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동거, 그 고요한 전쟁 속에서
가장 만만한 사람에게 폭발하고 만다.
그리고 그 사람은, 가장 소중한 사람이기도 하다.
법적이혼 절차를 거친 후에도 한집에 살아야 했던 2021년 6월의 어느 날, 그 사람은 나의 아들이었다.
그날 나는 이 집에서 유일하게 나만의 것이라 믿었던 공간, 내 침대에 옷을 벗은 채 누워있는 아이를 보았다. 그 순간, 아이는 더 이상 나의 소중한 아들이 아니라 내 공간을 침범한 낯선 존재로 느껴졌다.
샤워 전 벗어던진 옷가지와 아무렇게나 방치된 수건.
수차례 반복했던 나의 잔소리는 허공의 메아리가 된 지 오래였다.
꾹꾹 눌러왔던 무언가가 터져 나왔다. 나는 소리를 질렀고, 아이를 다그쳤다.
똑같은 상황에도 유독 그날따라 날카롭게 반응했던 것은, 내 안에 이미 다른 감정들이 위태롭게 쌓여있었다는 증거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공이 강한 아이는 크게 상처받지 않은 듯 보였다.
나는 곧바로 아이에게 사과했다. 하지만 나의 마음에는 깊은 패배감이 남았다.
간신히 나를 조금 더 나은 단계로 성장시켰다고 믿었는데, 다시 예전의 나로 떨어진 기분.
과거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 때, 아이들의 말썽에 소리를 지르고 발작하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늘 억울하고 분하고 나만 고생한다는 감정에 사로잡혀, 내가 아이들에게 주었을 상처는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다. 그 분한 감정은 앞으로의 아이들과 나의 인생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데도 말이다.
감정의 어둡고 끈적한 부분을 다 해소했다고 믿었지만, 그것은 무의식 중에 끊임없이 나를 찾아왔다.
혼자 있는 시간에 아무리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공부하고 연습해도, 결국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진짜 나를 마주하게 된다.
감정의 폭풍이 지나간 뒤, 나는 무너진 나를 일으켜 세울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분노는 화재와 같아서, 너무 좁은 공간에 가두어두면 순식간에 모든 것을 태워버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분노가 느껴질 때는 물리적으로 넓은 공간으로 나아가야 한다.
움직이고, 걷고, 때로는 그저 잠을 자는 것. 크고 거창한 조치가 아니라,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행동들이 나를 구원한다는 것을 나는 배우고 있었다.
나는 안다. 나는 칭찬만 받고 싶어 하고, 비난을 받으면 존재가 뒤흔들릴 만큼 위축되는 사람이었다.
모든 것을 나의 탓으로 돌리다가도, 결국엔 나만 불쌍한 것 같아 분노하는 모순 덩어리였다.
하지만 괜찮다. 실수해도 괜찮고, 빈틈이 있어도 괜찮다.
그렇게 흔들리는 삶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마음속에 열정을 품고 오늘을 살아내고 있는 것이 바로 나니까. 고맙다. 진짜 고맙다. 살아줘서.
나는 진짜 나의 편이다. 내가 나를 사랑하고, 내가 나를 믿고, 내가 나를 자랑스러워한다. 그거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