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으로 마주하는 결혼생활
결혼한 지 9개월 차, 20대의 마지막, 새로운 한 해의 시작.
내가 근래 지나 보내는 시간의 모습이다.
배우자와 기쁨으로 알찼던 시간들은 강렬히 타고 있던 촛불이 갑자기 꺼져버린 듯, 한 해의 시작과 함께 연기만 남았다. 연초부터 일이 힘들긴 했다. 새로운 직장 혹은 진로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졌고 고민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내 삶에 신선한 변화를 주고 싶어 졌다. 달력이 1을 가리키기 시작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찾아온 변화들은 나를 마구 흔들고 있다.
그 어느 것도 명확하지 않은 때에 나의 결혼생활도 이전과는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대학원 진학에 대한 이야기가 그 서막이었다.
고이 접어두었던 대학원의 꿈을 배우자에게도 조심스럽게 보여주었다. 검소하고 성실한 배우자는 나의 꿈을 분명 지지해주고 싶었겠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부분들이 분명히 있었으리라. 배우자는 대학원 진학 후 어떤 곳으로 취업을 하고 싶은지 물었다. 지금까지 취업이 목표가 아닌, 내가 하고 싶은 게 목표였던 나는 답을 할 수 없었다. 불편한 정적이 흘렀던 것 같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배우자는 내게 '대학원을 가고 싶다면 가도 된다'라고 그제야 듣고 싶었던 답을 했지만 이미 내 마음은 서운함으로 스크래치가 난 후였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이젠 내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때가 지났구나.
나는 생각 없이 결혼했다. '생각 없이'라는 말은 부정적인 표현이 아닌, 그만큼 '자연스럽게 진행됐다'는 뜻이다. 당시 남자 친구였던 배우자와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안했다. 내게 안정감을 주는 존재였고, 배우자와 함께 미래를 그리는 게 자연스러웠다. 결혼에 대한 환상도 없었고, 분명 결혼하면 스스로 무덤을 파게 되는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나름대로 머릿속으로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직접 마주한 현실은 발가벗은 채로 북극 바람을 맞는 듯했다.
결혼이란 것은 배우자가 누구냐와 상관없이 기본적으로 갖는 디폴트 값이 있다. 자유의 제약이랄까.
내가 도전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도전하고, 마음껏 실패할 수 있는 자유. 그 자유가 사라졌다는 것을 최근에 깨달았다. 누군가는 그것을 '안정감이 생겼다'라고 표현하겠다.
나에게는 '도전-지침-쉼-새로운 도전'의 루틴이 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 또한, 도전으로부터 지쳤다가 회복탄력성을 얻어 다시 도약한 결과물이다. 이제 슬슬 몸이 근질근질해진다. 다른 때라면 새로운 도전을 해볼 때이지만, 어느새 나는 결혼이라는 현실에 스스로를 넣어놓았더라.
배우자는 내게 충분한 사랑과 정성을 쏟는다. 그러나 결혼 생활이 보여준 지극히 차갑고 냉정한 현실은 그 사랑을 충분히 느끼기 어렵게 만들어 야속하다. 주어진 현실 안에서 최대한 행복과 감사를 찾는 것이 최선이겠으나, 잘 걸어온 길이 갑자기 보이지 않는 듯한 요즈음. 작은 일에도 쉽게 무너지고 마음이 오락가락한다.
결혼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하고 싶다. 오히려 결혼은 새로운 환경에 나 자신을 끌어 던진다는 점에서 새로운 도전이기도 하다. 내가 겪어온 루틴에 비추어 보았을 때, 지금 시기는 그 도전에서 잠시 지친 단계인 듯하다. 가정을 꾸리면서 따라오는 무수한 장점과 단점을 한 번에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마음 가는 대로, 바라는 대로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점점 좁아지는 것을 발견했다. 괜스레 그 탓을 결혼에 해보았다. 매일 내게 최선을 다해주는 배우자에게 미안함도 느껴진다. 오늘도 알 수 없는 착잡한 마음을 안은 채 타박타박 길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