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가 보는 나, 내가 보는 나
너는 아프리카 같은 곳 가서는 절대 못 살아
나름 여러 해외생활로 잔뼈가 굵은 내게 배우자가 한 말이다.
심지어 말라위랑 케냐에서도 살다 온 내게 한 말이라니.
그가 바라보는 나는 청담동 사모님 같은 이미지 같다. 고급 레스토랑이 잘 어울리고 깔끔한 집에서 사는 그런 이미지랄까.
한 번은 나에 대해 갖는 배우자의 시각에 반기를 든 적이 있다.
나는 여성스럽고 우아한 이미지만 있는 게 싫어. 나는 동시에 도전적이고 열정적이고 불꽃 갖은 사람으로 비춰지고 싶어.
물론 그는 오해라며, 미안하다고 하기는 했다.
인간이란 입체적이다. 다각도에서 보는 이미지가 다르다.
누구를 만나느냐, 어디에 있느냐,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면이 나타난다.
그중에서 배우자는 나의 ‘여성스러운 면’만을 바라보는 것 같아 서운할 때가 종종 있다.
그래서 더욱 배우자 앞에서는 터프하고 강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그래도 결국 배우자가 언어로 표현하는 나는 ‘사랑스럽고 귀엽고 예쁜 아기 강아지’이다.
결혼 관계가 처음이라 잘 모르겠다.
다른 커플도 ‘내가 바라보는 나’와 ‘상대가 바라보는 나’의 이미지가 다른 것일까?
헨릭 입센의 소설 ‘인형의 집’이 떠오른다.
물론 우리 관계는 소설처럼 전통적이고 가부장적이지는 않다.
그런 관계를 맺어야 했다면 애초에 배우자와의 관계를 시작하지도 않았다. 배우자는 내가 전통적인 여성 상에서 자유로울 수 있도록 노력한다. 하지만 배우자 또한 어쩔 수 없이 내게 원하는 이미지는 ‘귀엽고 여성스러운’ 사람일 때가 있다.
다행히 나는 기성 세대의 가정 안에서 해방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고 있다.
그리고 그 애씀이 받아들여진다.
배우자의 말에 나는 또 다른 해방을 꿈꾼다. 그렇게 또다시 ‘결혼하니 미친 짓을 하고 싶어’ 게이지가 높아졌다.
내가 다시 꼭 아프리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