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주인이 되기로 한 순간
[주의] 이 글에는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의 줄거리와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아주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감상 전이라면 주의해 주세요.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굳이 우울한 영화를 보고 싶지 않았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라는 제목만으로도 선뜻 손이 가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당시 나의 상태는 분노 폭주의 연속이었다. 지금의 나보다 더 심한 어떤 더럽고 추잡스러운 것을 봐야만 위로가 될 것이라는 기묘한 생각에, 이 영화를 선택했다. 결국 이 영화는 나의 기대를 넘어, 깊은 울림을 주었다.
영화 초반, 마츠코를 특이하고 사이코적인 인물로 치부하려 했다. 나의 마음이 허용하는 선에서 그녀의 행동은 다소 불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몰입해 나갈수록, 그녀가 나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강렬하게 느꼈다. 소름이 끼쳤다. '왜 이렇게 주어진 인생에 열과 성을 다한 여자가 이토록 힘든 삶을 살아야만 했을까?' 반문하고 싶었다. 혐오스러운 것은 마츠코가 아니라, 오히려 그녀를 둘러싼 세상이 아니었을까?
나의 어린 시절이 겹쳐 보였다. 나는 사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모든 면에서 특출났던 언니의 그늘 속에서, 사랑받고 싶은 간절함이 컸다. 효녀딸이 되고자 열심히 공부하며 인정받기 위해 애썼고, 이러한 애정결핍과 인정 욕구는 존재 자체에 대한 불안감과 '착한 아이 콤플렉스'로 이어져 내 안에 깊이 자리 잡았다.
20년간의 공직생활은 책임감과 성취욕을 채워주었지만, 자유로운 영혼인 내가 스스로를 정해진 틀 안에 가둔 아이러니가 되었다. 그리고 세 아이의 강인한 엄마로 버텨내는 와중에, 남편은 나를 의심했고 사람들 앞에서 모욕했다.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 신뢰가 무너지는 상황을 다룬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나는 아팠다. 회피하고 외면하며 꾹꾹 눌러온 상처가 트라우마처럼 들쑤셔졌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공황장애까지 얻었다.
이 글을 쓰던 시점, 나는 이혼 숙려 기간을 보내고 있었다. 삶의 가장 큰 매듭을 짓기 위해 고통스럽게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가늠하던 그때, 마츠코의 이야기는 더욱 현실적인 질문으로 나에게 다가왔었다.
마츠코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하지만 만약 그녀가 나와 가까운 사이였다면 이렇게 말해주었을 것이다. “마츠코, 너는 너를 좀 더 소중히 여겼어야 해. 너의 연인들이 너에게 한 행동은 명백한 범죄였어. 하지만 너는 사랑했기에, 혼자인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으로 모든 것을 감싸주었지. 그것은 잘못된 거야.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했어야 했어. 그래야 그들 역시 성장할 수 있었을 테니까.” 물론 사랑하기에 그랬을 것이다. 너무 깊은 사랑은 때로 모든 것을 아름답게 왜곡하거나,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들기도 한다. 폭력을 행사하면서도 그들은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했으니까.
마츠코의 극단적인 불행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겪는 '사랑받고 싶은 결핍'이 극대화된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녀의 삶을 통해, 외면하고 싶었던 나의 그림자, 즉 '사랑받지 못할까 봐' 두려워 끊임없이 애쓰고 때로는 비굴해지기도 했던 나 자신과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었다.
가장 큰 울림은 마츠코가 53세에 죽음을 맞이한 대목이었다. 45세의 나에게는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한때 죽음까지 결심하고 실행에 옮기려 했던 나에게는 거대한 경종이었다. 나는 결코 나의 인생을 그렇게 버리지 않을 것이다. 타살이냐 자살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최소한 내가 허락하지 않은 끔찍한 죽음은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세상의 잣대로 나를 폄하하지 않을 것이다. 그 누구도 진정한 내 편이 아니라는 인생의 진리를 나는 이제 안다. 나는 혼자서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는 사람이다. 자연으로부터 충전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적당히 알고 있으며, 그것을 찾아 나서는 방법 또한 경험으로 익혔다.
그리고 마침내, 나의 삶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마츠코, 너의 꿈을 내가 펼쳐보고 싶어. 사랑의 화신이었던 마츠코. 사랑에 최선을 다한 열정의 여자 마츠코. 주어진 삶은 언제나 어긋났지만, 묵묵히 버텨내며 사랑의 가치를 놓지 않았던 그녀. 결코 마지막까지 스스로 포기하지 않았던 그녀.
이제 나는 세상을, 인생을, 인간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기에 어떤 시련에도 완전히 무너지지 않고 나의 본질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애정결핍이 내 행동의 밑바탕이라는 사실도 안다. 사랑받아야 하고, 그보다 더 큰 사랑을 나눠줘야 하는 나라는 것도 너무나 잘 안다. 인간의 가치는 얼마나 사랑받느냐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사랑을 주느냐에 달렸다는 것을 믿는다. 애정결핍으로 출발했지만 받기만을 갈구하는 것이 아닌, 결국 ‘주는 사랑’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 이제 세상이 두렵지 않다. 도망가지 않을 것이다. 제대로 맞서고 현명하게 나를 지켜낼 것이다. 나는 수많은 관계 속에서 힘겹게 삶의 깊이를 배워온 사람이니까.
사랑을 쫓다 끔찍한 파국을 맞은 마츠코의 일생은, 역설적으로 새로운 길을 찾던 45세의 나를 향해 외치고 있었다. 그것은 내 삶에 대한 경고이자, 동시에 그녀의 꿈을 대신 펼쳐보일 강력한 동기가 되어주었다. 나는 마츠코처럼 삶을 허무하게 끝내지 않을 것이다. 나를 온전히 지켜가면서도, 나만의 방식으로 세상으로 나아가고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가는 길을 걸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내가 나의 인생의 주인이 되기로 한 순간, 내 안에서 솟아난 '결코 꺼지지 않는 힘'이 이끄는 길임을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