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혼 이야기 2

숙려기간의 시작과 끝

by 미정다움

법원으로 가는 길 (숙려기간의 시작)


이혼을 결심한 후, 집안에는 기괴한 평화가 찾아왔다. 현실을 부정하기로 한 남편은 그 어느 때보다 다정한 남편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확신이 있었다. 이 기만적인 평화를 깨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 나는 흔들림 없이 말했다. “주말이 지나면 법원에 가자.”

그렇게 빠르게 나아가는 내가 당황스러웠을까. 그는 결국 본색을 드러냈다. "아침 일찍 애들도 안 챙기고 출근하더니 그거 준비한 거냐."는 비아냥으로 시작해, "바쁘니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댔다. 그리고 마지막 한마디. “내 시간에 안 맞출 거면 소송 걸어.”

알았다고 대답했지만 온몸의 살이 떨렸다. 나는 그가 예측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혼 과정에서 얼마든지 괴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공포가 밀려왔다. 하지만 동시에 확신했다. 내가 이 관계를 끝내야만 하는 이유를 그가 다시 한번 증명해 주었을 뿐이라고.

약속한 날, 웬일인지 그는 순순히 법원으로 향했다. 일찌감치 도착해 모든 것을 준비하려던 내 계획은, 사무실에 두고 온 차 키와 여러 꼬인 일들로 어그러졌다. 늦을세라 차를 몰았는데, 저 앞에 그의 차가 보였다. 그 순간, 나는 오히려 엑셀에서 발을 뗐다. 내가 서두르는 모습을 보면 그의 마음이 변할까 봐. 평생을 그래왔듯, 나는 그의 감정을 살피며 나를 조절하고 있었다. 그의 차는 나를 한참 앞질러 갔고, 뒤늦게 도착한 나는 주차된 그의 차를 확인한 후 멀찍이 거리를 둔 채 주차를 했다.

법원 이혼 서류 접수처의 공기는 차갑고 건조했다. 미리 작성해 간 서류는 계속해서 퇴짜를 맞았다. 나는 큰일을 앞둔 사람 특유의 무감각으로 감정을 절제하며 덤덤하게 서류를 고쳐 썼다. 먼저 도착했음에도 오지 않는 그에게 전화를 했다. 차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던 그가 도착했고, 마지막 절차인 부모교육 영상 감상문을 쓰며 투덜대기 시작했다.

평소 같았으면 핀잔을 줬을 것이다. 동영상 미리 보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냐고, 느낀 점 하나 없냐고. 하지만 그 순간 그는 나의 남편이 아니었다. 나는 마치 진상 민원인을 응대하는 직원처럼 그를 무시했다. 그의 불평은 내가 아니라 법원 직원이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그렇게 모든 서류가 접수되었다. 4월 21일, 최종 기일에 두 사람이 함께 판사 앞에 서서 최종의사를 확인해야만 이혼이 성립된다는 말을 들으며 우리는 각자의 차를 타고 사무실로 향했다. 세상에서 가장 멀고 어색한 동행.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았지만, 진짜 끝은 아직 석 달이나 남아 있었다.


그렇게 서류는 접수되었고, 3개월이라는 기묘한 숙려기간이 시작되었습니다. 법적으로는 남남이 되어가는 과정이었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한 지붕 아래의 동거인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았지만, 아무것도 끝나지 않은 그 멈춘 듯 흐르던 시간의 끝에서, 마침내 마지막 날의 아침이 밝아왔습니다.





D-day, 마침표를 찍던 날 아침


2021년 4월 21일, 새벽 2시에 눈이 떠졌다. 여느 때처럼 익숙한 천장이 보였고, 옆방에는 아이들이 곤히 잠들어 있었다. 창밖은 아직 어둠에 잠겨 있었지만, 내 안에서는 그 어떤 날보다 소란스러운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아무것도 아닐 수도, 전부일 수도 있는 날. 이 문턱만 넘으면 우리는 법적으로 완벽한 남남이 된다. 하지만 문밖을 나서는 순간, 나는 다시 이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을 챙기고, 저녁에는 그와 한 식탁에 앉을 것이다. 눈에 보이는 현실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법적 관계의 소멸과 현실적 삶의 지속. 이 기묘한 부조리함이 그날 아침의 공기를 무겁게 짓눌렀다. 마지막 순간, 그가 돌변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이 마음을 할퀴었지만, 나의 결심은 확고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이혼 그 자체가 아니라, ‘나다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었으니까.

나는 애써 밝은 척, 애써 긍정적인 척하는 내 모습에 늘 이질감을 느꼈다. 위태롭고 주눅 든 채 타인의 시선을 검열하는 나. 그것이 내가 느껴온 나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알고 있었다. 그건 진짜 내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원래 사람들과 어울리고 장난치기를 좋아하며, 유쾌함이 기본값인 사람이었다. 슬퍼하지 말자. 이 지난한 과정은 위축된 나를 버리고, 잃어버렸던 진짜 나를 되찾기 위한 몸부림일 뿐이다.

그날 아침에도 나의 일상은 평범하게 흘러갔다. 1교시 영어 수업을 듣고, 2교시는 이미지 메이킹 수업이었다. 강사는 밝은 목소리로 호감 가는 인상을 만드는 법에 대해 이야기했다.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선 것 같은 내게, 그 수업은 참으로 사치스럽고 공허하게 느껴졌다.

그 공허함 속에서 오히려 정신이 맑아졌다. 내가 지켜야 할 것은 명확했다. 이 세상에서 나를 지켜줄 사람은 오직 나 자신뿐이라는 진실. 나의 주변을 돌보는 것은 내가 온전히 서고 난 후에야 가능한 일이다.

나는 그날 아침, 나에게 몇 가지를 약속했다. 나를 지키겠다. 어떤 나쁜 말도 나를 통과하지 못하게 하겠다. 굳건히 혼자 서겠다. 더 이상 남의 말에 휘둘리지 않겠다.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사람이, 그러면서도 인생을 유연하게 즐기는 사람이 되겠다. 나 자신의 실수에도 자학하지 않고, 그것을 통해 무엇인가 배울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겠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하리라 믿었다. 지난 시간, 무너지고 깨어지면서도 나는 조금씩 달라져 오지 않았는가. 그 시간의 흐름 속에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 내가 있었다. 그것이 나의 마지막 자존감의 원천이었다. 늘 흔들리던 내가 이토록 인생에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 지난한 싸움의 승패는 이미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그저 마지막 문턱을 넘어서면 될 뿐이었다.

다만, 마음이 많이 일렁일 테니 부디 나의 소중한 에너지를 함부로 흩뿌리지는 말자고. 조용히, 단단하게, 오늘 하루를 살아내자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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