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의 근황을 들려드립니다
퇴사 혹은 일반휴직을 하겠다고 팀장님에게 말했다. 몇 날 며칠을 생각하고 마음으로 삼키다 드디어 내뱉었다. 다행히 팀장님은 내 생각을 지지해 주었다. '퇴사 혹은 일반휴직'은 무슨 의미인지 의아해할 수 있다. 처음의 내 결정은 퇴사였다. 퇴사 외에는 내게 주어진 선택지가 없다고 생각했다. 육아휴직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생각한 일반휴직은 진단서 상으로 신체적인 질병을 증빙할 수 있는 경우에만 가능한 것이었다. 퇴사 선배와의 상담을 통해 퇴사 전에 일반휴직을 먼저 생각해 보기로 했다. 팀장님도 일반휴직이 가능할지 알아봐 주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7년 동안 다닌 회사에서 처음으로 쉼표를 찍기로 했다. 그 형태가 퇴사일지 휴직일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퇴사 생각을 한 것은 이미 오래됐다. 올해 초에 새로운 곳으로 발령을 오면서부터 이미 난 지친 상태였다. 연초에 친구들과 나눈 카카오톡 대화를 보면 '쉬고 싶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다' 등의 기록이 있다. 대학원이 너무 힘들다며 징징 짜기도 했고, 실제로 올해 봄학기는 그 어느 때보다 힘든 학기였다. 그 와중에 적성에 전혀 맞지 않는 예산 일을 맡게 되었다. 업무의 특성상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는 하나, 이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지금에야 겨우겨우 따라가는 정도이지만, 나중에 내가 선임이 되었을 때 이 일을 총괄해서 이끈다고 생각하면 아득하기만 했다. 무엇보다 수리적인 사고가 안 됐다. 선배들이 아무리 설명해 주어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었고, 집요하게 물어보면 되돌아오는 건 예민함과 짜증이었다. 1년에서 1년 반은 있어야 예산업무를 이해할 수 있다는 선배의 말에 기대감도 가져보았다. '그래, 내년의 나는 조금 더 여유 있고 잘 해낼 수 있을 거야',라는 생각을 하다가도 '그 시간이 이미 지났는데도 여전히 헤매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밀려왔다. 그렇게 되면 나 스스로를 변호할 수 없을 텐데. 예민한 선임이 '아직도 이런 걸 모르면 어떡해요?'라고 핀잔을 줄 게 상상이 되었다.
퇴사에 대한 생각을 진지하게 하던 중 건강검진 결과를 받았다.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라는 소견이었다. 조기정신증이라고 했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소견에 당혹스러웠다. 심리치료가 필요해서 전문 상담을 받아본 적은 있었지만 정신과라고? 조기정신증이라니, 무슨 병명이 이렇게 자극적인지. 내가 그동안 생각했던 것이 망상이었다니. 내 상태가 이렇게나 나빴다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최근 들어 배우자와 인공수정을 시도하기로 협의했고 난임센터를 가서 우리의 건강상태를 점검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자연임신이 불가능했다. 나팔관조영초음파를 했는데 두 나팔관이 모두 막혀 있었다. 엄청 아프다기보단 무언가 불편했다. 사실 충분히 참을 수 있는 수준이었는데 그냥 눈물이 줄줄 나왔다. 요즘 머리가 복잡한 내 상황에서 이런 것까지 해야 한다는 생각에 서러웠던 것 같다. 결국 못 참겠으니 멈춰달라고 울었다. 시험관 시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갑상선 기능 저하증도 의심이 되고 비타민 D도 부족하다고 했다. 진료를 마치고 대기실에서 펑펑 울었다. 내 몸이 엉망이라는 생각에 슬펐다. 게다가 시험관 시술이라니, 이건 내 선택지에 없었다. 그렇게 울고서 내게 없는 항체인 B형 간염 예방접종을 맞았다. 비타민 D 주사도 맞았다. 갑상선 기능 저하의 원인을 알기 위해 피도 뽑았다. 온몸에 주사를 꽂아 너덜너덜해진 느낌이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B형 간염 예방접종을 맞자마자 목이 붓고 두 눈도 부어올랐다. 부작용이었다. 코로나 백신도 맞았지만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병원에 전화를 해보니 응급실을 가야 한다고 했다. 난생처음 응급실을 갔다. 예방접종 부작용의 경우 바로 응급실을 가야 한다고 했으면서, 실제로 응급실에서는 경증환자로 분류되었다. 10만 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집에 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정신과 소견을 받은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하루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임신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하고자 한다. 자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렇게 간절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자연임신이 불가하다는 판정을 받으니 기분이 썩 유쾌하지 않다. 내게 선택지는 시험관 시술밖에 없다니. 아직 내 몸과 건강이 더 소중한 나로서는 시험관 시술을 생각할 정도로 간절하진 않다. 내 건강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게 아직 철이 없는 생각인 걸까? 내 온몸을 바쳐서라도 임신과 출산에 대한 간절함을 가져야 하는 걸까?
퇴사/휴직과 건강 이슈로 상황이 복잡한 이 시기에 시험관 시술까지는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배우자는 시험관 시술을 미루자는 내 의견을 지지하지 않았다. 매우 매우 서운했다. 갑자기 본인의 나이를 40줄로 산정하면서 다급함을 내비치는 그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는 내게 임신을 강요한 적이 없다고 하나, 그의 이런 태도 자체가 내겐 압박이다. 자연임신도 아니고 시험관 시술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무조건 여성의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기만 낳고 끝낼 게 아니라면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배우자는 내게 정서적인 안정을 주기는커녕 스트레스만 주는 존재가 됐다. 결국 이 상황을 정리하고 타계하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가 바로 서야 한다. 누구에게 의지할 게 아니라 나 스스로가 해결해야 한다. 요즘 내 삶은 엉망이다. 하루하루를 겨우 살아가는 느낌이다. 하나씩 차근차근히 풀어나가야 한다. 내 상황들을 하나씩 정리해갈 힘은 일상에서 나온다. 일상을 다잡고 살아갈 때 조금씩 힘이 생긴다. 지금까지 힘든 일들을 견뎌올 수 있었던 것은 일상의 힘에 있었다. 읽고 기록하고 몸을 움직인다. 앞으로 엉망인 내 삶을 다시 기록해보려 한다. 언젠가 일어선 내가 또다시 휘청일 때 되돌아볼 수 있는 방향 지침서가 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