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라는 끔찍한 호칭
12월 31일에 나와서 자정까지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했다. 무엇보다 예배 후에 목회자와 가족들이 다 같이 무대에 올라가 성도들에게 인사를 해야 한단다. 여기서 날 화나게 한 것은 두 가지.
1. 12월 31일 자정까지 교회에 강제로 있어야 한다는 것. (확신컨데, 내 기억 속 송구영신 예배를 드린 적은 없다)
2. 배우자가 목사라는 이유로 무대에 같이 나가 성도들에게 인사해야 한다는 것.
오늘날 교회는 '비합리적'인 것의 표본이다. 여전히 70년대, 아니 그 이전 시대를 살고 있는 듯하다. 당연히 그 안에 인권이나 감수성은 없다.
오랜 세월 동안 남성 목회자의 여자 배우자는 '사모'라는 호칭 안에 갇혀 살아왔다. 교회에서 사용하는 '사모님'이라는 호칭은 흔히 생각하는 '의사 사모님', '교수 사모님'과는 다른 의미이다. 교회에서의 '사모'는 남편이자 남성인 목회자의 뒤를 따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섬김'이라는 희생과 착취를 당해야 했다. 2021년인 지금은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교회 내의 인식은 여전히 머물러있다.
한 해의 마지막 날 자정까지 함께 예배를 드리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어디까지나 교회가 일터인 목회자들에게 말이다. 왜 그 가족들까지 함께 예배의 자리에 강제 출석해야 하는가? 그리고 성도들에게 인사라니, 가족들이 왜 성도들에게 인사를 드려야 하지? 무엇을 잘 봐달라는 의미인지 모르겠다.
교회는 단순 직장과는 다르기 때문에 이해해야 한다는 입장이 있을 수 있다. BULLSHIT.
교회야말로 그들과 다르게 사고하는 사람을 왜 이해하려 하지 않는가? 이해받아야 한다고 하기에 교회는 더 이상 약소한 공동체는 아니다. 교회 밖 세상에서는 직장 일터에 자신의 가족들을 데려오는 것이 굉장히 이상한 일이라는 것을 왜 생각하지 못하는가. 교회는 제발 갇혀 있는 시야를 거두기를 바란다.
저급하고 부당한 기성 문화에 동조하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 그 문화에 '어쩔 수 없으니 참여해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배우자에게도 화가 치민다.
나는 항상 선을 긋는다. 교회는 네 직장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고 말이다. 배우자도 인정한다. 그러나 가끔 이런 결정적인 순간에 비합리적인 사고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일 때면 크게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배우자가 목회자라고 하면 모두들 안쓰러운 눈빛을 보낸다. '경제적으로 어려우시겠어요', '교회 일로 힘드시겠어요' 등 많은 의미가 내포돼 있다. 실제로 힘이 든다. 그러나 날 진심으로 어렵게 하는 것은 교회의 비이성적인 사고로부터 투쟁해야 할 때, 그리고 그 투쟁에 있어 배우자가 다른 편에 서 있을 때이다.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를 교회만 알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