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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밋너 Apr 10. 2023

그만 둔 줄 알았나요? 아직 치고 있습니다, 드럼.

#3. 드럼은 연습량을 배신하지 않아

어느덧 드럼을 배우기 시작한지 두 달이 되어간다. 상담과 첫 번째 레슨에 대해 쓴 이후로 한동안 글이 없다보니 특유의 작심삼일 기질을 버리지 못하고 또 시작하자마자 그만뒀나보다, 하는 오해를 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놀랍게도 나는 두 달이 되어가는 지금까지 드럼을 열심히, 아주 성실하게 잘 치고 있다!


첫 레슨날, 나는 우리 스튜디오의 시스템에 대해 배우고 곧장 네이버 예약 조지기에 들어갔다. 우리 스튜디오는 24시간 연중무휴로 운영되는데, 대부분의 방은 전공자나 밴드 같은 사람들이 비용을 지불하고 연습실로 쓰고 있는 것 같았다. 레슨 수강생, 그러니까 회원들은 회원 전용 연습실을 사용할 수 있는데 원하는 시간대에 연습하기 위해선 일찌감치 예약해두는 게 속편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은근히 드럼을 배우는 사람이 많은 건지, 퇴근 후 치고 들어가야지 하는 안일한 마음으로 여유 넘치게 예약을 시도했다가는 번번이 퇴짜를 맞기 일쑤다. 사실 지금도 연습 스케쥴 정리가 늦어지는 바람에 이번 주 예약을 잡으려고 갔다가 처참하게 실패하고 눈물을 흘리며 이 글을 쓰고 있다. 드럼 인기 많네!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이라면 내가 이렇게 꾸준히 뭔가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우선 좀 놀랄지도 모르겠다. 나는 끈기 없음의 아이콘, 중도포기의 화신, 작심삼일의 인간화, 자기합리화의 달인이라서 뭔가에 강하게 흥미를 느껴 시작했다가 흥미가 사라지면 곧 때려치우고 마는 종류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흥미가 사라지는 속도가 매우 빨라서, 어지간한 흥미는 한 달 내로 사그라들고 만다. 한 달을 채 못버티고 사라져 간 내 수많은 취미생활들에 안녕을 고한다. 미안.


하지만 드럼은 그렇게 쉽게 내게서 사라지지 않았다. 처음 배울 때는 너무 어려워서 우웩거리면서도, 두드리면 두드리는대로 소리가 나고 연습하면 연습하는 만큼 그럴싸한 박자가 나온다는 게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처음 내게 주어진 연습곡은 에드 시런의 Thinking Out Loud였는데, 처음 악보를 받았을 때는 이제 방금 드럼 악보 보는 법을 조금 배웠을 뿐인 사람에게 다짜고짜 연습곡이요!? 하고 비명을 질렀으나 무작정 치다 보니 나같은 사람에겐 이 방식이 잘 맞는다는 걸 깨달았다. 


일단 치세요. 잘 안 되면 될 때까지 해보세요.


순발력이 떨어지고 음표 위치가 헷갈리고, 기본 성정이 조급한 탓에 스틱을 두들기다 보면 나도 모르게 박자가 빨라지는 못된 습관까지 있는 사람이라 드럼 치는 게 마냥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내게 있는 몇 안 되는 장점이자 단점 중 하나가 바로 지독하게 오기가 세다는 점인데, 바로 그 점이 나를 자꾸 연습실로 이끌었다. 게임을 해도 다른 사람과 경쟁하는 것보다 내가 세운 기록을 나 스스로 넘어서야 만족하는 종류의 게임(주로 스코어 경신을 반복하는 퍼즐류)을 즐기는 것도 이런 성질머리 때문이겠지. 일단 해, 하다 보면 어떻게든 돼. 대충 이런 마인드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에게 드럼은 너무 완벽한 악기였다. 드럼은 결코 내 연습량을 배신하지 않으니까(물론 대부분의 악기가 그렇기야 하겠지만).


월수목토, 대체로 일주일에 4번 정도는 꾸준히 연습실에 가는 게 습관이 됐다. 술약속이 있거나, 관극이 있거나 하는 날을 빼면 자연스럽게 발길은 연습실을 향하고 이제 제법 익숙하게 스피커를 켜고 노래에 맞춰 드럼을 치고 잘 안 되는 부분을 무작정 반복하며 될 때까지 치기도 한다. 필인을 배우고, 첫 번째 연습곡인 Thinking Out Loud의 촬영을 한 번에 무사히 마치고, 벽장 속에서 나와 수줍게 사람들에게 외치듯이 "저 사실 드럼 치기 시작했어요, 우헤헤" 하고 인스타를 통해 알리고, 두 번째 연습곡으로 델리스파이스의 고백을 치기 시작하고, 초견할 때마다 헤매다가 무한정 반복하고, 반복하고, 또 반복해서 치고, 출퇴근길에 주구장창 그 노래만 들으며 손발을 움직이고, 그리고 이제 세 번째 연습곡으로 Fall Out Boy의 The Last of the Real Ones를 시작하며 투핸드 16비트에 갇혀 굼뜬 손과 발에 좌절하면서도 결국 또 연습, 연습, 연습을 반복하는 이유.


드럼은 내가 연습한 만큼 실력으로 돌려준다. 드럼은 결코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래서 재미있고 그래서 즐겁다. 이 즐거움이 얼마나 더 유지될지는 모르겠지만 좀 오래 갔으면 좋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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