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종교, 그 경계에서 길을 묻다
인간은 나약하다.
우리는 그 나약함을 이겨내기 위해 무언가에 기댄다.
물질에 기대고, 사랑을 갈구하고, 때로는 더 확실한 영적인 것에 의지하기도 한다.
나의 첫 번째 의지처는 종교였다.
어린 시절, 엄마는 자궁절제술 후유증으로 다섯 번의 대수술을 받으셨다.
사형선고와도 같았던 마지막 수술을 앞두고, 우리 사남매는 똘똘 뭉쳐 엄마를 위해 묵주기도를 했다.
어린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었다. 그렇게 하느님은 내 삶의 주인이 되었다.
결혼 후에도 아이를 업고 유아실에서 미사를 드렸다.
남편의 말도 안 되는 정서적 학대도, 사회생활의 괴로움도 ‘정신승리’로 버텨냈다.
하지만 그 믿음은 늘 ‘조건부’였다. 내가 착하게 살아야만 주어지는 사랑.
상황이 잘못되면 내가 더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나를 탓하게 만드는, 또 다른 굴레였다.
나의 또 다른 의지처는 과학과 철학이었다.
나는 이성과 사유를 기반으로 눈에 보이고 증명할 수 있는 것만을 무기로 삼는 합리주의자이자,
스스로의 의지로 부당함에 맞서는 실존주의자를 지향했다.
인생의 의문들을 파고들고, 정의롭지 못한 일에는 맞서 싸우는 것이 나의 방식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흑백논리와 이분법적 사고로 세상을 재단해왔던 나는, 그렇게 복잡한 세상을 배워나갔다.
그랬던 나이기에 천주교 신자였음에도 샤머니즘에 의지하던 가족들의 모순적인 모습을 보면서
그것은 나와는 관계없는 먼 나라 이야기라고 치부하고 외면했다.
친구의 엄마가 무당이라는 사실에 은연중 두려움을 느꼈고,
신내림을 받은 연예인의 이야기를 보며 그저 안타까워했을 뿐,
그것이 내 삶과 연결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미지의 세계는 점점 내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내 치열한 삶을 사느라 연락을 끊고 살았던 남동생이,
그리고 이유 없는 고열로 생사의 기로에 섰던 언니가 신병(神病)을 앓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믿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때, 알베르 카뮈가 말한 '부조리'의 절벽 앞에 서 있었다.
의미를 찾으려는 나의 이성과 비합리적 혼돈의 세계 사이의 거대한 균열.
내가 옳다고 믿었던 모든 것들이 그 심연 속으로 힘없이 떨어져 내렸다.
삶을 언제나 이해하려 했다.
나의 인식 안에서 모든 것을 나누고 재단해야만 편안했던 나.
너무나 느리게, 나는 깨닫고 있었다. 인생과 인간을, 그리고 이 세계를.
살다 보니 내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다는 진리를 받아들이게 되면서,
‘나는 저렇게는 안 살아’라고 말했던 누군가의 삶이
어쩌면 나보다 먼저 깨달은 자의 현명한 처신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상황은 바꿀 수 없더라도, 그것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언제나 나의 영역이었다.
나는 비로소 깨닫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니체가 말한 '아모르 파티(Amor Fati)'임을.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기꺼이 사랑하겠다는 삶의 방식.
그 위대한 긍정을 배우기 시작하며, 삶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 부조리한 삶 속에서 나는 오늘도 나의 태도를 결정하고, 나를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때론 무너질 때도 있다. 하지만 이제 나는 무너지는 나를 보살피는 법을 안다.
죄책감으로 나를 질타하는 대신, 험난한 세상 풍파를 버텨온 나를 다독여주는 것.
내 인생의 진정한 주체는 바로 나 자신이니까.
또한 고정된 존재가 아닌, 끊임없이 다른 나로 ‘되어가는’ 존재임을 안다.
앞으로도 끊임없이 다가올 인생의 파도 속에서 변화해 나갈 나와 내 인생이 기대된다.
이 글은 2022년, 이혼의 모든 법적 절차를 마친 후 한동안 이전의 공간에 머물다 마침내 홀로 서기를 시작하던, 그 위태롭고도 고요했던 시절의 기록입니다. 법적으로는 모든 것이 끝났지만, 현실의 나는 여전히 과거와 현재의 경계에 서 있었습니다. 그 부조리한 시간 속에서, 저는 철학자들에게 길을 묻기도 했습니다.
카뮈와 니체는 제게 ‘정답’이 아닌 ‘태도’를 가르쳐주었습니다.
인생이 저에게 던지는 끊임없는 질문에 해답을 찾기 위해 닥치는 대로 보고 듣고 읽었던 그 시간 속에서 치열하게 고민하던 힘이 지금의 제가 운명의 더 큰 부름에 응답할 수 있는 단단한 땅이 되어주었음을 이제는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