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하게 빛났던 그녀들

나이 듦에 대한 두려움과 진정한 아름다움에 대하여

by 미정다움

나는 말하곤 했다. 나이 드는 게 두렵지 않다고, 오히려 빨리 늙고 싶다고.

하지만 "이제 여자라기보다는 푸근함이 느껴진다. 전성기는 끝나지 않았냐"는

누군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나는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나의 반응.

나는 내가 했던 말과 내가 느끼는 감정의 거대한 괴리감 속에서 한동안 심하게 앓아야 했다.


돌이켜보면 나의 청춘은 20대 중반에 멈춰 있었다.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까지, 임신과 출산, 육아의 늪에 빠져 나를 잊고 살았다.

물론 그 시절을 폄하하고 싶지는 않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은 광활한 우주의 신비를 경험하는 것과 같았고,

존재 자체만으로도 나에게 큰 만족을 주었던 유일한 시간이었으니까.

하지만 ‘여자로서의 나’는 잠시 잊혀졌다.


그 반짝반짝 빛나던 20대 초반의 시절조차, 나는 온전히 나를 사랑하지 못했다.

대학 시절, 그 찬란했던 청춘에도 신입생, 2학년, 3학년, 4학년..

등급을 매겨가며 짓궂게 장난치던 남자 선배들의 평가질에 가스라이팅 당했던 것일까.

그 아름답던 시절에도 나이라는 보이지 않는 꼬리표에 갇혀 늙어감을 두려워했다.

심지어 외모 자존감은 바닥이었다. 40킬로그램 대의 몸무게를 가졌을 때조차 뱃살에 신경 썼고,

잘록하지 않은 허리와 납작한 엉덩이, 떡 벌어진 어깨를 원망했다.


지금의 내가 스물한 살의 나를 만난다면,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너는 충분히 아름답고, 그 청춘은 그리 길지 않으니
마음껏 즐기고 사랑하면서 살아"


그렇게 잊고 지냈던 ‘여자로서의 나’에 대해 생각하다가,

찬란하게 빛났던 그녀들을 떠올린다. 베아트리스 달, 제인 버킨.

너무나 강렬했던 리즈 시절의 아름다움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늙어가는 그녀들을 보며,

나이듦에 대해 생각했다. 리즈 시절의 빼어난 미모는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

그녀들이 느꼈을 상실감은, 나같은 평범한 사람들과는 분명 다른 차원의 것이리라.

20대에 외모 자존감이 바닥이었던 나는 오히려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미드「그레이스 앤 프랭키」의 제인 폰다와 릴리 톰린,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를 보며 나의 노년을 그렸다.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아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힘과 내공, 그리고 품격.

나 역시 그녀들처럼, 나이가 들어서도 나만의 아름다움을 가진 사람이고 싶었다.


정신없이 아이들을 키우느라 나를 돌보지 못했던 30대 후반,

거울 속 낯선 내 모습에서 세월의 흔적을 보기도 했다.

하지만 나이듦을 진짜 비수처럼 아프게 실감했던 순간은,

아이러니하게도 40대가 되어 드디어 나를 사랑하게 된 바로 그때,

가까운 사람에게서 들은 무심한 말 한마디였다.


외모 자존감 바닥이었던 20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40대의 내가 좋다고 느끼던 그 시절이 바로 나의 진짜 리즈 시절이라 믿고 있었는데,

그 단단해졌다고 생각했던 믿음이 송두리째 무너져 내리는 경험이었다.


그 말이 거대하고 더러운 똥덩어리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똥덩어리를 피하지 못하고 온몸으로 받아냈고, 스스로 온몸에 그것을 처발랐다.

그리고는 며칠을 그 불쾌한 감정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늙어가는 여자에게는 그런 이야기는 당연한 것일까.’

위축되고 주눅 들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두려워졌다.


그 고통의 끝에서 나는 깨달았다.

나는 20대의 아름다움을 흉내 내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그저 내 나이에서, 내가 가진 조건 안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빛나고 싶은 사람이었다.

객관적인 아름다움은 부족할지라도,

기품을 잃지 않으면서도 순수하고 자유롭고 귀여운 할머니가 되고 싶은 것이다.


타인의 말 한마디에 나의 가치관에 혼란이 생기는 경험은 지독했다.

하지만 그 상처를 통해 나는 더 단단해졌다.

내가 가진 나이와 신체 조건에서 그냥 나답게 빛이 나고 싶은 사람이다.

과욕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누가 뭐라 해도 그것은 이 지독한 세상 속에서 나를 지키며 살아가는, 나만의 방식이다.





이 글은 지금으로부터 4년 전, 이혼을 앞둔 숙려기간에 썼던 기록입니다.

타인의 말 한마디에 세상이 무너지는 듯 아파했던 그 시절의 제가 애틋하게 다가옵니다.

지금의 제가 그때의 저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참 쓸데없는 고민으로 며칠을 앓았구나. 푸근함이 느껴진다는 말이 뭐가 그리 대수였다고.

돌이켜보면 그 말은 너를 찌르는 비수가 아니라, 그저 그 사람의 시선일 뿐이었는데.

그 지독한 성장통을 겪었기에, 타인의 말 한마디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지 않니.

진정한 아름다움은 남의 입술이 아닌, 내 마음속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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