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던 치앙마이에서 마주한 나

'자기 대상화'를 넘어, 진짜 '나'를 만나다

by 미정다움

이 글은 24년간의 공직생활을 퇴직한 후, 진짜 나를 찾기 위해 떠난 해외여행 중이었던 올 7월의 기록이다.



코로나 시절부터 꽤 오래 꿈꿔왔던 치앙마이 한 달 살기. 소소한 일상을 여유 있게 현지인처럼, 혹은 유튜브나 책 속에서 보았던 디지털 노마드처럼 살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올드타운에 숙소를 잡았다. 문밖을 나서면 맛집과 예쁜 카페, 낭만 있는 강변, 아기자기한 소품샵, 고즈넉한 사원이 연이어 나타나는, 그야말로 ‘현지 동네 어슬렁대기’에 완벽한 곳이었다. 맛집을 찾아다니고, 카페에 앉아 책을 읽거나 멍하니 시간을 보내고, 강변을 산책하며, 마음먹으면 언제든 사원이나 박물관으로 향하는 일상. 하지만 기대와 달리, 그 완벽한 환경 속에서 나의 하루하루는 오히려 방향을 잃은 채 흘러가고 있었다.


과거의 여행은 지옥 같던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었기에, 그곳에서의 작은 기쁨은 더 강렬했다. 해야만 하는 일들로 가득 찬, 무너지기 직전의 위태로운 줄타기 속에서 떠난 여행이었기에, 그 해방감은 희열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전쟁 같던 24년의 삶을 정리하고 맞이한 완벽한 자유. 나를 몰아치는 일상도, 주어진 숙제도 하나 없다. 눈을 뜨면 그저 내 몸이 원하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하면 된다. 그러나 그 자유는 나를 불안하게 했다. 나는 누구인가. 이 여행은 내게 어떤 의미일까.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왜 불쾌감만 느끼는가. 꼬리를 무는 질문들 속에서, 꼬여버린 내 마음은 이미 여유라고는 없는, 뾰족하고 까칠한 모습으로 세상을 품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나의 한계를 직면하는 것, 이것 또한 여행의 중요한 의미가 아닐까 애써 생각해보려 했다. 하지만 솔직히 나는, 깊은 생각을 피하고 있었다. 타인이 만들어주는 콘텐츠를 보며 말초적인 감각으로만 하루를 버텨냈다.


사실 내가 꿈꿔왔던 여행지에서 여행에 몰입하지 못하고, 그렇게 무기력의 늪에 빠졌던 것은

아마도 내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들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당연히 누려왔던 안온한 기득권 같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 기분때문이었을지 모른다.


나는 결국 낙오자, 실패자가 되어버렸다.

아무 능력도 없는 내일모레 50살이 되는 한심한 여자.

사회가 인정해 주는 객관적인 증거가 있어야만 존재의 의미가 있는 것처럼,

끝없이 나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한 심리학 글을 읽게 되었다. '자기 대상화(self-objectification)'에 대한 이야기였다.

“자기 대상화란, 자신을 평가의 대상으로 놓고,
스스로가 사회적 기준에 부합하는지
끊임없이 감시하고 비교하며, 평가하는 것이다.
이때, 개인은 삶의 주체가 아니라, 사회의 기준에 따라 평가받는 객체가 된다.”


바로 이것이었다. 내가 나를 괴롭히던 방식. 나도 모르게 ‘날씬한가?’, ‘부끄럽지 않은 학벌인가?’, ‘이 나이에 제대로 된 커리어를 가졌는가?’와 같은 타인의 시선을 내면화하고, 그 잣대로 나를 끊임없이 평가하며 스스로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었다.


글은 그 해법으로 '자기 객관화(self-awareness)'를 제시했다.

“자기 객관화는 자신을 주체로 두고,
자신의 생각과 감정, 행동을 있는 그대로, 편견 없이 바라보는 태도다.
자신을 이해와 성장의 대상으로 바라보게 하고,
궁극적으로 자신의 목표와 삶의 의미를 찾아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다.”




그날의 깨달음이 치앙마이에서의 남은 나날을 극적으로 바꾸지는 않았다. 그리고 여전히 수많은 고정관념과 편견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몇 년간 머리로만 이해하려 애썼던 ‘자기 객관화’라는 단어의 무게를, 안온한 기득권을 내려놓고 나서야 비로소 온몸으로 실감했다.

자유롭고 주체적인 삶은 나를 평가의 대상이 아닌 이해와 수용의 대상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시작된다는 것을. 그 진실이 너무나도 절실하게 와닿았다.

나는 그 진짜 연습을, 바로 그곳 치앙마이에서 시작했고, 오늘도 연습 중이다.



-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아름답지 못한 마음으로 바라봤지만, 사진을 남겼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