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에서 찾은 나의 길

기묘한 동거의 어느 날, 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by 미정다움

21년 5월의 첫날이었다.

이혼절차가 모두 완결되고도 한집에 동거할 수밖에 없었던,

그 숨 막혔던 시간 속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달라졌는가? 달라지고 있는가?”

잘 모르겠다. 아이들을 챙기고, 온라인 교육을 듣고, 집안일을 하는 일상은 어제와 다르지 않았고,

나는 여전히 그 궤도를 맴돌고 있었다.


언젠가 책을 쓰겠다는 막연한 꿈이 있었다.

하지만 그 꿈은 ‘내가 좀 더 나아지면’이라는 조건 아래 기약 없이 미뤄지고 있었다.

자기만의 인생을 충실히 산 사람은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는 어느 작가의 말조차,

‘그건 당신이 특별하니까’라는 삐딱한 마음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그렇게 또 하루가 저물어 가나 싶던 그날, 나는 우연히 신영복 선생님의 『담론』을 펼쳤다.


“변화와 창조는 중심부가 아닌 변방에서 이루어진다.
왜냐하면 중심은 기존의 가치를 지키는 보루일 뿐 창조의 공간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변방이 창조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중심에 대한 콤플렉스가 없어야 한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


나는 공무원 생활 내내 나 스스로를 ‘한직을 전전하는 사람’이라 규정해 왔다.

물론 주류 행정직들이 경험하지 못하는 다양한 업무를 맡는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애썼다.

언젠가 주류가 되었을 때 이 경험이 나의 무기가 되어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교육을 오기 직전 근무했던 기피부서에서, 나는 처음으로 패배감을 느꼈다.

그곳에서의 업무는 발전적이지도, 축적되지도 않는 소모적인 일들의 연속이었다.

‘나는 왜 이런 변방만을 맴도는가’라는 자괴감은 어느새 ‘콤플렉스’가 되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런데 신영복 선생님의 글은 내게 전혀 다른 관점을 선물했다.


나를 괴롭혔던 것은 변방의 자리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부끄러워하고 주눅 들었던 나의 ‘콤플렉스’였다는 것.

그 콤플렉스만 걷어낸다면,

내가 서 있는 이 변방이야말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창조의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것.

발상의 전환이란 이토록이나 멋진 것이다.

상황이 나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태도가 나를 괴롭혔다는 진실.

안갯속에서 어렴풋이 길이 보이는 듯했다.


그날 이후, 나의 독서는 조금 달라졌다. 이 책 저 책을 넘기며 내 마음에 와닿는 구절들을 찾아 나섰다.

묵자의 ‘연대와 상생’에 감동하면서도, 잠시 인간극장을 보며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다정한 아버지의 사랑에 눈물짓기도 했다. 이 모든 과정은 결국 나를 알아가는 공부였다.

신영복 선생님의 말처럼, 공부란 세계와 나 자신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키우는 것이었다.


나는 여전히 같은 일상을 반복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다르게 느껴진다.

내가 선 이곳이 더 이상 초라한 변방이 아님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나의 세계관을 넓혀가고 사유를 확장해 나가는 즐거움.

어쩌면 사는 게 참으로 재미있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나는 5월의 그 첫날,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이 글을 쓴 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돌이켜보면, 나는 결국 나만의 방식으로 변방에 제대로 섰다.

조직을 떠나 아무것에도 소속되지 않은 자유로운 개인으로 살아가는 지금,

그때 책 속 한 문장에서 얻었던 용기가 오늘의 나를 만들었음을 느낀다.

변방은 더 이상 두려움의 공간이 아니라, 나 자신으로 온전히 설 수 있는 기회의 땅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