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랄 정도로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문제가 되는 고달픈 창업과정
메인 사업이 따로 있는 내가 카페를 창업에 참여한 이유는 실제 운영할 사람은 남편이기 때문이다. 기존에 내가 해왔던 브랜딩, 마케팅, 개발 등의 업무를 진행하면 된다고 여겼고, 창업과정 또한 경험이 많아 자신 있던 터라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곳 말레이시아의 외식업은 실제 현금흐름이 한국보다 현저히 좋다고 판단했기에 딱히 두려움도 없었다. 이 얘기는 [해외에서 외식업 창업한 이유]로 별도 포스팅이 있어야 하니 다음으로 넘기고, 어렵지 않게 생각했다로 이해하면 된다.
그런데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다.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소소한 일들이 대형 사건처럼 다가오는 것은 일상이었다. 해외에서 창업을 하고자 한다면 누구든 경험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여 첫 포스팅에 이 주제부터 작성해 본다.
외국인에게 현지 법인 설립과 운영을 허용하는 기준은 로컬과는 다르다. 국가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우리가 한국에서 창업하듯 아무렇지 않게 법인설립이 수월한 것이 아닌 것이다. 우리는 외국인이고 웬만하면 로컬 임원이 배치되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말레이시아에서 나는 재밌는 상황에 놓였었다. 대부분의 창업한 사람들이 내가 100% 주주가 될 수 없다고 했고 법인설립 대행을 대응해 주는 Secretary Agent도 무조건 로컬 투자자를 넣어야 한다고 했다. 창업학을 공부한 나는 실제 투자를 받는 게 아닌데 로컬에게 51%의 주식을 줘야 한다는 것을 수용할 수가 없었다. 실제 회사의 주인, 경영자를 알지도 못하는 사람으로 지정한다는데 이를 납득하기에는 나는 일반창업자들에 비해 지식이 있는 편이다. 실제 로컬 투자자를 추가하는 것도 원하지 않았던 나는 100% 주주로 법인설립이 가능하다고 하는 Secretary Agent를 찾아 헤맸다.
맞다. 결국 나는 두어 달 정도 고생 끝에 찾아냈고, 100% 주식을 보유하면서 법인을 설립했다.
그래도 무조건 로컬 디렉터는 추가해야 해서 채용한 직원과 협의 끝에 추가했다.
웃픈 현실이다.
현지법인을 설립했지만 위처럼 외국인 지분 100% 법인이 되면서 사소한 제한들이 생겼다. 중요한 것들이 아니어서 자세하게 기억은 안 나고 가장 큰 문제는 워크퍼밋에 대한 것이었다. 여기서 일하고 월급을 받으려면 내가 설립한 법인에 워크퍼밋을 승인받아서 워킹비자를 신청해야 한다. 워킹비자가 있어야 회사에서 월급을 지급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외국인 지분 100%가 되면 이 워크퍼밋을 할당받는 과정에 문제가 있어서 어렵다고 한다.
일단 당장 돈 들어갈 일만 있으니 돈 벌기 시작하면 생각해 보자고 미뤄뒀지만, 워크퍼밋 문제는 해결하지 안 되면 안 되는 문제이다. 나는 현재 박사프로그램을 공부 중이라 학생비자가 있고 급여를 처리하지 않아도 한국 법인에 운영대행 및 마케팅 업무에 대한 계약관계로 말레이시아 법인에서 지불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형태는 일반적인 구조도 아니고 해외에서 창업하는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가능한 방법도 아니다.
결국, 외국인 지분 100%로 창업할 수 없다는 결론이 되어 버린다.
이 워크퍼밋 문제는 향후에 자세히 파서 해결할 예정이니 추가로 포스팅하겠다.
창업을 시작하면 투자금이 들어가는 일이 지속된다. 카페를 오픈하는 동안 인테리어, 간판, 전기설비, 가구, 주방설비 등 모든 과정에서 업체를 찾고 견적을 문의한다. 이 과정이 한국과 다르게 너무 힘든 이유는 견적금액의 차이가 비현실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똑같은 결과물이고 물건인데 비용차이가 심하면 2-3배까지 나니 저렴한 업체가 무서울 지경이다. 어떻게 판단하면 좋을지 감이라도 잡힐 때면 이미 당할 대로 당한 이후일 것이다.
나도 카페 오픈과정에서 불필요한 비용을 지출한 일 투성이다. 주방 바닥공사 똑바로 안 해서 물도 새고 타일도 그냥 깨졌다. 다른 업체는 1-2달에 끝날 소규모 주방공사를 4개월 동안 하는 동안 나는 월세를 내야 했다. 에어컨은 중고도 괜찮다고 해서 설치했는데 다 새로 갈았다. 새것으로 설치하는 비용까지 합쳐도 중고 달아준 금액과 비슷했다는 것이 화날 지경이다. 전기설치는 잘못해서 툭하면 셧다운 되는 바람에 전기수리비를 계속 냈고, 고장 난 문을 고치러 두 달 넘게 안 와서 툭하면 가게 문이 자동으로 열려있는 것을 CCTV로 보며 속 타야 했다. 이 외에도 수없는 문제에 봉착했고 그 피 말리는 과정을 체념하며 1년이 지났다.
이제 업체선정할 경우에 몇 가지 노하우가 생겼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게 단점이다. 가뜩이다 대응이 느린 이곳에서 아래와 같은 순서로 일을 하려니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1. 웬만하면 규모가 있는 업체 선정
2. 최소 4-5곳에 견적문의
3. 비슷한 견적을 주는 업체들로 축소
4. 상세한 견적내용 비교
5. 대응속도, 업무처리방식, 책임감 있는 소통방법 등을 고려해서 선정
해외에 나와보면 아는데 한국사회만큼 빠른 사회는 전 세계 아무 데도 없다. 특히, 동남아처럼 더운 나라 국민성은 여유만만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말레이시아도 동남아의 특징이 그대로 있기에 한국사람들이 볼 때 모든 업무 대응이 느린 것이 사실이다. 복잡한 질문을 하면 고민하면서 답변을 안 하거나, 무언가 결정해야 하면 담당자들이 상의하고 결정권자가 결정할 때까지 몇 주 걸리는 건 일반적인 일이다.
그런데 이해하려고 해도 너무 심해서 골치가 아플 지경이다. 늘어지는 모든 시간이 내 돈이니 손해는 나 혼자 감수하게 된다. 나는 매월 렌트비를 내고 있는데 담당자가 아프다고 인테리어 공사를 계속 지연시킨 일, 식당 라이선스 받은 후 간판을 달아야 하는데 안내를 늦게 해 줘서 간판을 다시 단 일, 관리사무소에서 서류 내라고 해서 가져갔는데 다른 것도 가져오라고 한 네다섯 번 이상 발걸음하게 한 일, 야외 테라스 설치해야 하는데 승인 답변 안 줘서 1-2달 동안 대기하면서 저녁 고객 없는 걱정한 일, 바로 옆에서 공사하면서 먼지 날리고 시끄럽게 해서 제지요청 해도 2-3주는 지나서 조치해 준 일 등 많은 상황에서 늦어짐으로 발생하는 손해가 수도 없다.
늘어지는 모든 시간이 내 손해임을 알기에 화나지만, 이런 느린 사회에서 한국 사업가는 특별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기도 하다.
법인설립부터 직원 등록, 급여지급, 회계관리, 감사, 서류제출, 라이선스 등록, 연장 등 모든 일들이 모두 청구된다. 한국처럼 세무사사무소, 법무사사무소, 노무사사무소와 계약하면 통합업무를 대행해 주는 시스템이 아니라서 법인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과정 내내 계속 돈을 뜯기는 기분이다.
시간이 지나서 알고 보니 온라인에서 신청하면 끝나는 일들을 대행해 주면서 청구했던 일도 많았다. 내가 직접 알아보고 처리하면서, 로컬 직원이 확인하면서 비용을 많이 절감했는데 잘 모르는 사람들은 매년 지속적으로 별의별 일로 돈을 뜯기며 법인을 운영해야 한다. 말레이시아는 정부기관에서 모든 공문을 영어가 아닌 말레이시아 언어로 하기 때문에 로컬 직원이 없으면 나를 등쳐먹는 기분이 들더라도 Secretary Agent에게 모든 것을 의지해야 한다.
한국사람들이 참 능력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나와보면 안다. 한국사람처럼 똘똘하고 탐나는 사람을 인터뷰 과정에서 만나기란 쉽지 않다. 이는 외식업이 아니어도 다른 업종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여러 대표들을 통해 확인했다. 일 잘하는 한국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말레이시아의 특성상 인터뷰나 출근약속을 노쇼 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당일에 아프거나 하기 싫다고 말하는 것도 우리는 아이들이 하는 무책임한 행동 같지만 이곳에서는 흔하디 흔한 일이다. 인터뷰 약속으로 인해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그저 나의 몫이다.
외국인이 너무 많은 것도 말레이시아에서 채용과정을 힘들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수많은 외국인노동자가 이력서를 보내는데 워크퍼밋을 제공할 수 없는 우리 같은 기업은 불법채용을 선택해야만 외국인 채용이 가능하다. 불법채용을 하면 관련 기관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며 뒷돈을 지불하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10년, 20년 전의 일 같은 이런 일이 여기에서는 일상이다.
불법을 싫어하는 나 같은 사람도 로컬사람들에게 노쇼를 수없이 당하고 나면 그냥 외국인과 일하고 싶어 진다.
지금까지 큰 틀에서 이런 문제들로 힘들었는데 앞으로 더 많은 문제가 생길 거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내가 로컬이니 아무 문제없던 일들이 외국인이 되어 문제 되는 것을 겪어보니 한국이 그립기도 하지만, 한국이었다면 외식업을 절대 안 했을 거니 위안을 삼아 본다.
창업의 과정은 문제해결의 연속이라는 말을 뼛속 깊이 이해하고 있기에 오늘도 즐겁게 일할 수 있음을 다행으로 여긴다.
마음을 버리지 않는 정직한 사업활동을 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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