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가 정말 싫었구나
상담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나는 정말 사회복지사가 되기 싫었다는 것을.
모처럼 긴 설날 연휴. 하필 연휴 내내 당직근무를 서게 되었다. 이틀 간은 아무런 전화가 오지 않았다. 이대로 꿀 빨게 될 줄 알았다.
연휴 마지막 날, 배우자가 가족을 만나러 간 사이 당직 전화가 울렸다. 이미 종결한 사례였다. 행위자는 다짜고짜 화를 내며 시설 연락처를 알려 달라고 했다.
사실 행위자가 정확히 뭐라고 말을 하는지도 잘 이해가 안 됐다. 그저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고 5분가량 혼자서 쉴 새 없이 욕을 할 뿐이었다.
운동 후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나왔다가 갑작스레 폭탄을 맞은 나는 부들부들 떨렸다. 화가 나는 의미의 떨림이었다.
그런 사람과는 단 1분도 상종하기 싫은데 10분이나 이야기(이야기가 아닌 일방적인 화와 고함)를 듣고서야 끊었다.
다시 한번 다짐했다. 최대한 빨리 아동보호전문기관을 탈출해야겠다.
아보전에 와서 좋았던 점이 사실 더 많다.
내 능력을 인정받은 점, 내가 잘하는 일을 찾은 점, 업무적으로 다양한 성과를 이룬 점, 좋은 직장동료와 리더를 만난 점. 사실 지금 아보전에 오지 않았다면, 나는 내가 정말 무능력하다고만 생각하다가 퇴사했을지도 모른다.
입사 후 첫 부서는 사단법인 즉, NGO였다. 내가 사회복지를 복수전공한 이유는 비영리기관에서 일하고 싶어서였다. 그렇게 꿈에 그리던 곳으로 입사한 나는 온 세상에 내가 무능력함을 보여주는 듯했다. 당시 팀장님은 일 년 후 나를 발령보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도 절망적인 순간이었다.
입사 첫 해가 지나고 나는 아보전으로 발령을 받았다. 아보전은 사회복지법인이었고, 그렇게 나는 공식적으로 ‘사회복지사’가 되었다. 매년 사회복지사 보수교육을 듣고 사회복지사협회에 (강제적으로) 협회비를 낸다.
어느 것 하나 잘하는 게 없는 것 같았던 내가 아보전에 오면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모두들 내가 아보전 체질이라고 한다. 배우자도 지금 있는 아보전이 내게 딱이라고 한다. 모두가 내가 입은 옷을 예쁘다고 잘 어울린다고 칭찬을 한다. 하지만 내 눈에는 마음에 쏙 들지 않는다.
상담사는 내가 비전이 제대로 실현되지 않은 것에 좌절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정말로 그런 것 같다. 그 좌절은 외부 요인을 향한 원망과 비판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적당한 ‘남탓’은 좋을 줄 알았는데..
지금 여기까지 온 나를, 수고한 나를 더 알아주는 게 필요하다고 한다. 나만큼은 내 마음을 솔직하게 알아주라며.
다르게 생각해보면, 젊어서부터 바로 원하던 비전을 성취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모두 지나가는 과도기이고 경험이다. 아보전에서의 성취감과 경험, 맷집을 갖고 다른 일을 하게 될 때를 기대하자. 바라던 기회가 올 때까지 나는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하자.
올해는 반드시 탈-사회복지, 탈-아보전 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