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의 시간, 그림자 속에서 피어난 힘

모든 것의 시작, 그 근원에 대하여

by 미정다움

환영받지 못한 탄생


나는 사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연이어 딸을 낳은 엄마는 산후조리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한다. 갓 태어난 내가 딸이라는 것을 아신 할머니께서 실망감인지, 실수인지 밥솥을 태우고는 그대로 집으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는, 내 존재가 환영받지 못했음을 암시하는, 내가 속한 가족사의 첫 페이지였다.

언니는 태어날 때부터 예쁘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나는 ‘못난이 딸’이었다. 그 이유를 알게 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엄마는 예쁜 첫딸에게 병치레와 사고가 겹치자, 시기 질투 때문이라며 둘째 딸인 나에게는 액운을 피하기 위한 ‘못난이’라는 보호막을 씌웠던 것이다. 겨우 스물여섯이었던 엄마의 서툰 사랑이었다. 나는 그 보호막 아래에서 거울도 잘 보지 않는 아이로 자랐다. 못생긴 착한 소녀는 외모에 대한 관심조차 죄악이라 여기며, 이상한 수치심을 내면화했다.

어린 시절 사진 속 나는, 보이컷 머리에 남동생이 입던 남자 한복을 입고도 해맑게 웃고 있다. 언니와 여동생은 긴 머리에 고운 여자 한복을 입고 있는데도 말이다. 떼를 써 본 기억은 없다. 엄마는 늘 이마가 넓어 마음이 넓고, 순종적인 착한 딸이라 말했다. 어쩌면 그것은 긍정의 가스라이팅이었을지도 모른다. 유치원을 다니지 못한 나는 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 생각으로는 ‘함구증’이 아니었을까 싶다. 엄마는 그저 내가 학교에 가서 선생님 말씀에 대답이라도 하고, 밥 잘 먹고 건강하기만을 바라셨던 모양이다.






외갓집의 빛과 그림자


다섯 살 무렵, 나는 여동생과 함께 2년여를 외갓집에 보내졌다. 몸이 약한 엄마가 네 아이를 감당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시골집 앞 냇가에서 밤에 멱을 감고, 낮에는 재첩을 잡았던 기억, 신발을 물에 빠뜨려 아랫마을까지 울며 찾아 헤매던 장면이 희미하게 떠오른다. 그때 외할머니는 중풍으로 누워계신 외할아버지를 대신해 시장에 나가 농작물을 팔아 생계를 꾸리셨다. 가끔 만들어주시던 떡볶이의 달콤한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 따뜻함 속에는 짙은 그림자도 있었다. 명절에 잠시 들렀던 부모님이 버스를 타고 떠나실 때, 차마 소리 내지 못하고 마음속으로 ‘나도 데려가 달라’고 외치던 순간의 먹먹함이 지금도 생생하다. 훗날까지도 그때를 떠올리면 이유 모를 눈물이 흘렀다.

가장 아픈 기억은, 어린 내가 외할아버지의 대변을 치우던 장면이다. 그 냄새는 잊히지 않는다. 얼마 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 감정을 배우지 못한 아이였을까.

외갓집에 대한 나의 정서는 늘 아련하고 다정했지만, 마흔이 넘어 심리상담을 받으며 비로소 깨달았다. 현재의 시선으로 본다면 그것은 명백한 '아동학대'와 '방임'이었다는 것을. 내 안에 자리 잡은 깊은 애정결핍이 바로 그때의 정서와 연결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그림자 속에서, 내 안의 무언가를 깊숙이 감추며 자라났다. 환영받지 못한 세상 속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조용히 살아남는 법을 터득해가고 있었다.






벼락치기로 찾은 자리


그림자 속에 있던 아이, 억압되었던 나의 유년 시절은 터져 나오지 못한 힘이었다. 넓은 세상을 향해 뛰쳐나가고 싶은 내면의 목소리는 늘 틀어막혀 있었다. 대신 나는 책 속으로 도망쳤다. 공부는 나의 유일한 도피처이자, 세상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방패였다. 그리고 동시에, 내가 나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단 하나의 통로였다.

평소에는 그저 조용히 지내다가도, 시험 기간만 되면 내 안의 어떤 에너지가 뜨겁게 타올랐다. 짧은 시간 놀랍게 집중하여 책을 파고들면, 거짓말처럼 ‘1등’이라는 결과가 따라왔다. 물론 그 벼락치기의 마법은 중학교 시절까지였지만 말이다. 그때마다 나는 잠시나마 짜릿한 성취감과 자유를 느꼈다. 인정받고 싶었던 내 안의 거대한 욕구가 채워지는 순간이었다. 억눌렸던 내면의 힘이 특정한 방식으로 발현되던 시간. 그것은 내가 원하고 갈망하던 자유로운, 미지의 무언가는 아니었지만, 주어진 틀 안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세상을 움켜쥐는 법을 배우던 시절이었다.






안정적이지만 낯선 틀 속으로


대학 졸업 후, 나는 쉼 없이 달렸다. 낮에는 회사에 다니고, 밤에는 과외를 했다.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나를 움직여야만 했다. 그렇게 몇 달을 보낸 후, 이듬해 나는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2001년 6월, 스물다섯의 나이에 국가라는 안정적인 품으로 들어갔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훗날 나의 사주가 조직 생활이나 규율에 얽매이기 힘든 '관성, 재성, 인성이 아예 없는 사주'라는 걸.

수치심과 애정결핍,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갇혀 있던 나는 공무원이 내게 꼭 맞는 직업이라고 착각했다. 자유로운 영혼의 결정체인 내가, 가장 안정적이고 정해진 틀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아이러니한 첫걸음이었다. 어쩌면 이것이 내 운명이 던지는 첫 번째 수수께끼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알지 못했다. 이 선택이 훗날 내 삶의 궤도를 어떻게 뒤흔들게 될지.






내 뱃속에 별이 들어왔을 때


세상에 태어나 가장 벅차오르는 순간은 2005년에 찾아왔다. 첫아들을 낳았을 때였다. 갓 태어난 아기를 품에 안는 순간, 나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충격과 환희에 휩싸였다. **“하늘의 별이 내 뱃속으로 들어와 새로운 우주가 탄생한 기분”**이었다. 그 작은 존재는 내 삶의 모든 의미를 뒤흔들고 재정의했다. 세상의 어떤 고통과 슬픔도, 이 작고 따뜻한 생명의 빛 앞에서는 무의미해지는 것 같았다.

그때 나는 알았다. 이 아이들을 향한 사랑은 내가 이 생을 마치고 사라진 후에도 결코 변치 않을 최후의 진리라는 것을.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내 안에 잠자고 있던 어떤 강인함이라도 기꺼이 드러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것은 그림자 속에 숨어 있던 아이가, 내 안에 결코 꺼지지 않는 힘이 존재함을 깨닫게 된 첫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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