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관계에는 끝이 있으니까
이혼에 대한 생각은 생각보다 자주 찾아온다. 양치 할 때, 식사를 준비할 때, 조깅을 할 때, 주로 머릿속을 텅 비울 때면 문득문득 나타나는 주제인 것 같다. 깜빡깜빡 거리는 전구처럼 정말 별 일 아니듯이 지나칠 때도 있지만, 때로는 꽤 무겁게 자리하다가 사라지기도 한다.
지난 주말에 이혼 생각이 났던 과정은 이러했다.
인스타그램에서 아는 언니가 프로포즈를 받은 영상을 올렸다. 티파니 반지를 갖고 담백한 쪽지와 함께 프로포즈를 받는 모습이 부러웠나보다. 그러다 갑자기 이번 주 금요일 자정에 송구영신 예배를 '가야만' 하고 무대에 나가 성도들에게 인사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스쳤다.
배우자가 다른 교회로 옮길 때 이상하고 낡은 사택을 주는 곳으로 가면 어쩌지. 나까지 괴롭히는 교회로 가면 어떡하지. 왜 배우자는 송구영신 때 나까지 동원하는 것에 아무런 반기를 못 드는거지.
무(無)에서 화와 원망, 짜증으로 생각이 이동하는 것은 순식간이다. 갑자기 내 처지에 현타가 왔다.
삶을 살아가면서 죽음, 즉 인생의 마침표를 생각하는 것은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한다. 결혼에 빗대어 생각하면 어떨까? 이따금씩 관계의 끝을 생각해보는 것은 내게 어느 정도의 좋은 점을 가져다줄까.
결혼관계에서 자연스러운 관계의 마무리는 '사별'이 맞겠다. 이혼만큼은 아니지만, 사별에 대해서도 종종 생각한다. 배우자가 날 두고 먼저 생을 달리 한다면? 배우자의 생이 어차피 짧을 운명이라면, 차라리 내가 한 살이라도 어릴 때가 낫겠다.
배우자가 처해있는 환경이 나를 괴롭힐 때면 다 그만두고 싶어진다. 내가 과연 결혼생활이 적합한 사람인 것인지 의심도 든다. 전형적인 회피형의 생각이다.
정말 이 사람과 내가 60년 가까이 같이 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도 든다. 의심형 질문이면서도 순수한 질문이기도 한다. 과연 내가? 진득하게 한 사람과?
이혼을 하고 나서 내 삶을 상상해 보기도 한다.
우선 한국은 떠날 것 같다. 우리 가족과는 만날 수 있을까? 얼마 동안은 가족들조차 못 만나지 않을까.
그렇게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나면 배우자를 평소처럼 대하기 어렵다. 괜히 서운하고 짜증도 나고 그렇다. 내 분위기를 감지한 배우자는 무슨 상황인지 모른 채 눈치만 본다.
직장인이 사직서를 가슴 한 켠에서 품고 사는 것처럼, 결혼한 기혼자들 또한 가슴 한 켠에 '이혼'이라는 서류 한 장을 품고 사는 것일까? 아니면 나같은 회피형의 사람들이 갖는 전형적인 모습인걸까.
생각보다 결혼생활에 대한 이야기는 광범위하게 오픈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당신의 이야기가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