나 버렸을 물건들은 꽤 괜찮은 값을 받고 파는 능력이 있다. 남편은 사고 싶은 사람에게 사야 하는 이유를 적절하게 설명하고 디테일한 장단점까지 친절하게 안내를 한다. 꼭 필요한 사람을 찾아내기란 하늘의 별따기이지만, 중고 물건은 꼭 필요한 사람이 나타나면 가장 좋은 거래가 된다. 필요한 사람을 열심히 찾아서 성심성의껏 대응하는 남편이 짐 정리를 해야 우리 집 가계가 좀 더 나아질 것만 같았다.

더 비싸게 잘 파는 남편에게만 맡긴 것은 크나 큰 실수였다. 결국, 한국을 떠나기 한 달 전까지 우리 집 살림은 거의 줄지 않는 사태에 이르렀다. 내가 꾸역꾸역 중고 판매를 하려는 이유는 오직 돈 때문만은 아니다. 내 눈 앞의 쓰레기가 누군가에게는 쓰레기가 아닐 것이니 그 누군가들을 찾아내기를 원했다. 어설프지만 환경 걱정을 하며 사는 내게 우리 집 살림을 통째로 갖다 버리는 일은 죄책감을 갖게 한다.

남편은 일을 쉬고 있는 상태지만, 나는 해외에서도 돈벌이를 할 수 있도록 사업구조를 만들기에 정신없었다. 또한 부동산이나 금융업무는 언제나 내가 맡아서 해왔기 때문에 덤으로 정신없는 하루하루였다. 한 달 남은 시점에서 이제는 어쩔 수 없이 같이 움직여야 한다. 욕이 목구멍까지 올라와서 피 토하듯 한 바가지 내뱉어주고 싶었지만, 아니다. 한량인 남편이 미워도 지금은 함께 손잡고 무엇이든 해결해 나가야 한다.

우리는 중고 가격을 무조건 새 제품 가격의 10%에 맞췄다. 무료로 주고 싶은 것들도 있어서 올려봤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시달린 후 꼭 필요한 사람을 찾으려면 유료로 팔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내가 공짜로 주면 아무리 좋은 물건을 줘도 공짜 물건이 되고 쉽게 버려질 것이 뻔했다. 아무리 사소한 물건이라도 판매하려는 이유가 쓰레기를 최소화하기 위해서이니, 더욱더 유료로 판매해야 했다. 새 제품 가격의 10%는 사는 사람이 부담은 없지만 필요하지 않으면 사지 않는 가격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는 중고 판매를 위해 중고카페나 앱을 이용하고, 차에 물건을 가득 싣고 양평의 프리마켓에 직접 가기도 했다.

먼저, 없어도 큰 불편 없는 물건들을 팔기 시작했다. 공기청정기, 가습기, 책장, 책, 이어폰, 김치냉장고 등이 시작으로 판매를 시작했다. 그다음에는 없으면 불편하지만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을 팔기 시작했다. 곰곰이 생각한 결과 침대, 식탁, TV, 스피커, 토스트기, 계란찜기, 온갖 그릇 등이 있었다. 이 물건들을 팔자 마자는 꽤 불편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굳이 필요한 것들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금세 적응했다. 그다음으로는 꼭 있어야 하지만 없어도 2-3일 정도는 참을 수 있는 것들을 팔았다. 냉장고, 세탁기, 전자레인지, 전기포트, 거실 책상, 거실 의자 등이 그러했다. 우리가 마지막까지 가지고 있어야만 했던, 꼭 써야 했던 물건들은 마지막 날까지 쓰고 처분하거나 짐에 챙겼다. 그것들은 이불, 베개, 수저, 그릇, 커튼, 작은 밥상, 과도, 빗자루, 치약, 칫솔, 비누, 시계와 같은 별것 아닌 물건이었다.

내가 함께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단 돈 천 원을 받아도 주문자 집까지 배달해준 일이 1개월 동안 15회는 되는 것 같다.

“충기씨, 막 버리지만 마. 가능하면 팔고, 못 팔지만 좋은 건 사는 사람들 주자.”

우리는 마주 앉아 밥을 먹어도 당O마켓의 이웃사촌들에게 거래 메시지를 보내느라 대화도 않고 시간을 보내곤 했다. 팔기 너무 아까운 물건은 좋아하는 지인들 주려고 빼두곤 했지만, 아무리 좋은 물건도 필요한 물건이 아니면 환영받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특히, 그릇과 섬유로 만든 제품들은 팔기도 어렵고 누구 주기도 어려웠다. 그러고 보면 내 주위에는 괜한 욕심으로 우리에게 물건을 받아가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우리 집 살림을 거들떠보지 않는 듯하여 느낀 섭섭함도 잠시, 필요한 물건만 소유하는 멋진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기분 좋게 느껴졌다.

재미있는 사실은 마지막까지 꼭 필요했던 그 물건들은 이곳 말레이시아에 와서는 가장 먼저 필요한 것들이 되었다. 슬프지만 다시 산 물건들이 꽤 있기도 하다. 이렇게 별것 아닌 물건들이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물건들인 것이다.

“일단 주문한 가방 오면 넣어보고 배로 보낼지 생각해보자.”

해외이사로 짐을 보내자는 남편의 지속적인 요구에 나는 남편을 설득했다. 일단 시간을 끌다가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심산이었다.

“이민 가방 하나랑 캐리어 3개에 모두 넣어. 안 들어가는 건 버릴 거야.”

출국 직전에 엄포를 넣었더니 역시나 남편은 별 다른 말 없이 따라주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게으른 우리 남편님이 갑자기 해외 짐 붙이기 작업을 며칠 안에 할 턱이 없다. 내 계획대로 되어 모든 살림을 처분하고 캐리어 3개와 이민가방 한 개로 완성했다. 우리의 짐은 대부분 옷이나 신발이었다. 그리고 20% 정도가 수건, 화장품, 비누, 치약, 칫솔, 책, 충전기 등의 잡동사니였다. 캐리어 위에 얹어서 갈 보조가방과 등에 맨 노트북 가방이 더 있기는 했지만 크게 보면 가방 4개에 세 가족의 모든 살림이 들어가는 것이 성공했다. 심지어 남은 공간에 추가로 구입한 남편의 쇼핑 물건이 들어가기까지 했다. 세 가족이 확보한 비행기에 실을 수 있는 화물 무게 120Kg을 넘지 않아 짐과 함께 떠나오는 게 가능했다.

한국을 떠나기 위해 짐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갖고 있던 그 모든 물건들이 꼭 필요한 물건들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리고 마지막 네 개의 짐에도 불필요한 물건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더욱 놀랍다. 이제 나의 소비방식은 버리는 것까지 감안하는 소비방식으로 바뀌었다. 원래부터 쇼핑을 안 좋아하고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니면 소유하지 않았는데, ‘꼭 필요한'이라는 기준이 현저히 높아져서 아무것도 살 수가 없게 되었다.

나는 대형 캐리어 하나만 들고 2-3년마다 다른 나라로 이사할 계획이다.

이 가볍고 단순한 행복감을 빨래 건조대 따위와 바꾸지 않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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