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지나간 자리에서
이혼을 결심할 무렵,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알게 되어 작가의 꿈을 꿔왔습니다. 한 차례 실패의 과정 후에 다 포기하고, 일기장처럼 '작가의 서랍'에 글을 남기곤 했습니다.
그중 3년 전 어느 이야기 하나를 서랍을 열고 꺼내 보았습니다.
태풍 '힌남노'가 한반도를 할퀴고 지나간 바로 다음 날, 사무실에서 썼던 어느 공무원의 일기.
그해 저는 군청에서 시청으로 자리를 옮기며, 이혼 후 1년간 이어졌던 기묘한 동거를 끝내고 홀로 독립했던 참이었습니다. 남편에게 집을 나가달라 청했지만 거절당했고, 아이들을 수시로 챙기겠다는 마음 하나로 덜컥 집을 나온 저의 선택은 위태롭기 짝이 없었습니다.
기록을 다시 보니, 그날의 태풍은 제 마음속에서도 휘몰아치고 있었음을 깨닫습니다.
무너지지 않으려, 어떻게든 단단히 서 있으려 발버둥 치던 한 사람의 목소리가 그 안에 있었습니다.
이것은 3년 전의 제가 지금의 저에게 보낸, 서툴지만 가장 치열했던 응원가입니다.
(2022년 9월 6일의 기록)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일단 공기가 달라졌다. 어딘가 상큼하고, 기온은 기분 좋게 선선하다. 하늘은 한층 더 깊고 달달해졌다.
좋은 기운들이 나를 감싼다. 마음이 적당히 차분하다. 사무실의 지친 직원들이 눈에 들어오지만, 사무실도 내 마음도 적당히 평화롭다. 나의 할 일들을 차분히 정리한다.
미술관으로 온 지 8개월. 참으로 많이 헤매었던 날들이었다. 답답함에 무엇이라도 알고 싶어 수많은 자료를 찾고 또 찾아 헤맸다. 그 모든 것이 지금 나의 것으로 온전히 소화되지는 못했지만, 무엇이 부족하고 어떤 것을 더 공부해야 하는지는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다. 필요할 때마다 즉시 찾아볼 수 있도록 자료를 분류해 두니, 최종 결과물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도 더 이상 마냥 불안하지만은 않다. 본청이 아닌 이곳에서 적응 기간을 거칠 수 있었던 것은 참 다행이다. 나만의 공간에서 잠시 숨을 돌릴 수 있음에 감사하다.
퇴근 시간이 다가오지만, 오늘은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다지 피곤하지 않아 귀가 본능이 강하게 일지 않는다. 계획한 업무량을 마무리하기엔 내일 하루로는 부족하고, 그다음은 긴 연휴다.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언제 휘몰아닥칠지 모르니, 무엇 하나라도 매듭지어야 한다. 9월에는 기필코 나의 우선순위 업무들을 마무리 지을 것이다.
다른 직원의 도움이 필요 없는 일이라면 당장 할 수 있다. 하지만 솔직히, 느긋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 이건 정확히 게으름이다. 마냥 관대해서는 안 된다. 하기 싫을 때조차도 그냥, 집중하고 해내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그래, 사무실에서 약간의 여유를 더 즐기고 일을 시작하자.
거의 다 왔다. 끝이 보이지 않니. 잘할 필요 없어. 이미 나는 많이 공부했고, 내 업무에 있어서 나보다 더 많이 아는 사람은 없다. 물론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은 부분도 있지만, 치명적인 실수는 없을 것이라 믿는다.
남들이 인정해주지 않아도 괜찮고, 칭찬받지 않아도 괜찮다. 나의 일들을 그저 차분히 해 나가면 그만이다.
어제도 굳이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지만, 스스로 하겠다고 나섰다. 20년 이상 익숙했던 시스템을 버리고 새로운 프로그램(odt)으로 보고서를 만드는 일은 처음부터 방향 설정이 잘못되었다. 저장하고 다시 열면 파일이 깨지기 일쑤였다. 내가 보고서를 만드는 것인지, 시스템에 나를 맞추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끝이 멀지 않았다는 생각에 끝까지 집착했다. 프로그램이 다운되어도 천천히, 다시 반복했다. 이 정도 보고서는 어렵지 않게 만들었던 사람인데. 이렇게 작아지는 기분을 다시 느낀다는 게 오히려 신선했다.
결국 옆 직원을 통해 이 시스템을 능숙하게 다루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의 잘못이 무엇인지 확실히 깨달았다. 실수를 통해 배우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가. 시행착오, 나는 그 말을 좋아한다.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라고 생각한다.
한때 나를 원망하고 세상에 분노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 감정을 버리면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후회한다고 상황이 달라지진 않는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꼼꼼히 분석하면 답이 보인다. 그 과정이 내게는 정말, 정말로 필요했다.
이제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것만 같다. 많은 사랑을 받고, 부침 없이 살아온 사람처럼. 물론 아이들을 생각하면 가슴 한편이 서늘해진다. 나는 좋은 보호자인가, 나의 책임은 다하고 있는 것인가. 하지만 그런 감정조차도 내 존재의 모든 것을 잠식할 수는 없다.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것은 행복한 숙명이고, 영광스러운 자리다.
잘하고 있든 못하든 나는 엄마이고, 그것은 나의 숙명이다. 힘들지 않다면 그건 엄마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온전히 내가 행복하다 해서 나를 비난하지 않으련다. 내 모든 감정에는 이유가 있다. 나는 나란 사람으로 제대로 서 본 적도, 나만을 위해 살아본 적도 거의 없는 사람이니까. 익숙하지 않지만, 나는 그냥 사랑 많이 받은 사람처럼 나를 사랑하고 아껴주겠다. 아이들을 향한 내 마음이 당연한 것처럼, 나를 향한 내 마음도 당연한 것이어야 한다.
엄마이기 이전에, 나는 나로 태어났으니까. 그 모든 것이 나의 일부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나로서 반듯이 서는 것이다.
나는 두 다리로 우뚝 설 수 있다. 희로애락을 느끼는 인간이다. 가끔 무너지는 순간도 있겠지만, 나는 무너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 내 인생에 또다시 태풍이 찾아올 수도 있겠지. 그러면 대비하면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서. 결과는 나의 영역이 아니다.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그래, 그 태풍이 휩쓸고 가면 잔해가 남긴 하겠지만, 그 속에서도 나는 안전하게 살아남으리라는 믿음이 있다. 나를 지켜주는 보이지 않는 강한 존재가 있기에. 그렇게 태풍이 지나가길 기다리면, 어느새 나는 그것을 버틸 만큼 강한 존재가 되어 있는 것이다. 억지로 나를 단단하게 만들 필요는 없다. 시간 속에서 충실히 살다 보면, 점점 단단한 존재가 되어 있으리라.
죽음이 나를 찾아오기 전까지, 나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버텨내고 살아낼 수 있다.
오늘도 이렇게,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 굳건히 서 있다. 감사하게도.
내가 가진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서 현명하게 나를 지켜내겠다.
인간에게 삶은 공평하다. 모두에게 유한하니까.
그 죽음의 그림자 속에서 얼마나 많이 춤추고 웃고 즐기고 사랑을 베푸느냐가 중요한 것이니까.
나는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베풀 것이다.
나의 기쁨과 충만감이 흘러넘쳐서, 자연스럽게 행하는 나의 태도가 될 것이다.
아무도 나를 파괴할 수 없다.
3년 전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날 당신이 마주했던 태풍은 성벽 '밖에서' 몰아치는 폭풍이었지만,
지금 내가 선 광야는 폭풍과 내가 한 몸이 되는 곳이라고.
그날 당신은 자신을 '지켜내겠다'라고 다짐했고,
덕분에 지금의 나는 나 자신이 '되어가는' 용기를 낼 수 있었다고.
당신의 그 치열했던 시행착오가 없었다면, 지금 나의 새로운 시작도 없었을 거라고. 고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