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명할 사주, 신의 부름을 받다
얼마 전, 저는 무속인으로서 신당(神堂)을 차리기에 앞서,
조상님들께 정식으로 인사드리는 신(神)굿을 했습니다.
24년간 국가의 녹을 먹고 키보드 소리와 모니터 불빛 속에서 살았던 공무원이었던 제가,
이제는 신의 향불을 피우는 무속인의 길을 갑니다.
이 문장을 쓰는 지금도 심장이 저릿할 만큼 아득하게 느껴집니다.
어쩌다 제 삶은 이토록 예측할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 것일까요.
어쩌면 이 모든 것은,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예정된 단 하나의 길이었던 것일까요.
스물다섯, 저는 국가라는 가장 안정적인 품으로 들어갔습니다.
수치심과 애정결핍, 착한 아이 콤플렉스로 내면이 무장되어 있던 저는,
그곳이 저를 지켜줄 가장 안전한 성벽이라고 착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작 제 안의 '진짜 저'는 알지 못한 채, 사회의 시선과 기준에 맞춘 선택이었습니다.
저의 사주가 조직이나 규율이라는 틀에 얽매이기 힘든 ‘재성(財星), 관성(官星), 인성(印星)이 하나도 없는 일행득기격’이라는 것을. 광야를 달려야 할 자유로운 영혼이, 가장 네모반듯한 규율 속으로 걸어 들어간 거대한 아이러니. 돌이켜보면 그것은 제 운명이 던진, 필연으로 가득 찬 수수께끼의 시작이었습니다.
결국 운명은 소용돌이처럼 저를 제자리로 이끌었습니다.
이혼과 퇴직, 그리고 온몸으로 겪어내야 했던 수많은 아픔들.
그 모든 과정은 어쩌면 이 길을 받아들이기 위한, 살이 깎여나가는 듯한 혹독한 신고식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평생을 억누르며 살아왔던 저의 진짜 모습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하는 시간.
‘공무원’이라는 낡은 페르소나를 벗고, ‘무속인’이라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
결국 이 모든 가면 뒤에 있는 진짜 ‘나’와 마주하는 것.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이었습니다.
사실 운명은 더 일찍, 더 절박하게 제 삶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8년 전쯤이었을까요.
악화일로를 치닫던 전 남편과의 관계를 풀어보고자 용하다는 철학관을 찾아갔을 때였습니다.
그곳의 역술가는 제게 불길한 예언을 했습니다.
50세 전에 암에 걸리고, 55세 이후로는 운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상의 단명(短命) 선고였습니다.
저주 같은 말에 불쾌했지만, 이상하게도 두렵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오기가 생겼습니다. ‘그래, 단명할 운명이라면 남은 인생은 더 의미 있게 살면 되지.’
50세쯤 공무원을 그만두고 5년은 원 없이 재밌게 살다 가리라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그 길로, 몇 년간 꿈꾸던 드림카를 덜컥 할부로 사버렸습니다.
그렇게 세속적인 방식으로 운명에 저항하던 저에게, 진짜 운명은 다른 모습으로 찾아왔습니다.
그 짧은 생이 아깝고 안타까워 돌아가신 할머니께서 신(神)으로 오셨습니다.
끊어질 나의 명줄을 잇게 하려고, 신을 받으라 하셨습니다.
결국 저는 공무원 생활 중이던 2023년 4월, 조용히 신내림을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저의 삶은 하나의 몸으로 두 개의 강을 건너는 것과 같았습니다.
사회에서는 공무원으로, 내면에서는 신을 모신 제자로.
오로지 사무관만 달고 명예롭게 조직을 떠나겠다는 마음 하나로 빌고 또 빌었습니다.
그렇게 신의 시간을 애써 누르고 눌러가며,
저는 공무원으로서의 마지막 계절을, 육체와 정신의 고통과 함께 힘겹게 통과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퇴직 후, 저는 또 한 번 무너져 내렸습니다.
‘공무원’이라는 갑옷이 벗겨지자, 사회적 신분이 모두 사라진 맨몸의 제가 있었습니다.
저는 깊은 동굴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안에서 저를 치유하기 위해 몸부림쳤습니다.
때로는 홀로 여행을 떠나 이전과는 달라진 저를 발견하기도 했지만,
돌아온 현실에서는 ‘무당’이라는 이름이 주는 세상의 편견과 싸워야 했습니다.
스스로를 ‘타인의 시선’으로 대상화하며 괴로워하는, 지독한 성장통의 시간이었습니다.
그 모든 시간을 통과한 후,
퇴직 후 1년이라는 혼자만의 시간을 묵묵히 지켜보며 기다려주신 조상님들께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저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굿을 올렸습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왜 없었겠습니까.
하지만 장구소리가 울려 퍼지는 그 순간, 이상한 평온함이 저를 감쌌습니다.
평생을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불안에 떨던 제가, 드디어 제 몸에 꼭 맞는 옷을 찾아 입은 기분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인간의 언어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제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세계를 온몸으로 겪어냈습니다.
굿을 하기 전날, 굿당으로 향하던 장거리 운전길이었습니다.
운전대를 잡은 채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고, 온몸의 마디마디가 아리듯이 아파왔습니다.
그 고통의 한가운데서, 저는 문득 깨달았습니다.
무당은 조상들의 지기(知己)를 몸에 실어 그 아픔을 온전히 겪어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눈물과 고통은 저주가 아니라, 무당으로서 받아야 할 축복이구나. 아, 나는 진짜 무당이구나.
저의 눈물과 고통은 이제 무당이라는 소명을 통해 다른 이들을 위한 꽃으로 피어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일월 꽃무당’이 되었습니다.
일월(日月)은 해와 달. 해(日)는 불꽃처럼 타오르는 저의 사주, 제 뼈에 새겨진 진실입니다.
달(月)은 제가 평생 사랑하고 닮고 싶었던 이상입니다.
그 아련함 속에 희망과 깨달음을 품은 달처럼 살고 싶었습니다.
‘꽃무당’은 꽃이 되고픈 인간으로서의 소망이자,
타인에게 한 송이 꽃과 같은 위로가 되고 싶은 간절한 마음입니다.
하지만 저는 신의 길 위에서, 지난 48년간 인간으로 살아온 저를 결코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신을 모신 무당이자, 끝까지 저 자신으로 살아가는 한 명의 인간일 테니까요.
그리고 저는 브런치라는 공간을 통해, 인간으로서의 고민과 성찰, 아직 풀지 못한 과거와 무속의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가려 합니다.
저의 이야기가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두렵기도 하지만,
지난 삶의 모든 눈물을 길어 올려,
어둠 속을 헤매는 다른 이들을 위한
작은 등불 하나를 밝히는 여정이 되기를 간절히 꿈꿔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