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작은 것들의 위로

숙려기간, 나를 살게 한 감사일기

by 미정다움


“지난 한 주, 감사한 일 세 가지를 말해보세요.”


원예테라피 수업 중 강사가 던진 질문이었다.

이혼 서류를 접수하고 모든 것이 멈춘 듯 흐르던 시간 속,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거창한 감사는 떠오르지 않았다.

대신, 잿빛 일상 속에서 나를 간신히 숨 쉬게 했던 아주 작은 순간들이 떠올랐다.


첫 번째 감사는, 전통시장에 갔던 일이다. 나는 원래 재래시장을 좋아하지 않았다.

식당을 하셨던 엄마를 따라나서는 시장길은 언제나 의무이자 피곤한 일이었다.

하지만 엄마가 돌아가신 후, 나는 우울한 기분이 들 때면 나도 모르게 시장으로 향했다.

엄마의 단골 참기름 집에 들르고, 활기찬 사람들 속을 걷다 보면 이상하게도 에너지가 차올랐다.

여행지에서나 즐겁던 시장 구경이, 이제는 엄마를 느끼고 나를 위로하는 소중한 의식이 되었다.


두 번째 감사는, 쉘터를 구입한 것이다. 현실의 해외여행이 불가능해지자 나는 캠핑 유튜브에 중독되었다.

특히 혼자 텐트를 치고, 혼자 불을 피우고, 혼자 술잔을 기울이는 솔로 캠핑 영상에 마음을 빼앗겼다.

언젠가 나도 저렇게 온전히 홀로 설 수 있을까.

작은 쉘터 하나를 주문하며, 나는 막연한 자유와 위로를 함께 배송받았다.


세 번째 감사는, 아이들을 위해 요리를 한 것이다.

백종원의 유튜브를 보고 필 받아 만든 콩나물 불고기, 가지볶음, 차돌 된장찌개.

사실 나를 위한 요리는 잘 하지 않는다. 오로지 아이들을 위해서만 한다.

나의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고 행복해하는 아이들의 반응을 보고 있으면,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경지를 조금은 이해하게 된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나의 공복은 어느새 잊혀졌다.

그것은 무기력한 나를 일으켜 세우는 또 다른 작은 의식이었다.





그날의 감사일기를 다시 읽어본다. 시장, 캠핑, 그리고 아이들의 웃음소리.

지극히 평범하고 소소한 것들. 하지만 그 작은 것들이 나를 살게 했다.


인터넷에서 본 누군가의 글처럼, 삶의 무게에 짓눌려 소중한 나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지나치게 잘하려고 애쓰기보다 그 순간을 즐기는 법을 배워야 했다.

기쁜 일이 없더라도 때로는 소리 내어 웃어보는 용기가 필요했다.


그렇게 나는, 아주 작은 것들의 위로에 기대어 그 힘든 시간을 건너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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