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무너뜨리는 힘에 맞서

나를 일으켜 세운 어느 날의 기록

by 미정다움

2022년 3월, 이혼 후에도 한동안 같은 집에 머물러야 했던, 미술관으로 출근하던 시절의 기록이다.


법적으로는 모든 것이 끝났지만, 현실의 나는 여전히 과거의 공간에 묶여 있었다.

미래를 내다보는 언니는 3월까지만 잘 버티면 4월부터는 조금씩 나아질 거라고 했지만,

그런 말을 마음에 새기고 다잡아 보아도 아주 가끔은 속절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시기가 찾아온다.


내가 가진 정체성, 내가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그 어떤 것이 무너질 때. 그럴 때면 나는 내가 아니게 된다.

좋아하고 흥미를 느끼던 모든 것들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고, 모든 것이 귀찮아진다.

딱딱하고, 건조하고, 차가운 사람이 되어버린다.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지만, 그것을 직시할 마음의 여유조차 사라진다.


그렇다. 그것은 ‘여유’의 문제였다.

그리고 그 여유를 앗아가는 것은, 누군가의 힘이 나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때였다.

나의 노력을 폄하하고, 내가 한 일을 부정하며 나를 짓누르는 어떤 힘.

상대가 의식적으로 계획한 행위가 아닐지라도, 그 사람의 불안과 열등감은 은연중에 나에게로 전이되었다.

그 힘은 나 스스로를 무능하고 부족한 존재로 느끼게 만들었고, 나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어느 날 회의를 통해, 나는 보았다.

나를 짓누르던 그 사람의 여유 없음과 불안감, 그 안에 감춰진 열등감을.

그는 보고서를 체계적으로 만드는 데는 능할지 몰라도,

사물의 본질을 보려 하거나 사람 사이의 미묘한 흐름을 읽어내지는 못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나는 그와 결이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그의 잣대로 나를 평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그 작은 깨달음이 단단하게 닫혀 있던 나의 껍데기를 또 하나 깨고 나아가는 과정이 되었다.

나는 나의 부족함을 알지만, 그것이 나의 전부가 아님 또한 안다.

나는 누군가처럼 남의 것을 탐내지 않고, 남을 짓밟으며 나를 증명하지 않는다.

오롯이 나의 길을 갈 뿐이다.


나의 내면이 상처와 어둠으로 무겁지 않기를 바란다.

가끔은 한없이 가벼운 존재이고 싶다.

하지만 그것은 내 존재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것이 아니라,

나를 억누르던 부정적인 감정들이 가벼워지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사려 깊음과 배려, 굳은 의지와 친절함은 따스한 온기와 함께 햇살처럼 빛날 것이다.

이제 누구도 내 허락 없이는 나를 파괴하거나 괴롭힐 수 없다.

나는 내 삶의 주인으로, 온전히 지금을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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