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려기간의 어느 날, 작은 현자가 내게 찾아왔다
어느 늦은 밤, 막내아들이 내 방에 들어왔다.
그날 밤 우리가 나눈 대화는 따스하고 황홀했다.
한 해 한 해 놀랍도록 달라져가는 아이.
친구들과 아웅다웅 다투면서도 서로에게 기댈 줄 알고,
제 몫의 한 사람으로 단단하게 성장해 가는 아들을 지켜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살아있을 가치를 느꼈다.
나는 십 년 후의 꿈에 대해 조심스럽게 털어놓았다.
“엄마는 언젠가 유튜브를 하고 싶은데, 약간 선을 넘고 어그로를 끄는 내용일 수도 있어.
너희에게 피해를 줄까 봐 걱정이 돼서, 십 년은 참아보려고.”
아들은 잠시 생각하더니, 너무나도 태연하게 말했다.
“그럼 저도 선 넘으면 되잖아요.” 순간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멍해졌다.
이 아이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나의 두려움과 망설임을 단 한마디로 부숴버리는 이 작은 현자 앞에서,
나는 오히려 위로를 받고 있었다.
요즘 친구 관계가 힘들다던 아들은,
예전처럼 쉽게 헛소리를 하며 친구들을 웃기기가 어려워졌다고 했다.
생각이 많아져서 그런 것이니 괜찮다고, 그것이 바로 네가 성장했다는 증거라고 말해주자
아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훗날 나는 열네 살 막둥이와의 이 대화를 얼마나 그리워하게 될까.
지금의 이 다 큰 듯한 모습도 몇 년 후에는 얼마나 애틋한 추억이 될까.
아들과의 대화는 덴마크 드라마 「리타」를 떠올리게 했다.
독설을 일삼는 괴짜 교사이자, 이혼 후 세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 리타.
리타는 원나잇으로 욕망을 해결하고, 온갖 추문에 휩싸이며,
아들의 여자친구 부모 앞에서도 담배를 피워 무는 등 거칠 것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교사로서의 사명감을 가지고 진심으로 아이들을 대했으며,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신의 신념에 따라 약한 아이를 지켜냈다.
엄마는 이래야 하고, 교사는 저래야 한다는 사회의 정형화된 틀을 온몸으로 거부하는 그녀.
적당히 타협하면 삶이 쉬워질 텐데, 그녀는 굳이 그런 쉬운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실수를 멈추지 않지만, 결코 도망가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혔다.
나는 그녀가 자신을 고수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좋았다.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하나의 모습으로 살기를 거부하는 것.
그것이 바로 내가 추구하는 모습이기도 했다.
물론 나는 리타처럼 완전히 날 것으로 살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자신을 지키지 못할 만큼 무모하다.
타인에게 적당히 감추어야 하는 것들을(이것은 거짓과 가식이 아닌, 예의와 배려의 관점이다)
나는 알고 있다. 하지만 나의 목소리를 내어야 할 때, 더 이상 침묵하지 않을 것이다.
그날을 위해 나는 준비하고 기다린다. 책을 읽고,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며 나를 키워나간다.
이것은 어떤 결과를 위한 노력이 아니다. 과정, 그 자체가 나의 꿈이다.
오늘의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차근차근 해나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