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넘어,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이 글은 이혼 숙려기간 중 썼던 기록이다.
현실이 지옥 같은데 굳이 우울한 드라마를 보고 싶지 않았다.
중년 남자와 20대 여자의 관계 서사는 더더욱 내 취향이 아니었다.
그런데 명절 연휴에 보기 시작한 '나의 아저씨'는 2~3일 만에 나를 완전히 사로잡았다.
어둡고 음울한 분위기는 단 2회까지였다.
주연뿐만 아니라 조연의 캐릭터 하나하나가 살아 숨 쉬었고, 그들의 삶에 나도 모르게 깊이 공감하고 있었다.
특히 배우 이지은(아이유)의 연기는 나의 선입견을 깨부쉈다.
그녀는 배역에 찰떡같이 녹아들어 감동을 배가시켰다.
이지안이라는 인물을 제대로 살려내기 위해
의상, 화장, 헤어스타일, 신발까지, 어느 것 하나 이지안이 아닌 것이 없도록 자신을 갈아 넣었다.
덕분에 자칫 억지스러울 수 있는 비현실적인 배역이 강렬한 생명력을 얻어 빛났다.
드라마를 보며 나는 깊이 생각했다.
불쌍하다는 것, 다르다는 것, 동정과 연민.
우리는 모두 자기만의 섬에 갇혀 외롭지 않은 척 살지만,
나는 안다. 인간은 누구나 외로운 존재라는 것을.
다만 조금 강하게 느끼는 사람, 적당히 느끼는 사람, 무시하고 사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정서와 감성이 예민한 편인 나는 남들은 못 느끼는 것을 잘 느낀다.
예전에는 이런 내가 싫었지만,
살면 살수록 이 감수성은 인생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능력이 되어간다.
남의 불행을 보며 절대적으로 공감하는(이건 나의 불행을 떠올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또 하나의 인생 드라마를 추가하며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는 축복을 누렸다.
드라마 속 삼 형제의 어머니는 말한다.
"부부간에 의리만 있으면 길바닥에 나앉아도 괜찮고,
전쟁이 터져도 안 무서운 법이야."
박동훈은 아내의 불륜을 알면서도 그 의리를 묵묵히 지키려 애쓴다.
그 '의리'라는 단어 앞에서, 나는 나의 결혼 생활을 생각했다.
우리는 의리를 상실했던 것일까,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일까.
남편은 나를 의심했고,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욕했다. 내가 아는 남자 직장 동료들을 만나 나를 욕했다.
설령 결정적인 증거를 잡았다고 해도,
세 아이를 낳고 15년 가까이 살아온 의리를 생각한다면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었다.
엄마가 불치병에 걸린 와중에도 나를 의심했고, 한동안 잠잠하다 의처증이 다시 시작되었을 때
나는 그에게 말했다. "한 십 년은 죽은 듯이 살아라. 그럼 내가 용서해 줄지 생각해 보겠다."
나는 그에게 잘 설명하고 이해시키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상황이 생길 때마다 끊임없이 그를 달래려 애썼다.
그러나 그때 그를 달랠 것이 아니라,
상처받은 나 자신을 먼저 보듬고 위로했어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오죽하면 그 착한 사람이.."라는 시선은 나에게 공황장애까지 안겨주었다.
결국 끝인 줄 알았지만, 끝이 아니었던 것이다.
화려하게(그의 입장에서) 사회생활 하던 내가 그의 의처증을 발동시켰기에,
아프고 불쌍하게 보이면 해결될 줄 알았다.
실상은 아니었다. 내가 약자가 되니, 그는 나를 더 깊은 나락으로 밀어 넣을 뿐이었다.
'나의 아저씨'를 보는 동안 아픈 내 상처들이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모든 인간은 연약하고 실수하고 서로에게 상처 주지만,
결국 편안함에 이르기 위한 마지막 결정은 본인이 하는 것이라는 것을.
물론 담담히 응원해 주는 나의 편이 필요하지만, 나는 이 드라마를 통해 충분히 위로받았다.
그들의 위로는, 캄캄한 터널 속에서 만난 한 줄기 빛과 같았다.
이 위로가 나를 옥죄던 과거의 굴레를 끊어내고 온전히 나로서 살아갈 힘이 되어줄 것임을 믿는다.
‘오죽하면 그 착한 사람이…’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실제로도 선량하고 능력 있는 공무원이자
착한 아들, 좋은 아버지, 우리 엄마의 가장 사랑받던 사위였습니다.
제가 브런치에 올리는 글들은 결코 그를 겨냥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부부간의 일은 아무도 모르는 법이고, 그의 입장도 들어봐야 합니다.
이것은 그저 상처받았던 한 인간의 성장 기록이자,
서로 맞지 않아 고통받았던 한 부부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저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을 욕할 자격은 나밖에 없어. 세상에 당당해져. 우리만큼 힘들게 산 맞벌이 부부가 어디 있어?"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하던 그들은, 그저 신나서 물고 뜯기에 바빴던 방관자*일 뿐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먹잇감을 찾아 떠나겠지요.
우리 부부가 현명하게 처신하지 못했기에 잠시 그들의 먹잇감이 되어주었을 뿐입니다.
*물론 이 부분에 있어, 저 역시 누군가에게는 방관자였고, 가십의 소비자였음을 고백하고 반성합니다.
하지만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는 말처럼,
우리 제발 쉽게 돌 던지지 말자구요..
그럴 시간에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고, 진짜 재미를 찾아 각자의 인생을 즐기면서 살자구요..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요..
하기야 뒷담화만큼 맛있는 안주도 없겠지만요.
그래도 개구리가 아닌, 인간이라면 최소한
그 ‘맞아 죽은 개구리’에 대한 일말의 책임감이라도 느낄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당신도 언젠가는 그 돌 맞는 개구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내가 당하기 싫은 만큼 남들도 그렇게 대해야겠지요..
우린 모두 배울 만큼 배운 어른 아닌가요?
'나의 아저씨' 박동훈 역할을 맡았던 배우 故 이선균 배우님의 허망하고 안타까운 죽음을 통해서도
우리는 충분히 배우지 않았나 싶습니다.
오늘따라 이선균 배우님이 더욱 그리워지네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저는 이제, 아이들의 아버지인 그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나를 해방시켜 줘서 고마워. 당신이 세 아들 챙기느라 고생하는 거 다 알고 있어.
나 역시 엄마로서 최선을 다할게. 우리, 좋은 부모로 남자.
당신 역시 편안함에 이르길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