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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레네 Jan 29. 2022

출가외인이 되기 싫어서

낡은 인식에 대한 투쟁

어릴 적 지방에 있는 가족묘를 방문한 적이 있다.

엄마 아빠도 나중에 죽으면 이곳에 묻힐거라 내게 설명해주시자, 나는 물었다.


“나도 죽으면 엄마아빠랑 같이 여기에 묻히는거야?”


엄만 답했다.


아니, 너는 출가외인이라 여기에 못 묻혀.



출가외인.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그 의미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 네 글자는 왠지 모르게 불편했고 의문점만 안겨주었다. 나는 그 단어의 뜻에 대해 질문할 생각도 들지 않았고, 그냥 그렇게 대꾸없이 지나갔다.






출가외인(出嫁外人), 시집간 딸은 친정 사람이 아니고 남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으로 이르는 말. - 표준국어대사전 -


엄마에게 이 에피소드를 이야기한 적이 있다. 엄마는 “내가 그랬냐”며 기억도 나지 않는다고 그저 웃기만 하신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 단어를 들었을 때의 풍경과 느낌, 상황이 모두 기억나는데 말이다.


유독 결혼을 준비하면서 그때의 에피소드가 생생히 생각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엄마가 그때 말한 ‘출가외인’이 되기 싫었던 나는 결혼 후 내 가족들에게 더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결혼 전보다 가족행사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결혼 전에는 그토록 귀찮고 가기 싫었던 가족행사에, 결혼 후에는 없는 시간을 내서라도 배우자를 데리고 참석했다. 그리고 내 스스로 당당해했다.



이것 봐, 요즘은 장가를 ‘오는’ 거지, 시집을 ‘가는’ 게 아니라구.



그렇게 2 가까이를 보내다가 지금은 조금 지친 상태이다. 가족  유대감이 유독 끈끈한 전주   집안의 가족행사에 모두  참여하는 것은 여간 쉽지 않다. 거기다 엄마  행사도 있다 보니, 일단 나부터가 매번 참석하기가 힘들다. 귀찮음이 밀려와도 ‘역시 딸은 결혼하면 얼굴  보는  당연하지라고 생각할 어른들의 모습이 상상되며 다시 마음을 잡게 된다. 그러다 문득 가족들을  챙기려는  마음이, 말도  되는 ‘출가외인이라는 말을 거부하려는 움직임에서 비롯되었다는  안타깝게 느껴졌다.






조선시대 때나 통용되었던 말을, 이제는 그 말이 틀렸다는 것을 대부분이 알텐데, 나는 왜 이렇게 투쟁을 하고 있었을까. 단순히 어릴 적 경험한 작은 쇼크에서 오는 반기였을까. 여전히 연기처럼 우리 곁에 머무는 낡은 인식이 느껴져서일까. 어쩌면 나의 엄마가 여전히 나를 ‘출가외인’으로 생각할 것이 싫어서 그렇게 자주 집을 드나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차별적인 옛 것을 부정하기 위해 내 자신을 너무 몰아칠 필요는 없다. 이미 결혼 초에 열심히 증명해 보였다. 피로함을 이겨가면서까지 하기에는 더이상 의미없고 낡은 사고니까. 이제는 조금은 편안하게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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