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와 구원, 그 경계에서
언젠가는 꼭 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 결심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엄마는 내게 손 편지를 주곤 했다. 삶의 고비마다 엄마가 쥐어준 편지는 나를 일으키는 힘이자 눈물이었다. 한동안 나는 엄마의 글을 외면했다. 엄마가 준 상처는 너무나 깊었기에, 엄마를 떠올리는 것은 고통 그 자체였으니까. 2020년 8월, 엄마는 내 곁을 떠났다. 이제 엄마는 꿈속에서나 만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나는 사람을 만나면 쉽게 경계를 허물고 내 이야기를 떠들어댄다. 내 입을 통해 발산하는 순간 치유가 된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야기가 끝나고 나면 더욱 불안해지고 답답해진다. 에너지 발산 뒤에 찾아오는 공허함, 나를 탓하고 자괴감에 빠지는 과정의 반복. 나는 늘 입을 닫고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그런 이상적인 모습에 비해 나는 한없이 모자란 사람이라고 나를 폄하하게 되었다.
상담 선생님은 물으셨다. 끊임없이 자기를 발전시키고 성장해 나가는 원동력이 무엇이냐고. 나는 체질이라고 답했지만, 어쩌면 그것은 엄마에게서 받은 것일지 모른다. 엄마 역시 작가가 되고 싶었으리라. ‘나는 초등학교밖에 못 나왔지만…’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셨음에도, 엄마의 글은 진솔했고 우리를 감동시켰다. 하지만 동시에 엄마는 우리를 엄격한 잣대로 억압했다. 유학자 아버지 밑에서 꿈을 펼치지 못했던 당신의 한(恨)을, 우리에게 ‘유교 걸’이라는 굴레로 씌웠다. 버지니아 울프 같은 엄마였다면 어땠을까? 그 상상은 언제나 나를 아프게 했다.
상담 선생님의 권유로 내면아이 치유를 시작했다. 상상은 어려웠지만, 나는 끊임없이 소리 내어 말했다. “괜찮아, 미정아. 버림받은 건 네 잘못이 아니야. 너는 존재 그 자체로 너무나 귀한 사람이야.” 흔하디 흔한 내 이름, 김미정. 개명까지 생각했지만, 이제는 사랑해주고 싶다. 지난 44년간 사랑하지 못했던 내 이름을, 이제라도 다정하게 불러주고 싶다.
엄마가 남긴 모순 속에서 나는 길을 찾는다. 나를 억압했던 그 가르침은 깊은 상처를 남겼지만, 삶의 고비마다 나를 울렸던 엄마의 글은 내 안에 작가의 씨앗을 심었다. 글을 쓸 때, 나는 비로소 치유된다. 말을 통해 흩어지던 에너지가 글로 응축될 때, 나는 나를 온전히 마주하고 보듬을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엄마가 내게 남긴 진짜 유산일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글을 쓰고, 그렇게 나를 살아낸다.
이 글은 이혼이라는 거대한 문턱 앞에서 흔들리던 2021년의 어느 날, 제 자신에게 썼던 기록입니다.
시간은 흘렀고, 예측하지 못했던 운명의 파도를 넘으며 몇몇 생각의 결은 달라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문득 꺼내어 본 과거의 기록이, 현재의 나를 다독여줄 때가 있습니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에게 보내는 서툰 위로.
이것이야말로 엄마가 내게 물려준 가장 큰 유산이자, 글쓰기가 가진 가장 큰 힘이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