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채워지지 않는 빈 그릇에 대하여
이혼숙려기간 중 어느 날 밤이었다. 남편과 아이들이 잠든 후, 거실로 나와 소파에 파묻혔다.
하루의 소음이 모두 잦아든 시간, 습관처럼 스마트폰을 들어 세상을 유영했다.
그러다 무심코 멈춘 곳은 구독하는 유튜버(조효진)의 채널이었다.
그날따라 올라온 영상의 주인공은 그녀의 아버지, 일명 ‘조파파’였다.
자취하는 딸의 집에 들러 어설픈 솜씨로 냉장고를 채워주고,
“아빠 간다”는 무심한 말 뒤에 숨겨진 따뜻한 눈빛.
그들의 평범한 일상이 내게는 비현실적인 판타지 드라마처럼 보였다.
처음에는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띤 채 보고 있었다. ‘참 보기 좋다’, ‘저런 아빠도 있구나’.
하지만 영상이 계속될수록 미소는 사라지고 가슴 한구석이 서늘하게 아려왔다.
그들의 다정한 대화가 멀어지면서, 내 안에서는 무언가 뜨거운 것이 울컥 솟구쳤다.
결국 나는 스마트폰 화면 위로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었다.
화면 속 다정한 아버지의 모습 위로 나의 아버지가 포개졌다.
딸을 향한 사랑스러운 눈빛 대신, 나를 외면하던 무심한 눈빛이 떠올랐다.
딸의 미래를 걱정하는 따뜻한 목소리 대신, 내 앞길을 막고 호통치던 날 선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라떼는 아빠들이 다 무뚝뚝했어.’ 그 흔한 말로 나를 위로하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이건 무뚝뚝함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곳에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사랑’의 문제였다.
나이 마흔을 넘겨 고작 유튜브 영상 하나에 무너지는 내 모습이 한심했다.
마음속에서 나를 질책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몇 살인데 아직도 그런 걸로 징징대냐’고.
맞다, 나는 더 이상 아빠의 손길이 필요한 어린아이가 아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른스러운 이성으로 통제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내 무의식 깊숙이 각인된, 평생을 나조차도 외면해 왔던 상처의 문제였다.
내 모든 문제의 근원은 어쩌면 이 지독한 애정결핍일지도 모른다.
채워지지 않은 어린 시절의 빈 그릇을,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품에 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아빠의 사랑을 듬뿍 받는 딸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눈물이 날 정도로 부럽다.
그 부러움의 끝에는 지독한 외로움이 있다.
돌아가신 엄마는 이제 세상에 없고, 살아계신 아버지는 여전히 상처다.
평생의 짝이라 믿었던 남편과는 이혼을 앞두고 있다.
피를 나눈 가족도, 내가 선택한 가족도,
그 누구도 온전히 내 편이 되어주지 못했다는 사실이 나를 절망하게 했다.
그날 밤, 나는 한참을 울었다. 세상에 혼자 버려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른의 모습으로는 도저히 가릴 수 없는, 상처받은 어린아이가 내 안에서 서럽게 울고 있었다.
이것은 유치한 투정이 아니다.
가져본 적 없는 것을 평생 그리워해야 하는,
단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무조건적인 지지와 사랑을 남은 생 동안 스스로에게 주어야만 하는,
한 사람의 무거운 숙제에 관한 이야기다.
그 무거운 숙제를 확인시켜 준 다정한 아버지의 영상이, 나는 오늘 유독 부럽고 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