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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레네 Jan 30. 2021

다름슈타트 Darmstadt

2015월 4월 21일, 첫 번째 여행지

본격적인 여행의 첫날. 그 첫 번째 장소는 프랑크푸르트에서 기차로 15분 정도에 위치한 다름슈타트였다. 초반에는 완전 신나서 룰루랄라 다녔다. 친절한 독일인 아저씨가 직접 마틸다 언덕까지 데려다 주기도 했다. 다름슈타트는 볼 게 별로 없었다. 엄청 큰 정원이 있었는데 그 정원은 정말 평화롭고 좋았다. 그런데 독일의 지금 날씨는 완전 해가 쨍쨍하다. 날씨가 화창한 건 좋은데, 너무 햇빛이 뜨겁고 더워서 지쳤다. 다름슈타트에서는 별로 볼 게 없어서 5시간 정도만 있었는데도 지쳐버렸다. 첫날 여행부터 걱정이 된다.
그리고 살을 빼야 한다는 집착이 나를 너무 힘들게 한다. 일부러 점심도 맥반석 계란 하나만 먹었다가, 고민 끝에 프레첼 하나를 사 먹었다. 맛있었다. 살이 많이 빠져서 갔으면 좋겠다.
더위를 먹었나 머리까지 아프다. 이런 날씨에 5시간 넘게 돌아다니는 건 너무 지친다. 집이 그립기도 하다. 살을 빼서 가야 한다는 생각,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고 깨달아야 한다는 생각, 어떠한 성장 혹은 터닝포인트를 경험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내려놓자.
내 여행의 8할이었던 기차역에서의 시간들. 좋은 사람을 만나고 짭쪼름한 프레첼을 먹었던 기억이 선하다.


처음으로 혼자 떠나는 장기 여행이라 첫날에는 다소 긴장해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런 내게 첫 여행지 다름슈타트는 숙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한산한 도시로, 조금 긴장을 내려놓게 해 주었던 곳이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독일만 소개하는 여행책을 따로 샀는데, 그 책에 소개되어있는 대부분의 도시는 다 체크를 해놓았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왜 다름슈타트를 갔지?' 싶은데, 그만큼 크고작은 모든 도시를 보고 싶었나보다. 


사진 속 다름슈타트에는 사람이 정말 없다. 평일 낮이어서 사람이 없었던건지 모르겠지만, 북적이는 서울 시내에서 살다 오니 넓은 광장의 공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람이 없어 보였다. 다름슈타트는 잔잔한 은파 같은 도시였다. 

유명한 여행지는 아니어서 그런지 참 사람이 없다. 원래도 사람이 별로 없고 조용한 곳일까?


다름슈타트에 대해 아직도 생각이 나는 것은, 길을 물어본 나를 친절히 도착지까지 데려다준 독일인 아저씨다. 여행지에서의 첫 친절을 경험한 곳이랄까. 독일인은 냉혈하고 딱딱하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던 차에 경험한 작은 친절은 더 크게 와 닿았다. 그때부터 여행지에서의 나의 인복이 시작되었던 것 같다.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도시가 아니어서 그런지, 현지인들이 일상을 살아가는 삶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가방을 매고 씩씩하게 걸어다니는 동양인 여자는 나 혼자뿐이었다. 내가 이곳의 유일한 손님이 된 것 같아서 더 기분이 좋다. 

사진 속 앳된 소년은 어떤 이야기를 갖고 있을까. 무슨 이유로 일찍 가족과 헤어져야 했을까. 지금도 그 가족은 소년을 그리워 하고 있겠지?


다름슈타트에는 큰 공원이 있었는데, 도심 속에 이렇게 큰 공원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저마다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은 소소하게 즐거운 일이다. 저 사람의 집은 어떤 형태고, 어떻게 식사를 하고 잠을 자는지 상상해본다. 

무엇을 찾고 있었을까?
저 아이는 지금쯤 초등학생, 어쩌면 중학교에 들어갔을 수도 있겠다. 
생애 첫 프레첼. 쇼핑몰 안에서 프레첼을 먹고 있으니, 지나가던 한 독일인 아저씨가 내게 '프레첼 맛있지?' 라는 표정으로 싱긋 웃어보였다. 




그 당시 나는 여행에 목적이 크게 두 가지 있었다.

첫째는 살을 빼서 가는 것이요, 둘째는 인생의 깨달음을 얻어 가는 것이었다.

한창 감수성 풍부하고 스펀지 같았던 그때의 나는 삶에 대한 교훈을 얻어가 주위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욕구로 가득했었다.

그리고 다이어트.. 여행을 떠나기 전 나의 몸무게는 인생 최고치를 찍고 있었다.

여행을 가면 많이 걷게 되어서 살이 빠져 왔다는 후기에 이미 현혹이 되어있었다.

참 아쉬운 것은 살을 빼야 한다는 생각, 나는 뚱뚱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여행지에서의 풀 한 포기, 구름 한 점에 더 감동하지 못했던 점이다.

다행히 나의 강박은 여행지에서의 시간이 지날수록 차츰 사라져 간다.


여행 1일 차를 맞이한 6년 전의 내게 말해주고 싶다.

네 몸을 부정적으로 보게 된 건 네 잘못이 아니라고, 사회의 엄격한 잣대에 네 자신을 삐뚤게 보게 된 것이라고.

그곳에서의 시간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니, 매 순간 작은 감각들에 집중하며 감사와 행복을 누리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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